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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선생 Jul 10. 2021

나만 인형 안 가져갔어

직장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미안함


#1 파자마 파티 준비

오늘은 아이 유치원에서 파자마 파티를 한다고 한 날이다. 유치원 주간 학습 안내를 보니, '잠옷을 입고 애착 인형이나 잘 때 가지고 자는 것들을 가지고 오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뭘 가져갈지 아이와 이야기해보았다. 아이는 딱히 애착 인형이 없다. 그리고 특별히 잘 때 가지고 자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잘 때 그림책을 읽으면서 자니까 그림책을 가져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평소에 좋아하던 그림책을 가방에 넣고 유치원에 갔다.


#2 엄마는 일하는 중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우려했던 대로 아침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상향이 발표되었고 학교는 정신없이 돌아갔다. 작년의 상황이 반복되는 느낌이라 씁쓸했다. 작년 이맘 때, 2학기 등교 확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확진자가 속출해서 다시 원격수업으로 전환되는 사태가 빚어졌었다. 올해도 2학기 전면 등교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되다니.. 바깥에서 볼 때 학교는 조용해 보여도 사실 이런 상황이 되면 모든 것이 수정되어야 하기에 학교는 아주 바빠진다. 각종 회의와 수많은 결정들로 교사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오늘이 그랬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들과 모여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논의해야 했고, 학교에서 공지사항이 전달되는 것들을 열심히 확인하고 아이들에게, 학부모에게 전달해야 했다. 등교일 줄 알았던 방학 전 열흘의 시간을 원격수업으로 진행해야 하기에 활동지도 만들고 좋은 자료도 찾아 복사하고 또 복사했다. 몇 시간을 왔다 갔다 하니 어느새 퇴근시간...


#3 이제 집으로

학교에서 계속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집 주차장에 차를 대고 20여분 음악도 듣고 가만히 쉬었다. 그러고 나서 집에 들어갔더니 아이가 “엄마”하며 반갑게 나와 안긴다. 근데 어딘가 힘이 없어 보인다. 미세한 차이인데 아이의 표정이 보인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에너지 넘치는 아이가 무슨 일이 있었나? 

“오늘 파자마 파티 어땠어? 궁금해.”

“재밌었어.”

재미있다고 말은 하는데 진짜 신나서 말할 때의 느낌이 아니다. 

“가져간 그림책 꺼냈어?”

“응. 근데 애들 다 인형 가지고 왔어.”


아, 아이가 힘이 없는 이유가 혹시 이건가?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어?”

“응, 창피했어.”

마음이 철렁했다. 다른 친구들은 인형을 가져왔는데 자신만 가져가지 않아서 속상했나 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안내를 제대로 못 보고 잘못 챙겨줬나 싶어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그래도 별거 아닌 것처럼 넘어가 보려고 말했다.  

“그게 왜 창피해. 승현이는 잘 때 인형을 안고 자지 않고 그림책을 읽으면서 자니까 그거 가져간 거잖아. 잘 때 가지고 자는 걸 가져오라고 안내장에 쓰여 있었어.”

“엄마. 사람마다 마음이 다른 거야.”



“사람마다 마음이 다른 거야.”



아이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맞다. 사람마다 마음이 다른 건데 아이는 다른 친구들은 큼직한 인형을 가져왔는데 자신은 챙겨가지 않은 것 같아 창피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할 줄 알았으면 끌어안고 있는 인형은 아니지만 집에 있는 인형이나 장난감을 보냈을 텐데.. 마음이 복잡했다. 

안내장을 읽긴 했으나 문구 그대로만 해석했다. 직장맘이다 보니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 등하원 때 이야기를 나누며 뭘 챙겨가야 좋을지에 대해 공유하지 않기에 몰랐다. 직장맘은 정보가 너무 없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직장에서는 열심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학급 애들 챙기려고 하면서 정작 내 아이는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 것일까? 직장맘들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일하는 것 자체가 죄가 아닌데 아이 앞에서는 미안한 일이 꼭 생긴다. 

내 아이는 참 씩씩하다. 엄마가 없어도 혼자 잘 논다. 유치원도 항상 재미있어하고 활동적이다. 그냥 평범하고 밝은 아이지만 그렇다고 섬세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말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 속상한 경험을 하며, 깜짝 놀라기도 하고 좌절과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오늘 아이의 표정에서 아이의 속상함을 읽었다. 아이를 힘 빠지게 한 그 일이 실은 우리의 잘못이 아닐 수 있음에도 나는 엄마로서 나의 부족함을 탓한다. 


아이와 운동장에 가서 공을 차며 놀았다. 땀 흘리며 놀고 깔깔 거리며 웃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풀어지는 듯했다. 운동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다른 친구들은 인형을 다 가져왔는데 승현이만 안 가져가서 속상했지? 승현이가 속상하다고 하니 엄마도 속상해. 그런데 승현아. 승현이는 잘 때 인형이나 장난감이 없어도 잘 자잖아. 그런 건 승현이가 진짜 형아가 되었다는 건데 엄청 기분 좋은 일이 아닐까? 어릴 땐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있어야 자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그거 없이도 자게 되는 거거든. 엄마는 승현이가 너무 자랑스러워. ” 

그제야 표정이 밝아진 아이가 말한다.

“그렇네. 엄마 아까 차량 기사님이 내 잠옷이 최고로 멋지다고 하셨어.”

“맞아 승현이 잠옷 참 잘 어울리더라. 모두 똑같을 수는 없어. 좀 다르면 어때.”


#4 엄마의 고민 

기분 좋게 깔깔 웃으며, 장난을 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잠이 들었는데 아이를 보니 다시 엄마의 마음으로 돌아와 또다시 마음이 무겁다. 아이에게는 금방 감정이 사라져도, 엄마는 그 감정을 참 오래 이고 가게 된다.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똑같지 않은 것을 싫어한다면 나는 똑같은 것을 준비해줘야 할까? 아니면 달라도 괜찮다고 아이를 설득해야 할까? 생각은 후자인데 당장 아이의 입장에서는 전자가 덜 속상할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 기준이 항상 고민이다. 

가장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은, 직장맘의 엄마 노릇이다. 직장에서도 잘하고 엄마까지 잘하기가 쉽지가 않다. 직장맘이기에 엄마로서의 시간 투자는 적고 그만큼 기대를 낮춰야 하는데 그게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자리한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앞으로 계속 겪어야 할 감정이다. 직장에서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 중간 어딘가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온전히 육아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아이에 대해 해주는 부분의 한계를 인정하고 직장맘으로서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두 가지 모두를 완벽하게 할 순 없다.


아직은 어렵다. 그 사이 합의점을 찾는 것이. 그래도 조금씩 흔들리며 아이도 나도 괜찮은 지점을 찾아갈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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