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1

어렸을 때 나는 줄곧 사색에 잠기곤 했었다.

by 이열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돼서나 궁금해할 법한 것들을 궁금해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 부모님께 혼나서 벌을 받던 중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태어나서 살고 있을까, 어떻게 이 수많은 생명들 중 나라는 존재가 생겨났을까?'


조금 더 나이가 들고 나서는 이 의문은 염세적으로 바뀌었다.


'왜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서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갈까? 아예 안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이것은 죽음에 대한 갈망은 아니었다. 자살하고 싶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아니었다. 다만, 세상 살아가면서 좋은 날보다 힘들고 슬픈 날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은데 왜 나라는 존재가 생겨나서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에 대한 의문이었다. 나는 만약 나에게 태어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었다면 당연하게 '아니오'를 외쳤을 것 같다.


이 의문은 성인이 돼서까지도 이어졌다.


한 번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에 나에게 내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버튼이 쥐어진다면, 그 버튼만 누르면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고통 없이 말끔히 사라져 무(無)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그 버튼을 누르리라.'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가 나의 유년시절이 어두웠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매우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어쩌면 아무 걱정 없었던 시절이라 그 시간들 속에서 자아에 대해 깊게 고민해볼 수 있던 게 아니었싶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은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나라는 존재가 생겨난 것에 대한 의문을 풀진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누군가와 이 주제를 가지고 아주 심도 있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명쾌해질 정도로 정의 내릴 수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거나, 이 의문에 답을 찾을 수 있게 되면 그것에 대해 아주 길게 책으로 적어나가고 싶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보통 아이들이 하지 않는 행동이나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 유아기 때에 비 오는 날 엄마에게 마당에 앉아있고 싶다고 말해서 엄마가 그 나이의 나에겐 파라솔만큼이나 큰 어른용 우산을 두 개 겹쳐주고 화장실에서 쓰는 낮은 플라스틱 의자를 마당에 놔줬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우산들 가운데에 앉아 마당에서 한참이나 비를 보며 앉아있었다. ㅡ이 이야기는 그림일기로도 남아있다.ㅡ


또 초등학교 저학년쯤, 워낙 밥을 안 먹기도 했고 배고픔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배고픔'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 모르던 나이에도 비 오는 날 처마 밑 마당에서 먹는 라면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여름날 저녁 엄마 손을 잡고 어둑어둑해지는 푸른 하늘 밑에서 하는 산책이 얼마나 값진 시간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 시간은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지금 커서 느끼는 건, 다신 오지 않을 어렸을 때 그 시간들 속에서 그 순간들의 소중함을 알았음에 감사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유들로 어렸을 때 기억이 남들에 비해 또렷한 편인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정말 키우기 편했다고 한다. 한 번도 울고 떼쓴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엄마 따라 시장에 갔다가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 "엄마 저 인형 사주세요."라고 말했는데 엄마가 "응 OO아, 엄마가 오늘 돈을 별로 안 가지고 나와서 다음에 사줘도 될까?"라고 하면 "네 다음에 꼭 사주세요"라고 대답하고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남의 집에 나를 데려가면 보통의 아이들처럼 이것저것 만지며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엄마 옆에 가만히 말없이 앉아있었다고 한다.


또, 애기 때는 어디에 앉혀놓으면 마치 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세 살 무렵이었을까 부모님이 설악산에 데려갔었는데 잔디밭에 앉아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참을 가만히 있던 내가 갑자기 움직이자 인형인 줄 알았다며 다른 사람들이 놀랬다는 것이다.


요즘에도 가끔 어렸을 때 했던 이러한 행동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다가 누군가가 "무슨 생각해?"라고 말하면 "아무 생각 안 하는데? 그냥 멍하니 있었어."라고 대답하는 일이 꽤 자주 있는 편이다. 물론 생각해야 할 일이 있거나 무언가 생각에 빠져있을 때도 있겠지만, 이럴 때 대부분이 정말 '그냥'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도, 지금도 그런 행동에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명상을 좋아하기는커녕 해 본 적도 없었고,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다만 요즘에 나에게 가장 그럴싸한 이유라고 한다면 잡생각이 많아 복잡한 머리를 쉬어주고자 하는 하나의 방어기제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