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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욱 Dec 17. 2024

삼국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66

이곡, 「영사(詠史」, ‘공융(孔融)’

66. 공융(孔融)의 최후

北海曾懷靖難情(북해증회정난정)   공융 한때 변란 평정할 뜻을 품었으나

才疎意廣竟無成(재소의광경무성)   재주 없고 뜻만 커서 끝내 이룸 없었다네.

曹公陰賊君知否(조공음적군지부)  조조의 음험한 본성 그대는 몰랐던가.

輕易招殃似正平(경이초앙사정평)  경솔하게 재앙 부름 예형과 똑 닮았네.

이곡, 「영사(詠史」, ‘공융(孔融)’     


[평설]

이 시는 조조에게 살해된 공융의 비극적 최후를 다루고 있다. 공융은 조조의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다 목숨을 잃었다. 조조가 공융의 이미지를 매우 부정적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진수는「공융전」을 쓰지 못했다. 

1, 2구는 공융의 한계를 직시한다. 그는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원대한 포부를 지녔으나, 현실적 역량이 이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단순한 능력의 부족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당시의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상만을 좇다가 결국 정치적 판단을 그르치고 말았다.

3, 4구는 공융의 치명적 실수를 지적한다. 공융은 조조의 음험한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조조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반박하고 비판했다. 조조는 정적들을 가차 없이 제거하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는 오랜 친구였던 허유(許攸)와 누규(婁圭)마저 주저 없이 처형했다. 그런 조조였음에도 공융은 그를 끊임없이 자극했고, 결국 예형처럼 경솔한 처신으로 재앙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 시는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옳은 말과 바른 행동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특히 권력자를 상대할 때는 섣불리 역린을 건드리기보다는 신중한 처신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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