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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r 21. 2024

어린이-청소년 경계에 있는 존재를 위한 이야기

유영소의 아동소설집 『박하네 분짜』(문학동네, 2023)

 이 책을 동화집이라고 해야 할지 아동소설집이라고 해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해묵은 논쟁이겠지만, 동화와 소설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린이를 위한 서사를 통칭하여 '동화'라고 부르고 있지만, 어린이를 위한 '소설'을 동화라고 부르는 실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상과 낭만의 언어를 가진 동화는 고유성이 지켜져야 하니까요. 어린이를 위한 소설을 포함하는 현재 동화 개념의 사용은 동화의 오리지널리티 상실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영소 작가님의 아동소설집『박하네 분짜』에는 6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지금-여기에서 소수자의 자리에 있는 인물입니다. 첫 작품이자 표제작인 「박하네 분짜」에 등장하는 박하의 본명은 박하준입니다. 하준이의 엄마는 베트남 사람입니다. 하준이를 좋아하는 미소는 하준이 엄마를 푸엉이모라고 부릅니다. 「내가 기억할게」의 연우의 엄마 아빠는 북한에서 내려 왔습니다. 북한을 나오는 과정에서 아빠는 돌아가셨습니다. 연우 이모는 연우 엄마와 스스로를 새터민이라고 부릅니다. 새터민은 일상 용어가 되었지만, 북한이탈주민을 지칭하는 말로 적합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북한을 나와서 산다는 일이 숨겨야 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박하는 엄마와 함께 베트남을 다녀옵니다. 미소는 푸엉이모에게 박하가 공항에서 틴트를 샀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기대하지 않는 척, 선물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박하에게서 받게 되는 건 베트남 라면입니다. 미소는 박하의 선물을 기대했던 자신이 부끄럽지만, 여전히 박하에게 마음이 갑니다.

 박하는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기 때문에 겪는 일은 베트남 여행을 길게 다녀왔다는 것 뿐입니다. 베트남의 엄마 가족, 친척을 만나러 다녀왔습니다.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서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엄마를 부끄러워 하는 이야기도 역시 아닙니다.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서 겪는 아이의 심리적 갈등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을 때, 박하가 전혀 안쓰럽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해외이주민이기 때문에 차별받고, 고통받는 어린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언제까지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달라진 현실, 이상적인 현실의 모습을 그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지향점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평론가 송수연이 말하듯, 있는 현실보다는 있어야 하는 현실을 그려야 한다. <박하네 분짜>는 그 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기억할게>의 연우도 부모의 출신 지역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습니다. 연우의 엄마는 한국에서 재혼을 했습니다. 새아빠는 연우 엄마를 사랑하고, 연우와 허물없이 지냅니다. 새아빠의 조카가 "넌 왜 우리 삼촌한테 아빠라고 안하고 아저씨라고 해?"라고 물었을 때도, "우리 아들한테 시비야?"는 말로 편들어주었습니다. 새아버지는 항상 연우 편에서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연우에게 새아빠는 믿음직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연우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새아빠의 아버지는 걱정이 되었나봅니다. 연우에게 용돈을 주고, 연우가 방을 나가는 사이, "그래, 저도 애비되면 애비 마음을 알겄지."라는 혼잣말을 작게 뱉는다. 할아버지는 어떤 마음일까요. 연우에게 "승수가 네 마음에는 드니?"라고 물어보는 할아버지입니다.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아들의 새가족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들이 걱정되는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말한 "애비 마음"이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를 키울 아들이 걱정되고, 북한에서 온 사람과 같이 살게된 아들이 걱정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시선이 염려스러운 것일 테지요. 평탄한 길을 아닐테니까요. 그런데 그 마음은 아직 세상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는 걱정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변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괜찮다고 해도, 연우가 아버지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세상의 따가운 시선은 그대로일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세상이 변하기 전까지 계속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더욱 아픕니다.

 다 옮겨두지 못했지만, 『박하네 분짜』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청소년 혹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에 있는 존재가 겪을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친구 관계, 이성 관계, 그 속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 같은 것들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그 사이의 존재들에 대한 존중이 엿보이는 책입니다.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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