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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수아 Oct 27. 2024

기억을 더듬다(2)

좋은 선생님에 대한 아련함 <창가의 토토>

 교권이 무너졌다. 교사들이 많이 자살했다. 학교 폭력 관련 뉴스도 자주 나온다. 좋은 책은 언제나 시의성이 있다. <창가의 토토>도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 읽었던 학창 시절에도, 다시 읽었던 4년 전에도, 삼독을 한 이번에도 사회적으로든 나 개인적으로든 모두 의미가 살아있는 책이다. 내가 4년 전에 쓴 <창가의 토토> 서평의 제목은 ‘나에게도 이런 선생님이 있었더라면’이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좋은 선생님이 많이 없기에 이 책이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좋은 선생님을 기리는 문장 ‘돌아가신 고바야시 소사쿠 선생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로 시작된다. 이 문장을 읽고 독자들은 ‘돌아가신 고바야시 소사쿠 선생님과 관련된 책이군.’이라고 예상하며 책을 한 장씩 넘겼겠다.


 <창가의 토토>는 토토라는 특이한 아이의 학창 시절이 주된 내용이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나의 학창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토토처럼 특이한 아이나 과거의 너처럼 행복하지 않은 아이가 너의 제자라면 어떻게 대하고 싶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경청’에 대해 말할 것 같다. 고바야시 선생님은 토토를 처음 만났을 때 약 네 시간이나 토토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셨다. 경청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꼭 아이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경청해 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어떤 아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도모에 학교는 요즘으로 치면 대안학교다. 책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독특한 교육방침’(253p)이라고 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이러한 비난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나는 유튜브 ‘한닭쌤과 삐약이 교실’을 구독하고 있다. 과외 선생님이 영상 수익으로 무료로 집에서 14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며 함께 요리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고양이 같은 동물과 교감도 하는 그런 내용의 유튜브이다. 응원 댓글도 물론 많지만 "학생들이 이것저것 모두 하다 보면 언제 공부를 하겠나?"라는 우려 섞인 댓글도 달리곤 한다. 하지만, 내가 학부모라면 자녀에게 그런 열린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 같다.


 ‘열린 교육’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고바야시 선생님의 ‘열린 교육’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는지도 써보는 게 좋겠다.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꼬리’ 챕터(214~218p)였다. 담임선생님께서 옛날에는 인간에게 꼬리가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장애 아동 다카하시에게 귀엽다는 의미로 “다카하시는 (꼬리가) 있지 않니?”라고 물어본 것이 문제였다. 조심성 없는 발언이었다. 고바야시 선생님은 담임선생님을 교무실이 아닌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야단치셨다. 그만큼 고바야시 선생님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충분한 분이셨다고 파악할 수 있다.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교가’ 챕터(69~74p)였다. 아이들은 도모에 학교의 멋진 교가를 원했는데 고바야시 선생님은 간단한 교가를 준비해 오셨다. 아이들은 약간 실망했고, 고바야시 선생님도 교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셨다. 그 뒤로 도모에 학교에는 교가가 없었다. 내가 고바야시 선생님이라면 문학적 재능과 음악적 재능이 있는 아이들과 함께 교가를 만들었을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서 고바야시 선생님은 미국 비행기가 떨어뜨린 폭탄으로 불타는 학교를 멍하니 지켜보시며 “야, 다음에는 어떤 학교를 만들까?”(324p)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두 달 전쯤 읽은 책 <회복탄력성>이 생각났다. 회복탄력성은 ‘실패나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원래의 안정된 심리적 상태를 되찾는 성질이나 능력’을 뜻한다. 고바야시 선생님이야말로 기본적으로 회복탄력성이 장착된 분이셨다. 그래서 <창가의 토토>의 지은이 구로야나기 테츠코를 비롯한 고바야시 선생님의 제자였던 많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한몫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 책은 끝난다.


 다 읽고 느낀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련함’이었다. 내가 겪지 못했던 약 80년 전의 일본이 주무대이기는 했으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소설로 창작했던 작가의 아련함은 분명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련함’ 속에 ‘그리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창가의 토토>처럼 학창 시절을 아련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이 글의 서두에서 말한 자살이라든가 폭력이라든가 하는 것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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