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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한 뇨뇨 Aug 05. 2022

시간이 멈춘 방( 유품정리인의 삶 )


한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일주일 전 냉장고 안에 들어 있던 우유가 상한 지도 모르고 마신 후 나는 며칠 동안 칼로 배를 자르는 듯한 통증과 설사로 앓아누웠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삼일을 강하게 아프다 겨우 정신을 차렸다. 뭘 좀 먹을까해서 냉장고를 열었더니 구석에 들어 있던 먹다 남은 수박은 곰팡이가 피어 마치 오래된 시체처럼 뭉그러지고 질퍽해져 있었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져 음식 쓰레기통으로 얼른 던져버렸다.  


식자재들을 냉장고에 많이 채우진 않지만 가끔씩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과일과 야채는  썩어 문드러진 수박처럼 불쑥 심기를 건드리기도 한다. 날을 정해두고 정리하지 않으면 철 지난 음식, 명절 때 처리하지 못한 음식은 곧 쓰레기가 되어 냉장고 어디 한구석에 벽돌처럼 박혀 있다 어느 날 내 발 등을 찍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제야 주섬주섬 관심 갖지 못했던 냉장고를 정리하며 삶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 주말엔 시댁의 이사를 도와줄 일이 있었다.  10년 이상 살면서 어디에 물건의 존재가 있었는지 잊고 지낸 것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김치냉장고 뒤로 넘어간 가위가 3개나 발견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갈 곳을 잃은 그릇들은 창고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무차별하게 쌓여있는  옷가지들은  옷장이 비좁을 정도로 가득찼고, 천장 높이로 새로 짠 신발장을 눈 깜짝할 사이에 신발로 가득찼다. 2명이 사용하기엔 너무 많은 이불들을 정리하면서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물건에 대한 욕심을 놓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또 소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장엔 옷이 가득하지만 계절이 지나면 다시 비슷한 취향의 옷을 사들이고, 필요하지 않는 물건들을 방안에 쌓아두며 공간의 주인은 내가 아닌 물건이 되어 간다. 비단 한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한때 집을 정리해 주는 프로그램이 유행했다. 사람을 위한 공간은 없고, 온통 버리지 못한 옷들과 물건들로 채워져 있는 집이 일반인 뿐만 아니라 넓은 평수를 갖고 사는 연예인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의뢰인의 집을 정리해 주는 일은 돌보지 못한 그 사람의 삶, 인생을 정리해 주는 일이었다. 


어느 시점이 지나자 일반적인 집 정리가 아닌 코로나19 이후 고독사나 특수 현장의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1인 가구 증가로 홀로 죽음을 맞게 되거나 살인, 자살 현장의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면서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메시지를 준다. 

삶과 죽음에 대한 강의를 하는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겨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매일의 삶을 정리할 필요성을 알려주고, 삶의 마지막 순간의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하고 싶은지 질문을 건네보는 것이다.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 시간이 멈춘 방> 이란 책은 일본의 고지마 미유라는 한 젊은 여성이 스물두 살의 나이에 유품 정리인의 삶을 시작하고 특수 청소 기업에 재직하며 유품 정리와 쓰레기 집 청소 일을 하며 목격한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정리한 공간을 미니어처로 ' 엔딩 산업전' 전시회에 소개하며 전 세계 언론과 SNS에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시간이 멈춘 방저자고지마 미유출판더숲발매2020.08.28.




 이혼 후 혼자 살면서 쓰러져 죽을 뻔한 아버지 때문에 스물두 살 때부터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2022년 그녀는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하나)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이고, 어떤 강력한 동기가 없다면 유지할 수 없는 직업이다. 일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과 똑같은 나이의 남성이 홀로 죽어 3개월 후 발견된 사례를 겪고는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 미니어처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읽는 동안 나는 그녀의 시점으로 함께 방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기분이 들었다. 


혼자 살다 질병으로 고독하게 죽어 3개월 혹은 6개월이 지나 발견된 시신의 오래된 체액과 흔적이 남은 방

고객, 환자, 직장 동료, 격한 업무에 시달리다 소진되어 집안 일과 자신을 돌보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공간에서 쓰레기 속에서 죽어간 흔적들. 

사회와 단절되고 방방마다 쓰레기로 가득 차고 결국엔 소대 변이 담긴 PT 병과 주머니로 가득 찬 방에서 죽은 흔적

주인이 떠나간 자리를 지키다 굶어 죽어간 반려견의 대소변 흔적들

사회와 단절되고 혼자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면서도 연결되고 싶어 핸드폰 혹은 본능적으로 리모컨을 들고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것은 TV 화면이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대부분 시선은 현관을 향해 있다. 

