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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pr 18. 2024

여성 해방 너무 어렵다

조우리 소설집 『사과의 사생활』(위즈덤하우스, 2023)

 조우리 작가님의 『사과의 사생활』을 읽었습니다. 5개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입니다. 우선, 소재가 인상적입니다. 할머니의 사랑, 엄마의 성정체성, 특성화고 학생의 죽음, 소년들의 생태계, 소녀의 몸과 성입니다. 청소년 문학에서 아주 다루지 않았던 소재는 아니지만, 조우리 작가이 다루는 작품은 어딘가 신선해보입니다. 작가의 문제 의식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우리 작가는 세상에 대한 질문을 작품으로 형상화합니다. 작품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면, 자연스럽게 어떤 질문들이 마음에 남습니다.

 예컨대, 「나와 함께 트와일라잇을」의 '나'는 엄마 친구로 알고 지냈던 '이모'와 엄마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나를 낳아준 엄마가 사실 여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있을까요. 엄마의 희생을 강요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엄마의 선택을 존중하여 이별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또, 이상 자신과 함께 없다는 아내를 마주한 아버지에게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아버지가 가정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정작 아직 청소년인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면, 나는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걸까요. 누구를 탓할 수도 없으니 묵묵히 혼자 견디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섣불리 어떤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좋은 소설이 그러하듯, 조우리 작가님의 소설은 독자에게 질문 하나를 남깁니다. 무엇을 섣불리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 상황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와 더불어 사회에 대한 질문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다섯 단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표제작 「사과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사과입니다. 부모님이 과일가게를 합니다. 두 언니의 이름은 김모과, 김귤입니다. 두 언니는 모두 성인입니다. 사과는 두 언니 덕분에 성교육을 조기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과는 두 명의 친구가 있습니다. "내숭 퀸 남미새 채연서와 너드 타입이나 공부엔 관심 없고 온갖 BL과 야설, 팬픽을 섭렵한 이시온"입니다. 셋은 성에 대한 탐구 의지가 풍부한 소녀들입니다.

 연서는 남자친구가 있고, 키스와 섹스를 몸소 경험하고자 하는 의지가 투철한 학생입니다. 사과와 시온이에게 키스를 직접 전도하기도 합니다. 소설 속에서 연서가 시범을 보여준다며, 두 친구에게 차례로 직접 키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남자여서, 경험의 폭이 좁아서, 편견에 가득한 꼰대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우정을 나누는 친구에게 입술을 내준다는 것이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사과는 "머리가 핑그르르 돌았다"고 했는데, 저였다면 주먹이 나갔을 것 같습니다.

 연서는 남자친구와 섹스를 위해 피임약을 먹는 적극성을 보인다면, 사과는 섹스에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오르가슴이 궁금할 뿐입니다. 자신의 몸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환희를 느끼고 싶어합니다. '위민나이저'를 구입하고 이틀에 한 번씩 자위를 하며 몸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지만, 가슴에 손이 올라오는 남자친구에게 "우리 키스까지만 하자. 그 이상은 싫어."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아이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건강한 소녀입니다.

 시온이는 섹스에도, 적극적인 자위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애니메이션, BL과 같은 성적인 콘텐츠를 소비할 뿐입니다. 소설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지만, 저는 시온이와 같은 아이가 주변에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BL을 왜 좋아하는지 궁금합니다. 학창시절, 동방신기나 샤이니, 슈퍼주니어의 BL이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보지 않았습니다.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남자 아이돌 이야기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직 BL 소설이나 만화를 본 적 없어서, 함부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BL을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합니다.

 연서, 시온, 사과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성'을 탐구합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지만("남자애들한테는 건강하게 자위하는 방법과 적절한 횟수, 운동으로 푸는 방법 등 많이 알려주지만"), 본인들의 성향과 기준에 맞게 성욕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갑니다. 어른들이, 사회가 애써 감추고 억압하려고 해도 굴하지 않고 나의 몸과 욕구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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