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서너 살 즈음 되던 해에 홈스쿨링을 알게 되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교육 시스템이라 새로웠고,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닌 참 교육의 모델이라는 생각에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홈스쿨링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홈스쿨링의 역사도 짧을뿐더러, 대학 입시가 최종 목표인 한국의 교육 상황에서 '당연히 공교육이지, 대안교육은 글쎄.'라는 인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홈스쿨링과 관련된 교육 환경이 많이 갖춰져 있지 않다. 반면 미국만 하더라도 다양한 커리큘럼이 있다. 엄마들은 자기의 교육 철학에 맞는 커리큘럼을 선택하고, 책과 학습 자료를 구매하면 된다. 그들이 내심 부러우면서도, 저렇게 갖춰진 걸 그대로 쓰는 게 진짜 홈스쿨링일까 싶은 의문도 들었다.
아이들이 학령기에 접어들기 전부터 홈스쿨링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만의 교육 체계가 필요했고 고민은 커졌다. 세 꼬마가 잠든 밤에는 곧장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이디어를 짜고,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 했다. 유용한 정보는 모아서 조합하고, 아이들 상황에 맞게 적용했다. 더 해볼 만한 것이 없을까 싶어 둘러보면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났다.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좋은 방법을 찾아 온라인 세상을 누볐다. 시간을 들인 만큼 정보력은 강해졌다. 그러나 때론 그 정보력이 더 나은 것을 저울질하면서 무엇 하나를 꾸준히 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유난히 피곤하던 어느 날 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밤마다 애를 쓰며 홈스쿨링 시간표도 짜보고 정보도 모으는 게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을까?' 곰곰이 돌아보니 나는 '왜 하는가?'라는 교육 목표보다는 '어떻게 하는가?'라는 교육 방법에 치우쳐 있었던 것이다. 교육의 방향을 더 확실하게 정하지 않고 교육 방법을 찾아 헤매는 것은 무의미한 노력임을 새삼 깨달았다. 이미 정해놓고도 흔들리는 내 모습도 발견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걸 짬뽕처럼 이리저리 한데 섞어서 주지 말자.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을 가르치자.' 마음가짐이 달라지니까 '가르치면 좋을 만한 것'이 아니라 '꼭 가르쳐야 할 것'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책임감, 성실성, 배우는 태도 등. 그중에서도 우리의 기준,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와 세계관이 배움의 현장에 녹아 있는지 살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고, 심지어 길에 핀 꽃을 보는 짧은 순간에도 기본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홈스쿨링 4년 차, 지금은 홈스쿨링을 막 시작했을 때처럼 갖춰진 커리큘럼이 없어서 아쉽거나 막막하지는 않다. 욕심부리지 않고 허락된 교육 환경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밟는 곳이 길이 되는 홈스쿨링의 묘미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홈스쿨링 하는 이유와 목적이 한층 뚜렷해져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 번은 도대체 홈스쿨링을 어떻게 하는 거냐며 묻던 사람에게 말했다. “특별한 게 있겠어요. 저랑 애들이 하다 보면 그게 커리큘럼이 되는 거지요. 그런데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일지는 오래오래 고민하고 생각하세요. 생각이 정리되면 그대로 꾸준히 해보세요.” 얘기를 듣고 고민에 잠긴 표정을 짓는 사람. 홈스쿨링 잘 하는 비법을 기대했던 걸까? 그 사람도 언젠가는 내 말을 찰떡같이 이해할 때가 오겠지 싶다. 집에서 교과목 학습을 한다는 좁은 의미를 넘어서, 삶의 양식과 가치관을 오롯이 물려주는 교육 환경 ‘홈스쿨링’을 직접 경험해 본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