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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Apr 01. 2024

거짓말처럼 4월이 되었다

2024년 4월, 봄 같은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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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4월이 되었다. 4월 1일은 좀 더 깊숙한 봄의 입구이자 아름다웠던 한 배우의 기일이다. 아침에 멀쩡한 하늘을 보며 '사월'이라고 조그맣게 중얼거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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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소설 합평을 마치고 근처 사찰에 들렀다. 마지막으로 갔던 절이 어디였을까. 언제였나. 아마도 작년 <서울국제도서전> 무렵이었을 것이다. 반나절 구경을 하고 저녁에 봉은사에 들렀다. 환하게 불 밝힌 연등의 행렬이 아득한 전설 같아서 넋을 놓고 봤다. 함께 간 친구에게 '우리 왜 이런 풍경 본 적이 있지.' 물었다. 그래? 어디였을까. 친구는 고개를 갸웃했다. 혼자 봤던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연등의 행렬. 하나하나 이어 붙인 願들은 바람에 끊임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어둠이 가라앉은 경내를 소곤소곤 돌다 나왔다. 몇 번이고 돌아보게 되던 풍경. 그건 여름밤이었지. 

봄날, 연등을 다는 마음_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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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는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스무 살이었던 우리들은 어느새 사십 대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은 이십 대 그 시절인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로를 궁금해하며 일상을 물었다.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고 참 다정히도. 우리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지? 지난 겨울이었나? 그랬지. 한 해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한겨울의 입구였다. 


그날은 눈보라가 몰아쳤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길을 걸어 한 명씩 나타날 때마다 번쩍 손을 들어 주었지.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꼭 봄볕 같지. 따뜻하고 선하다. 


그날로부터 꼬박 백 일을 걸어 오늘에 도착했다. 누군가 이 세상의 채도와 명도를 한꺼번에 올린 듯 선명한 하루였다. 헤어질 무렵, 아쉬운 마음에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에 명동성당이 나타났다. 한참 바라보고 있으려니 왠지 시간이 멈춘 듯했다. 이곳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탄생하고 사라져 갔을까. 2019년 4월,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대성당들의 시대>를 들었다. 생 샤펠 성당은 들어가자마자 한눈에 반해 이틀 연속 찾아갔었다. 


우두커니 서서 명동성당을 올려다 보며 내가 지나 왔지만 이제는 전설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시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의 손을 볼 때 특히 그랬다. 한때는 작고 여리고 통통했을 손이 시간을 통과하며 꽃봉오리가 여물듯 자라고 뻗어나가 나무가 되고 울창하게 피어오르다가 고목이 되는 것. 내 손도 그렇겠지. 괜히 주먹을 쥐었다 펴 보며 2024년 4월, 봄 같은 말들을 중얼거려 본다. 

봄날, 명동성당_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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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슨 일이 있었나.


오늘 2회차 도수 치료를 받고 왔다. 오빠가 도수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해서 어제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10회차 정도를 받았는데 결론은 '일시적으로 좋아진 것은 사실이나,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나 일자목에 척추가 좀 휘었대. 나도 완벽한 현대인임이 입증되었어!' 했더니 묵묵히 있다가 그런다. 


이제 현대인이 된 건 아니잖아? 계속 현대인 아니었나?


A ㅏ... 오빠도 이런 내가 동생이어서 힘들겠지. 논리적 비약과 과장, 상상과 공상을 넘어선 몽상과 망상 수준의 내 화법으로 인해 오래 고통받았을 거야. 몇 마디 더 주고받은 후 어, 그래. 어어~ 하며 흔한 남매 화법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오늘 엄마를 통해 차라리 주사 같은 걸 맞아보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전해 왔다니 고맙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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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거치대를 사서 화면을 눈높이에 맞추고 대신 키보드를 따로 쓰기로 했다. 그러자 자세가 한결 나아졌다. 헬스도 6개월 더 연장했다. 물리치료사 선생님께 혹시 헬스를 하면 안 되냐고 여쭈었더니 전혀 상관없다고 하셨다. 너무 무거운 것만 들지 말라고. 아... 예에... (왜요? 가기 싫었던 건가? 그래서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건가!!) 그럴 리가... 아니요... 매우 기쁘죠. 운동을 할 수 있다는데... 기쁩니다....... 11월 마라톤을 기억하자!


도수 치료와 지압 마사지를 다시 받고 느낀 점은- 10만 원이 비싼 게 아니라는 것. 한 사람의 전문성과 그 노력을 생각할 때에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 볼 때 결코 비싸지 않다. 물론 예상치 못한 지출이라 조금 타격이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천천히 봄날을 걷듯 글을 쓰고 생활을 하자. 

천천히 봄날을 걷듯 글을 쓰고 생활을 하자_언젠가의 4월,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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