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항(姜再恒), 「詠史」
68. 촉한 멸망의 아이러니
赤帝孱孫保黑子(적제잔손보흑자) 적제의 못난 자손 작은 땅 지켰는데
何心鍾鄧暗相窺(하심종등암상규) 무슨 맘으로 종회, 등애 몰래 서로 엿보았나.
蠶叢城下降旗豎(잠총성하강기수) 촉나라 성 아래에 항복 깃발 세웠지만
腰膂先分錦水湄(요려선분금수미) 허리가 금수 강가에서 맨 먼저 잘려졌네.
[原註: 등애와 종애가 촉나라 깨부쉈지만 얼마 안 가서 죽게 된다.[鄧艾,鍾會破蜀. 不旋踵而戮死]
강재항(姜再恒), 「詠史」
[평설]
이 시는 촉한 멸망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의 아이러니를 포착한 작품이다. 시인은 승자였던 종회와 등애가 오히려 패자의 운명을 맞는 과정을 통해서 권력의 허망함을 읽어낸다.
1구는 유비의 아들 유선의 무능함을 지적한다. '흑자(黑子)'는 ‘탄환흑자(彈丸黑子)’라는 고사에서 보듯 촉한의 협소한 영토를 의미한다. 적제(한고조 유방을 가리킴)의 무능한 자손이 작은 땅을 겨우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촉한의 멸망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2구는 종회(鍾會)와 등애(鄧艾)의 갈등을 보여준다. 강유는 이들의 불화를 간파하고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여 촉을 부흥시키려는 계략을 꾸몄다. 결국 서로에 대한 의심과 견제는 그들을 비극적 최후로 인도했다.
3, 4구는 두 승자의 비참한 최후를 그린다. 촉의 항복을 받아내고 한껏 들떠 있던 이들은 금수 강가에서 몰락하는 운명을 맞는다. 종회는 등애를 모함하여 체포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후 반란을 도모하다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다. 종회의 죽음 이후 잠시 구출되었던 등애마저 위관(衛瓘)의 계략으로 아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승자들의 최후는 그들의 과도한 권력욕이 부른 비극적 귀결이었다.
이 시의 핵심 메시지는 승자들이 정복한 땅에서 도리어 몰락을 맞이하는 역사적 아이러니에 있다. 시인은 금수라는 공간을 통해 영욕의 무상함을 드러낸다. 승리와 패배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권력이란 것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