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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pr 16. 2024

희지는 반대로 달립니다

김경은의 소설 『빅토피아』(씨드북, 2024)

 김경은 작가님의 빅토피아를 읽었습니다. 빅토피아는 빅과 유토피아가 합쳐진 말입니다.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가상 공간입니다. 소설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빅토피아는 "세계 최초 체질량 지수 기반 VR 아바타 메타버스 플랫폼"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희지는 165센티미터에 몸무게 110킬로그램 입니다. 친구들과 쇼핑을 간 지하 상가에서 '프리 사이즈'로 판매하는 옷은 희지에게 맞지 않습니다. 세상은 뚱뚱한 사람을 차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뚱뚱하다고 옷 가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뚱뚱한 사람은 그들에게 맞는 옷을 찾기 어렵습니다. 표준 체형에 맞게 옷을 만들어야 이윤이 남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뚱뚱한 사람이 입을 수 없는 옷을,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프리사이즈'라고 부르는 일은 배척의 언어처럼 보입니다. 

 희지는 자신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친구, 살 빼는 약을 먹으라고 하는 부모님에게 반감이 있습니다. 나를 나로 봐주지 않고, 변해야 하는 모습으로 규정하는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희지는 빅토피아를 좋아합니다. 빅토피아는 가상공간이지만, 현실의 체형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일정 체질량 지수가 넘지 않으면 가입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희지는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겨울방학, 백설기입니다.

 "아이 러브 마이셀프"는 희지가 자주 외우는 주문입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기에, 나라도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야 합니다. 희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설기와 겨울방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방학은 패션에 관심이 있지만 옷태가 나지 않는 자신의 몸매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희지는 친구의 자기혐오에 영향을 받아 힘들어합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주문을 외우며 버티고 있는데 친구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어렵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사실에서 소속감을 느꼈지만, 친구의 불행이 오히려 자신에게 상처로 다가옵니다. 친구의 모습을 통해 나의 상처를 명확하게 확인할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희지는 빅토리아를 떠나려 합니다. 그러나 그때 시작된 이벤트가 희지를 붙잡습니다. "언리미티드 테이스트 테크놀로지" 이용권입니다. 가상공간에서 미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술입니다. 가상공간에서 식욕이 충족된다면, 현실의 나는 먹지 않아도 됩니다. 다이어트에 좋은 기술인 것입니다.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가상공간에서 다이어트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였다니 이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스포가 될 수 있겠지만 중요한 부분이기에 밝히겠습니다. 이건 빅토리아 개발자의 이윤 추구 전략입니다. 

 빅토리아의 개발자는 "라면이 젤 좋아"를 줄인 "라젤"입니다. 그녀도 처음 비만인이었습니다. 사회의 온갖 차별과 멸시에 지쳐 비만인을 위한 가상공간을 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비만인이 아닙니다. 뚱뚱한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히려 혐오합니다. 사실 그녀의 마음은 뚱뚱한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아닙니다. 그녀는 처음에 뚱뚱한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를 싫어했지만, 지금은 빅토리아에서 뚱뚱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소설에서 이유는 명확히 나오지 않지만, 열등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라젤이 운영하는 빅토리아는 이제 돈벌이 수단에 불과합니다. "언리밋 테테크" 프로모션을 활용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보려고 합니다. 라젤은 희지를 프로모션의 주인공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이벤트는 3라운드로 진행됩니다. 희지는 두 번째 라운드에서 탈락합니다. 희지가 탈락한 라운드에서는 좀비가 등장하는데, 좀비를 많이 퇴치하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입니다. 좀비는 참가자의 기억과 연동되어 그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희지는 좀비로 나온 친구를 죽이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불필요하게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가자는 좀비를 퇴치하기 위해 가위질, 칼질을 하고, 좀비는 몸 여기저기가 터져나갑니다. 물론, 좀비가 터지는 부위에서는 파스타, 수프가 흐릅니다. 빨간 피가 나오지는 않지만, 좀비를 퇴치하는 방법이 무자비합니다. 청소년 소설에서 이렇게 불필요하게 잔인한 장면이 나올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잔인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해도 최대한 정제하면서 청소년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장면을 묘사해야 할진대, 지나치게 적나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중도 탈락한 희지를 라젤이 다시 불러옵니다. 그때 희지는 라젤이 만든 빅토리아는 처음 의도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희지는 우승을 하여 빅토리아와 라젤의 실체를 폭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마지막 라운드는 설문대 할머니의 마지막 명주 한 동을 찾는 것입니다. 명주 한 동이 있는 곳은 하늘의 먹구름이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희지는 화살표 반대 방향으로 달립니다. 정해진 방향이 아닌, 정해진 방향에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뛰어갑니다. 

 세상은 뚱뚱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뚱뚱한 청소년, 뚱뚱한 여성 청소년이 받는 심리적 압박감은 더욱 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떤 누군가에게 해방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성 청소년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렇게 규정했고, 저 또한 사회적 시선을 답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희지는 사회의 규정과 시선을 시원하게 배반한다는 사실입니다. 희지는 사회적 시선이나 관습을 부정합니다. 빼야 한다, 날씬한 것이 좋다는 등의 일방적인 화살표 아래에서 적극적으로 반대로 달립니다. 뚱뚱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가상 공간에서조차 생겨버린 화살표에서 희지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달리는 장면이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가.

 빅토피아는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가상 공간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반증입니다. 가상 현실과 현실을 구분하는 일이 점차 불가능한 시대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아직 가상 현실은 현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은 일을 위한 실험장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 사회 실험의 장으로서 가상 공간의 역할을 생각해본다면, 비만인을 위한 완벽한 유토피아를 만들어보는 건 어땠을까 싶습니다. 

 가상 공간은 도피처이고, 뚱뚱한 사람이 그곳에 접속하는 건 현실을 피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가상 공간은 도피처가 아니라,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상상의 장으로 기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상 공간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습니다. 무한함을 믿고 마음껏 상상해보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설에서 개연성은 생명이지만, 새로운 공간의 또 다른 나는 현실의 법칙이 아닌, 새로운 개연성이 작동하지는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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