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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May 11. 2022

당연한 건 당연하지 않아

오랜만에 동갑내기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코로나 시국을 감안한 짧은 국내 여행이라도 이 친구들과 떠나는 것처럼 가벼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여행도 드물다. SUV 안에 5명이 욱여 타고 도로를 신나게 달린다. 야트막한 산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갑자기 평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정표를 보니 논산이다. 시야가 닿는 끝까지 가지런한 하늘 선이 펼쳐지고 아직 아무것도 심지 않은 논밭과 봄의 옅은 색을 피워내는 나무들이 만나 최고급 볼거리를 준다. 이 좋은 것들의 위치를 지도 위에서 확인하고 싶어졌다. 핸드폰에 지도를 띄워 깜빡이는 푸른점을 찾는다. 그리고는 순간 당황했다. 푸른점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너무 오랜만에 멀리 있는 것을 보니 눈이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서울 가면 언제나 그랬듯 눈앞의 조그만 세상에 적응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력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왠지 날이 갈수록 점점  좋아지는 것만 같았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무슨 일인지 마음이 급했다. 최대한 가까운 시점에 예약을 하고 안과에 방문하기로 했다. 엄청난 일이  눈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명했다.




"노안이요"

의사분은 내 말을 더 듣지도 않고 잘라 말했다.

"갑자기 원시가 생겨서"

"원시가 아니라 노안이에요"

진료기록표를 들춰서 나이를 다시 확인하더니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나를 보았다.


"노안이 올 연령이시니까요"

노안이라는 말이 너무 낯설어 나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몇 달 전에 안과 검진을 받았었는데, 거기서는 2~3년 정도 남아있을 거라고 했는데요"

"그걸 예측할 수는 없어요. 노안이 왔다고 보는 게 맞아요"


의사분은 이번에도 단호했다. 감각이 늙어가기 시작했다는 게 더 두려웠던 건지, 나는 차라리 질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은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예외적인 질환은 뭐가 됐든 치료법이 있을 거라는 멍청한 생각에서였다.

"노안이라기엔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데요. 이번 달 초만 해도 멀쩡했는데..."

"노화에 가속이 붙었다고 봐야죠"


연이어 쏟아지는 팩폭에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KO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간호사분이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질질 끌고 나갈 것만 같았다. 안경 도수를 낮추어 먼 거리를 조금 포기하는 대신, 가까운 시력에 여유를 주는 수밖에 없다는 처방을 받고 진료실을 나섰다.


그렇게 며칠 뒤, 처방받은 도수로 안경을 새로 맞췄다. 의사분의 말씀대로 예전에 보이던 먼 사물을 조금 덜 보이게 하고, 대신 가까운 것은 조금 더 보이게 조정했다. 어떻게든 최적의 지점을 찾기 위해 태어나서 제일 열심히 측정에 임했다. 그리고 완성된 안경을 썼는데...영 성에 차지 않았다. 둘 다 적당히 잘 보이게 맞췄다기보다는, 둘 다 견딜 수 있을 만큼 안 보이게 맞췄다는 말이 적절해 보였다. 쓸 수 있는 시력은 한정되어 있고 이걸 가지고 먼 곳도 가까운 곳도 만족시켜야 하니 이런 어중간한 선택 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만사 다 똑같듯 모든 걸 만족시키는 나이스함을 기대하다가 이번에도 포기와 타협의 미학에 안착했다.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 옛날, 신문 볼 때 눈을 멀찍이 떨어뜨리는 엄마의 모습이 우스워 신문을 엄마 눈에 가까이 붙이며 놀렸던 기억이 있다. 내가 "으유으유"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신문을 얼굴에 붙이면 엄마는 그때마다 고개를 젖히며 내 손을 밀어냈고, 줄다리기처럼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끝난 후 나는 깔깔 웃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빙긋이 미소만 지었다. 멀리 있는 건 잘 보이지 않고 가까이 있는 건 잘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엄마는 세상 이치와 정반대로 움직이는 곳에 머무는 사람처럼 보였다.


근데 이제 내가 그 시간을 따라잡아 그 시절 엄마가 머물렀던 곳에 와있다. 전에 몰랐던 불편함과 마주칠 때면 원래 이런 세상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이 실은 얼마나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불편을 무시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이 실은 젊음의 축복을 매 순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나는 엄청나게 행복한 시간을 살아온 것이다.


"보일 때 마음껏 봐. 그거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데"

신문을 눈앞에 들이미는 철없는 아들내미에게 엄마는 미소 지으며 저렇게 말했었다. 그때는 몰랐던 소중하다는 말이 긴 징검다리를 건너와 이제야 단단하고 진실된 말로 다시 태어난다. 정말 그렇다. 하나도 당연하지 않고 그래서 너무 소중하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조금씩 줄어들겠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 순간까지 열심히 보고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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