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무모한 도전을 선물받다
나는 높은 곳이 무섭다. 가만히 서 있는 건 그나마 괜찮지만, 거기서 기구를 탄다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건 질색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소풍 날 친구들과 바이킹을 타면 한 줄이라도 앞으로 가서 앉았다. 다른 아이들은 시시하다며 비워두는 중간 자리, 거기에 앉아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 손을 꼭 붙잡고 눈을 꾹 감았다. 내가 탔던 바이킹은 시간이 정말 길었다.
결혼해서도 마찬가지다. 신혼여행을 가서 패러 세일링을 했다. 난 하늘에 떠서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남편은 그 모습을 기가 막히게 포착해 찍어두었다. 한 번은 에버랜드에서 큰맘 먹고 T 익스프레스를 탔다. 남편 어깨를 쥐어뜯듯 세게 잡고는 놔주질 못했다. 비행기를 타도 은근한 긴장이 이어진다. 비행시간만큼 잔잔하게 계속되던 불안감은 공항에 발을 디뎌야 사라진다.
그런데 이 무모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어린이 대공원 리프트에 탔다. 재밌다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는 세 아이들, 얄미운 그들의 손을 꼭 잡고 탔다. 지난달에는 경남 의령의 명소라는 출렁 다리를 건넜다. 다리에서 뛰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 그들에게 허공에 외치는 울림 같은 부탁을 하며 다리를 건넜다. 나 빼고 갔다 오라고 손 흔들면 그만인데, 굳이 같이 따라가서 소리를 꽥꽥 지르다가 흑역사를 쓰고 온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아내, 높은 곳에만 올라가면 평정심을 잃는 엄마가 재밌었다니 나도 웃고 넘긴다.
얼마 전, 남편은 내 생일을 맞이하여 송도 해상 케이블카로 안내했다. 내 생일 맞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답 없는 질문일 뿐. 우리 가족 다섯은 작은 캡슐에 올랐다. 남편은 아주 센스 있게 유리 바닥 옵션을 골라놨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바다와 청청한 하늘. 아이들은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며 들떠 있다. 남편은 흐뭇한 웃음을 띠며 사진을 찰칵 찰칵 찍는다. 난 나보다 한참 작고 여린 아들, 딸에게 몸을 착 붙이고 앉아 있었다.
순간 뜬금없이 어떤 질문이 맘에 날아들었다. ‘넌 뭐가 두렵니?’ 온몸이 와들거리는 이 순간, 마음 한 켠에서 느닷없는 대답이 올라왔다. ‘그러게 말이야.’ 케이블카에서 내려서도 한참 생각했다. 그날 밤, 까무룩 잠이 들려고 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내가 돈 주고 절대 하지 않을 경험을 선물해 줘서.” 눈을 반쯤 감은 남편이 내 말을 제대로 들었을까. 괜히 말했나 싶어 머쓱했지만, 몇 분 안 남은 내 생일이 지나기 전 꼭 표현하고픈 고마움이었다.
또 하나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당연히 나의 것이라고 여기던 두려움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매번 똑같은 패턴으로 긴장하다가 웃고 넘길 게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게 훨씬 좋다는 것을. 사소한 일상의 경험이 질문이 되고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지난 며칠 동안 내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두려움을 꺼냈다. 극복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13년간 무모한 도전을 넌지시 건네고는 절대 물러서지 않던 남편, 무슨 빅 픽처가 있었던 걸까. 남편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어쨌든 고마워요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