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마이아트뮤지엄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지는 않았어도 그랜드 부다페스트의 시그니처인 핑크 톤의 호텔 이미지는 영화 포스터에서, 인테리어 소품 속에서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영화의 분위기를 단번에 환기하고,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호텔 일러스트를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림을 보면 영화를 감독한 웨스 앤더슨의 이름이 곧장 떠오르지만,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하는 작가 맥스 달튼이다.
맥스 달튼은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동화책 작가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다. 4월 16일부터 7월 11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은 총 220여 점에 달하는 작가의 작품을 관객 앞에 선보이고 있다. ‘영화의 순간들’이라는 전시 제목에 걸맞게,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웨스 앤더슨 영화를 주제로 한 작품도 다수 전시되어 있고,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일러스트는 한 섹션으로 따로 구성되어 있다. 맥스 달튼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일러스트를 정말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전시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맥스 달튼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기도 하다. 전시를 보다 보면 영화 한 편을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작가의 능력과 그 독창성에 감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전시는 ‘맥스 달튼의 스타일’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전시는 우주적 상상력,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순간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리고 노스탤지어, 맥스의 고유한 세계, 사운드 오브 뮤직 총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1, 2, 3부에서는 영화를 주제로 한 작품을 볼 수 있고 4, 5부에서는 맥스 달튼의 다양한 관심사가 드러나는 작품을 볼 수 있다.
1부 ‘우주적 상상력’에서는 다양한 SF작품을 소재로 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다. 최초의 SF영화인 <달세계 여행>부터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타워즈>, 드라마 <닥터 후>까지 SF장르의 팬이라면 모를 수 없는 영화와 드라마가 맥스 달튼 특유의 귀여운 그림체로 담겨 있다. 한쪽에는 <스타워즈>의 요다, <매트릭스>의 모피어스, <화성침공>의 화성인 같은 캐릭터를 맥스 달튼 특유의 그림체로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영화에서는 사악한 악당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도 작가의 손을 거치면 제법 귀여워 보인다. 전시실 한쪽에는 SF영화의 계보가 정리되어 있어서 그림 속의 영화들이 언제 개봉했는지 볼 수 있다. 아주 오래된 영화부터 비교적 최근에 나온 <그래비티> 같은 영화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SF영화를 그림의 소재로 다룬 작가가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2부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순간들’에서는 더 다양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영화광답게 로맨스, 판타지, 스릴러, 코미디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영화를 모티브로 작품을 제작했다. 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매달린 장면을 그린 <킹콩>(2017), 영화 <쥬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공룡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쥬라기 공원>(2019)은 단순한 요소들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모티브로 한 <모르도르는 아무나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요>(2021)에서는 시리즈의 장대한 내용을 보드게임으로 표현한 작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와 장소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고, 그림과 함께 실제 보드게임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유명한 로맨스 영화에 등장하는 커플들을 한 데 모아 놓은 <러브 스토리>(2015)도 인상적인데, <이터널 선샤인>, <가위손>, <그녀>, <타이타닉> 등에 등장하는 커플들을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게 표현했다. 그림 속 커플이 어느 영화에 등장하는지 맞혀보는 것도 재미다.
3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리고 노스텔지어’에서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주제로 한 그림들은 영화의 세트장처럼 꾸며진 벽에 걸려 있어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국내에서도 출판되어 웨스 앤더슨 감독의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웨스 앤더슨 컬렉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책을 직접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맥스 달튼이 그린 일러스트가 책에서 어떤 식으로 영화를 소개하는지 볼 수 있다. 이 섹션에서는 웨스 앤더슨과 맥스 달튼이 어떻게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지 느낄 수 있는데, 영화에 대한 애정은 맥스 달튼의 모든 작품에서 드러나지만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그린 작품들에서 유난히 더 돋보인다. 영화를 여러 번 봐야 캐치할 수 있는 디테일을 섬세하게 표현한다거나,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마치 영화 세트장 설계도를 그리듯이 표현한 점에서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올해 개봉 예정인 웨스 앤더슨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의 일러스트도 전시되어 있어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데, 이는 웨스 앤더슨 감독과 맥스 달튼의 시너지 효과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4부 ‘맥스의 고유한 세계’와 5부 ‘사운드 오브 뮤직’은 작가가 영화 이외에도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피카소, 모네, 프리다 칼로 등 유명 미술가의 작업실을 그린 <화가의 작업실> 연작이 인상적이다. 이 연작에서도 영화 한 편의 서사를 한눈에 들어오도록 표현하는 작가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화가가 작업하는 모습과 함께 주변에 화가가 영감을 얻는 오브제, 풍경 등이 펼쳐진 모습을 배치하여 화가 한 명의 개성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어떤 영화, 또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한 장의 그림에 꽉 채워 담는 작가의 특징은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2014)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명 기타리스트인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 뒤로 그가 연주했던 30개의 기타를 그려져 있는 이 작품에서는 음악가를 향한 맥스 달튼의 애정과, 한 장의 그림에 수많은 디테일을 담고자 하는 집요함이 돋보인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특징은 음악, 영상 감상 플랫폼과 협업하여 전시를 다양한 형식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전시실에 입장하기 전에 티켓과 함께 두 장의 이용권이 주어지는데, 모바일 음악 감상 어플리케이션 지니에서 전시에 등장하는 영화 OST를 감상할 수 있는 50회 이용권과 웨이브에서 작품의 영감이 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3일 무료 이용권이다. 전시를 보면서 영화 OST를 감상하며 작품이 환기하는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더 깊게 느낄 수 있고, 전시를 본 뒤에도 작품에 등장했던 영화를 다시 감상하며 여운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관객 입장에서 참신하고 느껴진다. 이 전시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 같은 전시이기에, 이러한 방안이 더욱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된다.
영화에 대한 작품들로 가득해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림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찾고, 이 장면이 어떤 장면이었는지 떠올려보고, 영화 속 장면을 어떻게 재치 있게 표현했는지 살펴보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일러스트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맥스 달튼의 작품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기생충> 일러스트와 그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을 통해 작가가 영화를 정말 깊이 있게 감상하고, 작품에 그 디테일을 섬세하게 녹여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전시 이후로 국내에서도 맥스 달튼의 다양한 작품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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