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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재원 snob Feb 26. 2023

천재원 1st EP [프세우도]
트리비아와 데모

genuine의 pseudo의 pseudo

앨범을 냈다. 아직은 스트리밍 사이트에 내 이름을 치면 동명의 트롯 가수 분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내가 나온다. 그마저도 세번째였지만, 얼마 전 광고 노출로 인해 두번째로 올라온 것이다. 등수로 의식하는게 맞냐는친구에게는 당장 스트리밍 사이트 메인에 무엇이 떠있냐는 말을 해주었다.


지금 와서 들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지만, 아무래도 이 앨범에 대한 질문을 꽤 많이 받아왔고 그때마다 생각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기에 지금이나마 기록 차원에서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멜론 캡처. 사실 발매한 지 2년도 넘어가는 앨범이다.


앨범 제목 [프세우도]는 영단어 pseudo를 보이는 대로, 그러니까 잘못 읽은 음성의 전사이다. 여기서의 pseudo는 '유사'과학의 그 '유사'이며, '수도 코드(psuedo code)'할 때 그 '수도'이기에 [수도]라고 읽어햐 하는 그 단어임을 밝힌다. 어떤 진실의 모조가 '수도'라면, 수도의 모조는 '프세우도'이다. 노래를 다 만들고 나서 처음 든 감상이었다. 모조의 모조같아 보일 정도로 서툴고 잘못 투성이인 것이다.


하지만, 모조는 우스꽝스럽고 또 푹신하다. 처음 'pseudo'라는 단어를 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발음은 어떤 것일까? 그것이 프세우도일(모조일) 이유는 한없이 많다. 그것이 수도일 이유는 단 하나이다. 수도가 진실이기 때문이고, 더는 움켜쥘 거리도 없다.


축축하고 끈적한 '진실'의 늪에 빠질 것인가,
따뜻한 푹신한 '모조'의 땅을 인정하고 그 위에 누울 것인가

 

인간을 포함해 존재는 항상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 사이를 진동한다. 하지만 인간은 진실이 아닌 것에서 진실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왜 우리는 진실됨에 집착해야 하는가. 어떤 진실된 것을 가지지 못한다면, 서툰 모조를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빛나는 모조이다. 진짜가 아닐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들과 감정들을 이번 앨범에 담고자 하였다. 이름부터 모조pseudo의 모조인 [프세우도]에.




0. 탄생 비화


사실 이 앨범은 대학교 과제 제출물을 만드는 데에서 출발했다. 전공 수업 중에 어떤 토픽에 대한 영화와 그에 대한 미디어적인 것들을 공부하는 수업이 있었고, 그 해의 토픽은 AI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이하게도 최종 과제 제출 양식이 자유였기에, 전역 직후의 나는 '이 수업에서 제일 특이한 과제를 내보자'하는 생각에 노래 4곡을 덜컥 만들었다.


그 후, 재미로 친구들에게 들려주다가 그냥 두기에는 아깝다는 말에 믹싱/마스터링을 거쳐 앨범을 내게 되었다. 가사에 'pseudo'적인 AI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사에 큰 의미는 없지만, 군데군데 있는 말장난같은 것들을 해석하는 데에 이 말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1. IDWGA!


Verse 첫 부분의 코드진행, I - IV - (bVI) - V7가 떠올라서 만들었던 노래이다. 정말 기초 중의 기초적인 진행이지만, 각 코드들 길이의 변칙과 bVI 패싱코드의 존재가 있어서 I -VI - V인 줄도 몰랐던 기억이 난다(이 노래를 만들었을 당시 화성학에 대한 지식이 아예 없었기에 그러했기도 하다). 


굳이 적지 않아도 이건 데모버전임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원래 생각해둔 제목은 <anger!> 였다.

