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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 Jan 13. 2023

오만과 편견없이

제인 오스틴이 깨닫게 해 준 것들 

"엄마, 사람이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질 수는 없죠. 근데 버리고 싶은 건 다 버릴 수 있잖아요." 

아이가 갑작스레 건네는 말을 듣고는 설거짓거리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래. 아마도 그렇겠지? 하늘이는 버리고 싶은 것이 있니?”

“네, 쓰레기랑 죄요. 커다란 종량제 봉투에 안 좋은 말이랑 안 좋은 광고지는 다 넣고 싶어요.”

6살 아이가 ‘종량제’라는 단어를 고른 게 귀여워서 피식 웃다가, 죄를 비닐에 담겠다는 순수함에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 지우개를 들고 다니면서 놀이터에 적힌 욕 같은 거를 좀 지워야겠어요. 사람들이 보면 안 좋으니까요.” 

난 정의감에 찬 아들의 이야기를 마저 듣고 나서, 남은 그릇을 헹구기 시작했다. 깨끗한 물이 거품을 휘감아 배수구로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보았다. 버리고 싶은 건 다 버릴 수 있다는 아들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내 모난 구석들도 여기에 보내버리면 속이 시원하겠다 싶었다. 


문득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생각났다. 내게 있는 오만과 편견을 깡그리 몰아내고 싶다는 맘을 먹게 한 그 책. <오만과 편견>은 전통적인 계급 중심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질과 능력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는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결혼은 곧 가문끼리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 때에, 재산과 신분을 뛰어넘어 진정한 사랑을 이룬 인물들이 있다. 베넷 집안의 지혜롭고 당찬 딸 제인과 엘리자베스, 명문가의 신사 빙리와 다아시이다. 특히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처음에 이들은 서로에게 관심도 없을뿐더러,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미워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관심에서 애정으로, 애정에서 열렬한 사랑으로 발전한다. 무엇이 이런 반전을 만들었을까? 바로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깨달은 것이 계기였다. 두 사람 모두 으스대고 남을 은근히 무시하고 섣불리 판단한 지난날을 돌아본다. 오랜 시간 상대방의 진가를 보지 못했던 두 남녀는 비로소 오만과 편견의 비늘을 벗고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작가는 이 설레는 로맨스 속에 남의 티를 보다가 정작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자기의 인격적인 결함을 깨닫고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갖추며 살아간다. 그러나, 자기의 모습이 어떤지 파악조차 안 되는 인물도 있다. 바로 콜린스다. 그는 베넷 가의 친척이며, 캐서린 영부인의 영지에서 성직자로 살고 있다. 인생의 모든 선택 기준을 캐서린 영부인에게 두어서 그녀에게 늘 아첨하고 비굴하게 군다. 사실 콜린스는 베넷 가의 재산을 상속받는 1순위인 운이 좋은 사나이다. 그래서 베넷 가 사람들로부터 괜한 미움을 사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결혼으로 베넷 가문에서 자기의 입지를 다지려 했던 그는 베넷 씨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하다가 거절당한다. 결국,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인 샬럿에게 청혼하여 결혼한다. 샬럿이 자기와 결혼해서 얻는 엄청난 유익에 대해 늘어놓을 때 난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콜린스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한 구절을 뽑자면, '자신의 양심을 만족시킨 콜린스 씨.'이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줄도 모르고, 자기 주제도 파악 못하는 사람. 온갖 미사여구로 사람들에게 아부를 떨거나, 거드름을 피우며 자기 체면을 세우려고 한다. 그 모든 행위는 오롯이 자신을 위한 것으로 위선적인 양심에 물을 주고 있는 꼴이다. 

나는 책을 덮으며 사람 안에 있는 오만과 편견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를 곱씹으며 소름이 끼쳤다. 오만과 편견이 가지는 특징 때문이다. 오만과 편견은 서로 힘을 싣는다. '나 잘 났어.'라는 태도는 타인을 내려다보며 함부로 평가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내 잣대로 남의 행동을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다 보면 '내가 옳다.'라는 식의 교만하고 뻣뻣한 태도가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이런 내면세계는 사람 간의 관계를 깨뜨린다. 어떤 경우에는 진실한 사랑마저 앗아간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을 빼앗는 것이 오만과 편견이라면, 싹 씻어내버리고 싶은 간절함이 생겼다. 내가 당신보다 잘 안다는 태도,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않는 태도, 내 생각과 다르면 귀를 닫으려는 태도, 타인의 행동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태도. 모두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들이다. 

한동안 책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특히 콜린스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장면을 한참 상상했다. 콜린스 같은 부모와 홈스쿨링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웃기긴 했지만,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생각의 꼬리를 물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보다는 좀 더 빨리 내 모습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아이들을 더욱 너그럽게 품는 것도, 아이들에게 내 권리만 주장하거나 고집하지 않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막내와 함께 '오만과 편견'이라는 쓰레기를 주워 비닐에 담는 상상을 한다. 살아있는 주님의 말씀으로 내 인격이 한 뼘 성숙해지는 한 해를 그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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