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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28. 2023

그 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말

끄적임 2. 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다. 친구 본인 책상에  시다. 친구는 그저 낙서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시였다. 교과서나 참고서에 있는 시를 보았지만 수업 시간에 주어진 자료에 불과했고,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하는 텍스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엎드려 자고 있는 친구의 틈 사이로 살짝 보게 된 그 시에서 나는 묘한 신비함을 느꼈다. 지구 밖에 살고 있는 외계 생명체를 만난듯, 알지 못했던 세상을 만난 나는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러나 그 충격은 나의 인생에 균열을 내지 못했다. 그 때 나는 서울로 대학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 내 인생에 시가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었다.

 그러다 대학 2학년, 다시 시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설렘'이라는 주제로 짧은 에세이 썼데, 운이 좋게 교수님 눈에 었다. 상금 5만원과 함께 나에게 주어진 별명은 '시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나는 시를 읽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는데 문학 소년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문학 소년으로 바라봐주는 시선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아주 가끔 시를 읽다. 그 때 만난 시인은 기형도, 정호승, 나희덕 같은 시인들이었다. 나희덕의 『어두워진다는 것』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다. 알지 못했던 감각을 경험하는 쾌감이 있었다.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맛 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어느 날, 교수님과 학부생이 대면하는 자리가 있었다. 교수님이 학부생의 학교 생활이 궁금하다며 소규모 그룹 면담을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그 때 교수님이 나에게 "자네는 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으셨다. '설렘' 에세이를 보고 상금 5만원을 주신 교수님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나. 그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시는 사랑이랑 바이러스를 연결하는 것이네. 사랑을 말하려고 사랑이 아닌 바이러스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라고 하셨다. 물론, 십년도 더 된 일이니 정확한 문장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질문을 간직하고 있으며, 시를 쓰거나 읽을 때 생각하곤 한다.

 교수님의 말씀을 요약하자면, '시는 비유로 말한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내가 교수님의 말씀을 아직 비교적 생생한 느낌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의 본질은 비유인가. 비유가 없는 시는 시가 아니게 되는 것인가. 어떤 말이 다른 의미를 품지 않고도 가장 아름다운 말일 수 있다면, 그것은 한 편의 시가 아닌가. 물론, 다른 의미를 품지 못한다면 말해지는 순간 그 말의 생명은 끝이지만 말이다.

 나는 어떤 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말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고, 가치 없는 말로 치부지만, 한 순간, 한 사람만을 위한 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찰나를 장식하고 사라지지만, 빛났던 그 순간은 영원히 기억되는 불꽃놀이와 같은 말.

 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읽으니, 낡고 바랜 것만 같은 시들이 눈에 띄었다. 말법이 직선적이고 시어가 단순하여 읽은 순간 다 읽혔고,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시의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한 사람만을 위해 쓰인 였다면 어떨까. 한 사람을 위한 시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전달되었다면 어땠을까. 그 찰나의 순간, 이 시들은 얼마나 빛이 났을까. 직설적이고 직선적인 이 말들이 얼마나 강렬하게 내리꽂혔을까.


 한 사람을 위한 말이,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할 때, 한 치의 오차없이 정확하게 전달 순간을 꿈꾼다.



오래가 아니야 조금

많이가 아니야 조금

네 앞에서 잠시

앉아있고 싶어


나는 왜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부탁이야>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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