처음에 생각했던 사운드, 검정치마의 <Lester Burnham> 같은 보컬의 개러지 락을 상상하면서 녹음을 했고, 그 흔적이 위의 데모에는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담으로 노래의 가사가 하나도 말이 안 되는데, 이는 가사를 쓰기 전 입에 잘 붙는 발음이 뭐가 있을까 찾는 과정에서 임시로 녹음해둔 것을 나중에 들어보니 나쁘지 않아 나도 그제서야 직접 청음하며 가사를 받아쓰기 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사를 적고 보니 화자가 화가 나있는 것 같아 제목을 <anger!>로 하려다, 가사의 첫줄에 나오는 단어들의 앞글자들만 따서 <IDWGA!>로 지었다.


2. Ennui


제목을 본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읽는 것인지 물어보았었고, 그냥 한글로 '권태'라는 뜻이더라- 라고 항상 답해왔었다. 제목을 <권태>로 하자니 동명의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 굳이 권태를 영어로 한 <Ennui>를 제목으로 하였는데, 좀 더 쉬운 제목으로 했으면 사람들이 더 찾아 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한다.


앨범 발매 전, 지인들에게 어떤 노래가 가장 좋냐고 물어봤을 때 압도적으로 <Ennui>를 고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광고 삽입까지 된 노래이나 아직도 네 개의 곡 중 이 노래가 가장 정이 가지 않는다. 코드 진행은 거의 2-5의 반복이며,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직접 특이한 코드 진행을 만들어 낸 줄 알았다가 실망한 뒤로 정을 붙이지 못한 것 같다.


Installation of two towels on towel bar
They never get soaked


노래 중 위 가사의 의미를 물어보는 분들이 몇몇 계셨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권태에 대한 내용이고 위 가사도 그 맥을 같이 한다. 두 연인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 식어가고, 그렇기에 함께 하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렇기에 수건이 바짝 말라있는 것인데, 그렇다는 것은


3. 닻


자신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음악을 만들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을 만들 시기에 나는 내가 크로매틱한 라인이 있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닻>은 같은 코드에 크로매틱한 하행 베이스라인으로 시작하는 곡으로 뒤로 갈수록 악기가 추가되며 다이나믹이 고조되는 분위기를 상상하며 만든 곡이다. 


<닻> 데모. 

그 당시에 좋아했던 스타일의 곡인데, 오히려 더 좋아했다보니 다른 곡들보다 만들기는 더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좋긴 하지만 끝까지 만족스럽지는 못했던 곡이고, 지금 들어보니 곡을 끝까지 끌고 나갈 동력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데모와 음원을 비교해보면 어떻게든 다이나믹을 줘보려고 노력한 티는 난다. 계속 이것저것 시도해봐야 어떤게 내가 좋아하는 '그' 곡의 스타일을 만드는지 알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가사를 쓰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느낀 곡이며, 사실 아직도 작곡적인 부분 보다 작사적인 부분에서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직접적으로 쓰지 말아야지, 해도 자꾸 습관처럼 무언가 전달하고자 한다.  


4.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제일 정이 든 곡이지만, 생각보다 지인들에게 물어봤을 때 '베스트는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을 많이 들은 곡이다. 너무 어려운 가사를 쓰지 말자고 생각하고, 맘 편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가사를 썼었다. 사랑 노래의 가사는 솔직할수록 유치해지지만 그만큼 부정하기 어려워진다.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크로매틱한 라인을 넣어서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곡으로, 코드 진행은 앨범 수록곡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연말 특수인 크리스마스를 노리고 만든 곡이었으나, 발매가 늦어져 실패했다. 잘 들어보면 뒤에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멜로디벨과 슬레이벨 소리가 들린다. 




트리비아를 쓰며 음원과 데모 버전을 오랜만에 쭉 들어봤다. 따로 음악을 배운 적은 없지만, 기타로 한음 한음 짚어가며 내가 원하는 음을 찾아갔었다. 이미 그 때도, 내가 원하는 어떤 음들의 조합이 있고, 어떻게 하면 그 소리가 나는지 따라갈 수 있다는 사실이 우선 좋았다.


음악을 유일한 나의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라서, 오히려 평생 음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더 좋은 음악을 언젠가 또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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