생전 물건들을 쌓아두고 혹여라도 가족들이 치우려고 하다 보면 연로한 부모들은 아직 쓸만한 물건을 왜 버리냐고 역정 내기 일쑤다. 그러다 막상 돌아가시고 나면, 최악의 상황으로 고독 사라도 하게 되어 늦게 발견된 경우 집안에 가득 찬 강렬한 악취와 벌레, 고인의 흔적들이 남아 가족들이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경우엔 2년간 애쓰다 결국은 포기하고 의뢰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 책은 아주 담담하게 짧은 글과 작업 현장의 공간을 그대로 재연한 미니어처 사진으로 채워졌다. 

일본 특유의 작고, 간소한 느낌인지, 혹은 청소일을 하는 직업적 특성인지 단정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짧게 정리된 책 내용에서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를 그리고 정리되지 못한 현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저자의 글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다 보면 타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망자의 과거가  생생하게 그려져 마음이 무거워진다.


저자는  죽은 후 순간에서 유품을 정리하며 과거로 그 사람을 돌아보며 유추한다. 내가  간호사로 경험한 것은  '죽어감에 대한 관찰의 시간'이었다. 그런 면에서 죽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유품정리사, 특수 청소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끝이 아니라 남겨진 이에겐 슬픔의 시작이고, 고통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이라는 공간은 가장 위로받고, 안정된 공간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울, 질병, 가정의 붕괴, 사회와 단절로 제 기능을 상실해버리고 각종 오물과 삶의 마지막에 놓아버린 일상의 흔적ㅁ, 외로움, 사회와 단절했지만 연결되고 싶었던 간절함, 아픔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집과 나의 공간을 둘러보게 된다.  나는 어떤 것으로 나의 공간을 채워야 할까? 끊임없이 나를 유혹하는 광고에 넘어가 불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을 삶을 살지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법정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물건을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물건에 내가 소유당하고 중요한 본질은 놓치게 된다. 물건을 위한 공간에서 나를 위한 공간으로 정신적인 행복과 안정이 차는 공간이 필요하다. 


너무 많은 것을 성취하려는 삶은 주변을 돌아 볼 수 없게 만들고 고립으로 연결된다.  앞만 보고 달리다 정작 에너지는 소진되어 버리고 내 몸은 물론 공간을 돌볼 여력이 사라져버린다. 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나를 포함한 주변 간호사들은 병원에서 항상 정확하고 빠른 업무를 요하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강도의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시체처럼 누워 잠만 자거나 번아웃에 빠지기도 했다. 이 책 내용에서도 겉으로 보기엔 이상 없는 (?) 간호사들이 얼마나 많은 소진을 겪고 있는지 묘사되어 있었다. 지금은 병원 생활을 그만두고 일과 휴식의 균형을 추구하는 삶을 추구하면서 주변을 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삶을 무리하게 사는 삶은 지양하려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는 주변 사람들을 떠 올려 보게 된다. 

매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장년 층의 이웃, 홀로 사는 노인, 입을 굳게 다물고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청년들. 겉보기엔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지만 우리는 코로나19가 터지고 3년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 특히 개인주의는 더 심해졌고, 타인과의 연결고리가 느슨하다 못해 누군가는 아예 끊어진 사람들도 존재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불안과 걱정, 우울을 담고 살아간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관심과 마음만은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오늘 안녕한지 누구 한 사람이라도 물어봐 주었다면 극단적인 결말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보다 고령사회에 진입해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 쓰인 < 시간이 멈춘 방>이란 책은 물건에 대한 소유에 대한 관점, 죽음에 대한 관점, 공동체의 연결의 필요성에 대해 성찰하게 된 책이다. 어쩌면 보기에 불편한 사실과 사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마주친 내 앞의 사람들에게 관심 어린 인사를 전하고, 매일 보이던 이웃이 보이지 않는다면 약간의 오지랖이라 할지라도 안부를 물어 봐주는 것은 어떨까?



*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021년 기준으로 33.4%가 1인 가구 비율이라고 한다. 

서울 경기 지역에서 직장을 찾기 위해 독립한 20대는 사회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자살로 인한 고독사는 점점 늘고  수시로 기사화되고 있다. 

그 밖의 50~ 70대 중장년 층은 가정과 사회로부터의 고립, 질병, 우울로 더 많은 문제가 될 것이다. 


아직까지 통계청에서는 고독사에 관한 통계 조사 계획은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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