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명, 별을 쥔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별을 쥐었던 사람(김물, 『동시마중』올해의 동시 2023)
요시다 유니의 전시에 다녀왔다. 방 아래에서 올려다 본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옆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본 적 없는 각도"에서 바라본 세상. 내가 생각했던 문학의 정의와 같았다.
문학은 실제 존재하지만 본 적 없는 세상을 눈 앞에 그려주었다. 그러나 오늘 그 반대를 보여주는 작품을 만났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바라본 세상을 표현한 동시가 있다. 김물의 <우리는 모두 별을 쥐었던 사람>이다.
별 하나를 주웠습니다
귀퉁이가 조금 부서진
손바닥에 들어간 작은 별을
꼭 쥐고 걸었습니다
빛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힘센 누군가에게 뺏기지 않도록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조심스레 손바닥을 열어 보니
별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을 쥐었던 자국만 남아 있었습니다
내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엄마가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 자국을 보며
소망을 말하게 된 유래를
-<우리는 모두 별을 쥐었던 사람> 전문
"별 하나를 주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별을 주울 수 없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손바닥에 우리가 별을 쥐었다는 흔적은 있다. 바로 손금이다. 손금을 통해 우리는 별을 쥐었던, 우리가 감히 쥘 수 없는 별을 쥐었던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상상을 반복하면, 정말 있었던 일처럼 실감나게 떠올리면 상상은 기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있었던 일 뿐 아니라, 있었던 것처럼 느끼는 일 또한 기억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으리라.
상상이 기억이 된다면, 존재하지 않았던 일은 존재했던 일로 변한다. 상상이 기억이 된다는 건,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과 같다. 상상이 현실로 전환되면, 과거의 그 경험이 우리의 지금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강력해진다. 우리는 별을 쥐었던 자국을 보며 "소망을 말"한다. (우리에게 손금을 보면서 소원을 말하는 문화는 없다. 그러나 손금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좋은 앞날을 희망하는 일은 소망을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별의 고귀함에 기대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고, 좋은 일을 희망한다.
우리가 손바닥에 소원을 비는 이유는 별을 쥐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별은 멀리 떨어진 밤하늘이 아닌 우리 손바닥에 있었다. "우리는 모두 별을 쥐었던 사람"이다. 우리는 별을 품을 수 있을 만큼 귀한 존재이다. 스스로를 함부로 다루어선 안된다. 그러나 "귀퉁이가 조금 부서진" 별이다. 완전하지 않은 별이다. 또한, 별을 손에 쥐었던 순간 우리는 "힘센 누군가에게 뺏"길 수 있는 존재다. 나약한 존재다. 완전하지 않은 별을 지닌, 나약한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위에 있지 않다. 다른 존재를 함부로 대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쥐었던 별은 "귀퉁이가 조금 부서진" 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도 별은 별이기에, 소원을 빌어볼 수는 있겠다. 손바닥을 펴고 별을 쥐었던 순간을 기억해보기를 바란다. 어떤 모양의 별이었는지, 얼마나 빛 났는지, 얼마나 따뜻했는지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