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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 Jan 17. 2023

목은 쉬어도 책읽기는 쉬지 않아요

아이들과 나를 이어주는 끈으로서의 책읽기

“얘들아, 엄마가 책 읽어줄 때 너희 표정이 달라져!” 

남편은 내게 반쯤 기대어 이야기 듣는 아이들 얼굴을 유심히 보곤 한다. 셋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남편이 알아챈 것이다. 아이들은 책 내용에 따라 미소를 머금거나 깔깔대기도 하고, 얼굴 근육을 살짝 씰룩거린다. 샤워를 하고 포근한 잠옷을 입고 내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는 삼 남매의 밤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오래전, 둘째를 낳고 집에서 몸조리하던 날이 생각난다. 남편은 출근했고, 나와 18개월이었던 첫째 그리고 갓 태어난 둘째가 이른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을 기다리며 거실 바닥 한편에 누워서 첫째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밤새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돌보느라 기운이 영 없었지만, 책을 들고 쪼르르 내 앞에 와 앉는 첫째를 보고는 잠긴 목을 가다듬었다. 곧 도착한 도우미 이모님은 날 보고 “몸도 힘들 텐데 이렇게 수고를 하니 아이는 얼마나 행복할까.”라며 앞치마를 맸다. 나는 “잠이나 자고 쉬지, 뭐 하러 책까지 읽으며 애를 쓰냐.”라고 핀잔하지 않았던 이모님께 오래도록 감사했다. 


3년 전, 꿈비 책방을 연 어느 날.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듣던 18개월 아가는 올해 11살이 되었다. 세 아이 모두 몸도 맘도 훌쩍 자랐다. 그러나 내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어린이 도서관 한편에 따땃한 방바닥은 우리의 핫플레이스였다. 온기를 좀 더 느끼려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서는 노곤노곤해질 때까지 책을 읽었다. 세 아이가 거침없이 뽑아와 수북하게 쌓은 책을 읽고 나면 배가 고팠다. 도서관 내 식당으로 내려가 할아버지, 할머니들 사이에 껴서 점심을 먹곤 했다. 후식으로 바나나 우유까지 마시면 다시 따끈한 바닥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마저 책을 읽었다. 집에서 책방을 연 적도 있다. 일주일에 하루는 새벽까지 책을 읽자며 시작했었다. 세 꼬마는 이불 더미를 끌고 와 아늑한 자리를 마련하고는 책방 분위기를 냈다. 아이들 눈이 스르르 감기고 내 목이 칼칼해질 때까지 책을 읽었다. 책장에 오래 꽂혀 있었지만 선택받지 못했던 책들도 그날은 읽기 리스트에 올랐다. '꿈비책방'은 책 읽는 보통날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 주었다.  



책은 아이들과 나를 이어주는 끈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다른 세계와 이어주는 끈이다. 옷장 안 모피 코트를 제치고 만나는 나니아 세계를 조심스레 걷는다. 캐스피언 왕자가 이끄는 새벽 출정호의 키를 잡고 스릴 넘치는 항해를 하기도 한다. 막내가 호빗을 들고 내 앞에 척 내밀 때는 그 두께에 헉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어느새 그 세계의 매력에 빨려 들어갔다. 선이 악을 누를 때 통쾌해하고 악이 판을 치면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거리기도 한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책을 덮고 우리 세계로 돌아온다. 내가 책을 읽어준다는 표현보다는 같이 책을 읽고 있다는 표현이 더 와닿는다. 지난 시간을 통해 자녀와 함께 하는 독서는 함께 세상을 알아가고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사람과 세상을 만든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추구하는 시간임을 깨달았다. 



혼자서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기인 첫째, 둘째는 스스로 책을 읽지만 여전히 내가 책 읽어주는 시간을 기다린다. 막내는 말할 것도 없다. “엄마가 읽어주시는 게 더 좋아요. 더 재밌고 실감 나거든요.” 나도 셋 만큼이나 그 시간이 좋다. 장편을 읽어주기 시작한 이후로 책 읽어주기 재미에 더 빠져들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가 책으로 쿵짝이 잘 맞는 이유는 아마 독서를 학습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일 거라 짐작하며, 독서 그 자체의 즐거움을 누린다. 언제까지 소파에 앉아 도란도란 책 읽는 밤을 보내게 될까. "엄마, 이제 그만요!"라고 할 때까지 계속 읽어주려고 한다. 원하는 만큼 충분하게 넉넉하게. 함께 읽을수록 아이들과 내가 공유하는 스토리가 많아진다는 생각을 하면 배가 부르다. 오늘 밤도 그런 든든함을 느끼는 밤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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