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여있기
내가 Chet Baker의 < My Funny Valentine >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었다. 'Funny'라는 단어로 보아 매우 신나는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 기대를 품었지만 이 노래는 그러한 나의 기대를 매몰차게 차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울한 멜로디 사이로 들려오는 쓸쓸하고 어딘가 고독으로 가득 찬 '쳇 베이커'의 목소리. 나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형언할 수 없는 황홀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무엇이 그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그의 목소리? 아니면 뒤통수? 혹은 그 음울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나는 살면서 종종 상상을 하는 편이다. 내가 하는 그 상상이라 함은, 그다지 특별한 건 아니다. 일테면 땅바닥에 누워있는 작은 강아지를 우연히 보았다고 하자. 그럼 나는 저 강아지가 어디서 왔는지부터 시작해서 내가 가고 몇 분 뒤에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으러 주인이 황급히 달려오는 모습까지 '상상' 해보곤 한다. 이러한 상상은 문득문득 순식간에 찾아온다. 그리고 내가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의 상상은 또 순식간에, 발동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충 이러한 내용이다.
'남자는 친구들과 신나는 저녁 파티를 보낸 후, 늦은 밤 홀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문득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생각해 볼 새도 없이 그 공허함은 극심한 우울감으로 순식간에 번져버린다. 사무치게 우울해진 남자는 문득 노래가 듣고 싶어져 자신의 가방 안에서 카세트를 꺼내 든다. 그리고 대략 3초 뒤 "My Funny,, Valentine.."가 나직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적막한 이 밤길을 홀로 걸으며 점점 자신이 그 우울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있음을 느낀다. 동시에 기묘한 행복감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그 뒷 이야기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내 상상은 보통 감상에 젖는 것으로 그 끝을 내곤 한다.
나는 < My Funny Valentine >을 다른 말로 '묘한 쾌감'이라 쓰고 싶다. 이 묘한 쾌감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해보자면, 문득 내가 어딘가 깊숙이 들어와 있을 때 전해져 오는 고독감, 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과의 관계, 혹은 작은 일상 속에서 발생되는 어떤 문제의 본질을 찾지 못 한 채, 하염없이 무언가에 휩싸여 겉돌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말이다. 그리고 그 골 또한 꽤나 깊어서 쉽사리 빠져나갈 수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그러한 느낌을 잠시 지켜보는 건 어떨까. 잠시나마 내 생각의 흐름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다.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그리고 그때, 묘한 쾌감이 찾아올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지나갈 수도 있고, 무언가 툭, 하고 내게 말을 건넬 수도 있고, 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숨을 고른 후에는 분명 가슴 언저리가 따듯해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내가 있는 이 시간에 집중해본다. 비록 잘 되지 않는 순간들이 더 많지만 그것 또한 내 흐름 속에서 분명하게 살아있는 것일 테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고 눈을 떴을 때, 좀 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어딘가 짜릿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타이틀 사진 - 영화 <수집가>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