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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pr 28. 2024

내가 그릴 웹툰이 완성될 때까지

신지명의 동화집 『내가 그릴 웹툰』(낮은산, 2023)

 신지명 작가님의 동화집 『내가 그릴 웹툰』에는 6개의 단편 동화가 실렸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첫 작품이자 표제작인 「내가 그릴 웹툰」이었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아쉬운 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고른 수준의 동화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특출나게 좋은 지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동화를 보는 저의 안목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작품 전반부에서 결말이 어느정도 예상 되었고, 실제 결말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소설의 대상과 소재는 현재성을 갖고 있습니다. 어린이에 대한 어른과 사회의 폭력, 동물과 인간의 관계, 죽음을 마주한 어린이, 해외 이주 배경을 가진 가족 등이 작품의 소재입니다. 그러나 '지금'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공감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상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동화는 미래를 긍정하는 상상의 힘을 통해 어린이에게 다가올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동화는 어느 정도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데, 이 동화집에서는 따뜻한 미래상에 대한 제시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그리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상상은 힘든 현실을 사는 어린이들에게 사치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현실의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일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어린이들이 처한 지금-현재의 모습을 어린이가 대면할 수 있도록 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다만, 폭력적이고 잔인한 현실을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척박한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의 모습을 담아 보여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표제작인 「내가 그릴 웹툰」은 한 가족의 동반 자살을 다루고 있습니다. 뉴스나 언론에서 보여주는 방법으로,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어린이에게 전달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나 있는 현실을 감출 수는 없기에, 동화라는 방식을 통해 어린이에게 현실을 전달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미 상실을 경험한 어린이 뿐 아니라, 상실을 경험할 인간인 어린이에게도 필요한 동화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화를 통해 획득한 상상의 경험은 언젠가 분명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내가 그릴 웹툰」의 첫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차 한 대가 앞마당까지 들어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차였다. 운전석에도 누군가 앉아 있었다. 나는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며 물었다.
"어디 가는 건데?"
 "곧 알게 돼"
 아빠가 답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나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저 엄마가 주는 코코아를 먹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차로 데리고 가려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가기 싫어요. 엄마 아빠가 마음대로 결정한 거잖아요. 저는 그런 선택, 한 적 없어요"


 가족 동반 자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어린이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일보다는 오늘을 힘주어 살아가는 어린이는 어떻게든 오늘을 살아가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린이를 동반한 자살 사건은 어린이에 대한 살인으로 규정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는, 따뜻한 숨들이 조금씩 내게 다가오는 걸 느꼈다. 그 숨들이 한 겹 한 겹 나를 에워싸며 천천히 데우고 있었다. 나에게 보내는 마음이었다. 이모가, 경찰이나 구급대원이, 어쩌면 그 모두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나에게 간절히 숨을 보내고 있었다.


 동화 속 '나'는 결국 죽지 않습니다. 동화 속에서는 이모, 경찰, 구급대원을 포함한 어른들이 아이를 살렸습니다. 살인으로 규정할만한 사건에서 어린이를 구출한 어른과 사회는 이제 그 어린이를 성실히 돌봐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웹툰을 마음껏 그릴 수 있을 때까지, 좋아하는 웹툰을 그리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살 수 있을 때까지 책임을 다 해야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아이의 삶에 대한 생각과 고민으로 오랜 여운이 남는 동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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