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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Apr 09. 2024

그러니 끝 날까지 가 봐야겠다

응. 포기 안 해^^ 계속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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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형 인간으로서 하루에 약속은 하나! 라는 나름의 기준을 고수하는 편이지만- 사실 혼자 있는 것만큼이나 사람도 좋아해서 오래 혼자 지내다 보면 가끔 수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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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동안 오랜만에(?) 수렁에 좀 빠져 있었다. 수렁의 이름은 그때그때 다른데 이번에는 '현타'였다. 갑자기 좀 현타가 와서 글은 한 자도 안 쳐다보고 일요일 내내 영화를 보고 배달도 시켜 먹었다. 그 와중에 햄버거는 참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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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내내 쓴 원고지 100매 분량의 글을 전면 폐기하고 다시 쓰기로 했다. 쓰면서도 긴가 민가하는 지점이 있었는데 합평 후 그렇게 하기로.


이번 합평은 내 차례가 아니었지만 A 선생님과 좀 더 가열차게 써 보기로 다짐하고 합평 후 둘만 따로 시간을 내어 2차 합평에 들어갔다. 원래의 모임 장소에서 좀 떨어진 카페(겁나 시끄러웠음)를 간신히 찾아 마주 앉았다. A 선생님이 '시작할까요?' 하더니 '음, 뭐라고 해야 하지?'라며 망설였다. 나는 웃으며 '솔직하게 막 말씀하셔도 돼요.'라고 했다. 이번에 만난 분들은 마음이 약해서 쓴소리를 잘 못한다. 그전 분들은 좀 더 직설적이고 정확했다. 가령, '너무 지루해요.'라든가 '완전 별로예요. 처음이 훨씬 나아요.' 이런 말들은 예사였다. 한 선생님은 합평 중간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이제는 뭘 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며.


마음이 갑자기 와르륵 무너지는 때가 있다. 조금씩 말고 와르륵 말이다. 눈물을 보였던 선생님은 다음 합평을 쉬고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함께했던 우리 넷은 결국 모두 장편 하나씩을 손에 쥐었다. 도망가지만 않으면, 그 자리에 남아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성취가 아닐지라도.


물론 눈에 보이는 성취가 아주 조금은 있어야 한다. 숨은 쉬고 살아야 하니까. 암흑 같은 길 위에 불현듯 나타난 희미한 빛을 따라가듯, 그래야 길을 잃었을 때 완전히 사라지거나 돌아서지 않고 계속해서 걸을 수 있다. 아니, 적어도 ‘계속해서 걷기로 결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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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집에 돌아와 원고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새 파일을 만들었다.


A 선생님은, 원고 흐름은 좋은데 스타트가 너무 잔잔해서... 라며 말을 아끼다가 결심한 듯 힘주어 말했다. 앞부분을 아예 새로 쓰면 좋겠다고. 그 와중에 나는 귀가 잘못되어 '잔잔해서'를 '단단해서'라고 들었다. 어?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좀 좋아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쯧쯧. 카페가 너무 시끄러웠던 탓이다.


쓰던 원고를 갈아엎는 건 예삿일이지만 아직 면역이 덜 되었는지 아니면 벌써 4월이 되어 마음이 더 조급해졌는지 유독 수렁에 빠진 듯한 날이었다. 영화 두 편을 연속으로 보고(심지어 이미 봤던 거) 의미 없는 영상들을 돌려가며 보다가 밤을 맞았다. 그야말로 자괴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픽 웃고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응. 포기 안 해^^

계속할 거야.


그 순간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장난스레 주고받던 어투의 말이 갑자기 나를 수렁에서 끌어올려 줄 줄은. 그런데 한 번 중얼거리니 희한하게도 힘이 났다. 어, 그래. 이런 날들은 또 오겠지? 쭉 이어지겠지? 응, 나도 계속할 거야. 포기 안 해^^


^^

무엇보다 이 웃음 표시가 아주 중요하다.


그건 그러거나 말거나 끝까지 해 보겠다는 뜻과도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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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곱 시부터 이 글을 시작해 곧 나가야 하는데 이러고 있다. 끝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모르겠네?


음, 결론을 말하자면. 어제 결국 다 갈아엎었다. A 선생님의 조언대로, 앞을 바꾸니 훨씬 나아 보였다. 쓰는 나도 재미있고. 생각보다 속도가 나서 반나절만에 50매에 다다랐다. 이번 주 합평까지 최대한 많이 써서 가져가는 게 목표다. 가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엄청난 매몰 비용까지 치러 가며 왜 이러고 있나 괴로움이 일 때가 있다. 아니, 많다. 게다가 나는 이제 20대도 30대도 아닌 40대가 아닌가.


그런데 합평에 오시는 50대 선생님께서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좋을 때라고. 너무 좋은 시기라고.


그러고 보면 언제든 시작하기에 참 좋은 때가 아닌가. 나는 십 대에도 소설을 쓰고 싶었고 이십 대에도 소설을 쓰고 싶었고 삼십 대에도 그러기를 바랐는데 그러지 못했다.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늘 글 대신 일을 선택했고 작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일 대신 글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낸 일 년은 불안할 때도 많았지만, 사실 정말 좋았다. 무척이나.  


사십 대에 비로소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어쩌면, 내가 정말로 쓰고 싶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그 모든 시간이 다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쓰니 아주 그냥 무슨...... 별로네?


그래도 이 기록은 지우지 않고 남겨 두기로 한다. 살다가 다시 또 수렁에 빠지겠지. 그러면 한 이틀 또 누워 있다가 일어나면 된다. 별로여도 뭐, 계속해서 해 봐야지. 그렇게 만난 끝 날의 나를, 나는 좀 더 애틋하게 바라봐 줄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니 끝 날까지 가 봐야겠다.  


응. 포기 안 해^^

계속할 거야.


계속합시다. 계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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