너무 잘하고 싶은 욕심에 주저함이 생겼거나, 현재 내 안의 감정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이거나.
무언가를 하고 싶은 기분도 의욕도 들지 않지만, 그런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 주고 구독까지 해주는 독자가 또 한 명 늘었다는 메시지가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고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게 해 주었기에 이에 보답하듯 보잘것없는 글을 다시금 쥐어짜내듯 끄적여 보려고 한다.
삶을 살다 보면 마음이 상하는 일이 종종, 아니 매우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머리가 조금 크고 나면 내 마음 상한다고 누가 알아주거나 위로해 주지 않는다. 원래 다들 그렇게 상처 주고받으며 살아가겠거니 하기 마련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자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 하나씩은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그러한 자기만의 기술을 전문적인 심리 용어로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자신의 아버지의 이론을 정립하며 내세운 이 방어기제는, 내적 갈등이 발생하거나 외부 환경의 요구와 자아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때 생기는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방어하는 책략을 일컬으며, 거의 대 부분의 사람들이 하나 또는 두 개 이상의 방어기제를 갖고 있다고 한다.
억압(repression), 부정(denial), 투사(projection), 전위(displacement), 합리화(rationalization) 등,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전략을 각 상황에 맞게 세련되게 응용해 사용하거나 몇 가지를 혼합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쓰기도 하는데, 간혹 과하게 이러한 전략에 의지하거나 한두 가지의 전략으로 모든 상황을 대응하려 할 때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가령, 잘못된 갑질을 일삼는 누군가가 있다고 했을 때 그가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 없이 합리화 전략에 의지해 자기의 행동을 매번 정당화하기만 할 경우 내로남불적 사고에 빠지기 쉽고, 부정을 전략으로 일삼는 어떤 이는 어렵거나 곤란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회피를 해 결국 어떠한 일도 끝까지 지속하지 못하는 문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조직 생활을 잘 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러한 방어 기제에 능수능란해야 한다.
실수한 게 있어도 자기 실수와 나 자신을 분리해 자신을 분리해 생각할 줄 알아야 하며 (당연하겠지만 실수를 했다면 걸맞게 사과를 하고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부정적 자극은 적당히 거를 줄 알고,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이를 긍정적으로 승화할 줄도 알아야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이러한 방어기제를 능수 능란하게 사용하는 재주는 타고나지 못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의도치 않은 부주의한 말과 행동에 쉽게 감정이 상하기 일쑤였기에, 이러한 감정적인 어려움에 지친 내가 선택한 도피처가 바로 번역가였다는 것은 다소 부끄러운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프리랜서로서 개인의 사회적 기능성을 유지하며 동시에 타인과 거리를 둔 채로 감정의 자유를 획득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시 조직에 몸을 담게 된 지금은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역할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케케묵은 갈등을 또다시 겪고 있는 진퇴양난적 상황에 빠져있다.
이 갈등이 잠시가 될지 아니면 앞으로도 얼마나 더 이어질지 예측도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게 있는 것처럼, 기왕 다시 조직에 몸을 담는 선택을 하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개인의 심리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익힐 수 있는 기회로 거듭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