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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수 Feb 18. 2024

Kindness 친절함

우리는 왜 "친절함"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석사과정 중 내가 정말 존경하는 교수님이 계셨다. 그분은 여러 가지 심리치료, 특히 인지행동치료를 중점으로 가르치시던 교수님이었는데 그분이 "My goal this year is to be a kinder person" (나의 올해 목표는 더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라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20대 중반이었고, 나이 탓인지 그때만 해도 시니컬하고 날카로운 것이 멋있는 것으로 여겨질 때라 그 목표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저렇게 멋있는 사람의 목표가 고작 친절해지는 거라고?


그 이후에도 "Kindness" (네이버 사전: 친절, 다정함)에 대한 기사나 연구등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구글에 "Why is kindness so important?" (왜 친절함은 중요한가요?)라고만 쳐도 많은 친절함의 중요성이 나온다 (밑 스크린샷 참고).


다른 이에게 베푸는 친절이 상대방뿐만 아닌 나의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연구도 꽤 많다. 어떻게 보면 이런 연구들의 결과가 놀라운 것은 아니다. 개인으로서는 나약한 인간이 이렇게 문명을 발전시키고 전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감정교류, 언어 등을 통해 함께 협력했기 때문이다. 이런 공동체적 삶에 있어 친절은 상대방과 나를 이어 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이며 결국은 우리 모두의 생존에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 뇌가 친절한 행동을 할 때 옥시토신, 세로토닌, 엔도르핀 등을 분비하여 이 행동에 보상을 주는 쪽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반대로 친절하지 않은 사람, 타인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사실 전투태세를 하고 있는 것과 같아 그의 몸은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호르몬과 신경물질들을 활동시킬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결국 친절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척함으로써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정도 읽으면 이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안 그렇다고! 괜히 친절했다간 낭패만 봐!". 더 나아가 이유 없이 친절한 타인을 보면 "이 사람, 도대체 나에게 원하는 게 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친절하다는 것을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거나 다른 이를 위해 나를 희생시킨다는 잘못된 의미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 오면 가장 크게 자주 느끼는 것이 이것이다. 내가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 되었을 때 한국인들은 과도하게 친절하고 모르는 사람끼리는 서로를 필요이상으로 경계한다는 느낌. 한국 호텔에선 직원들이 단체로 나에게 90도 인사를 하여 내가 야쿠자 보스가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는 반면 모르는 이에게 길을 물으면 그 사람은 한 손으론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론 손을 내저으며 "아, 아니에요!" 하고 총총총 도망을 간다. (물론 길거리 사이비 종교들 때문이겠지. 그리하여 서울에서 길을 물을 땐 목적지부터 외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사람들은 결국은 개개인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생존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기 마련이기에 어떤 환경이 한국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친절함"은 주로 서비스직의 역할로 간주되며, 어떤 서비스 품질 (호텔, 레스토랑 또는 항공사 등)을 평가할 때 많이 언급된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친절함은 자본주의 사회의 "재화"로 간주되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을 주었을 때 받을 수 있는 답이라고 여겨진다. 그 어떤 것이 돈으로 지불되었든,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사회적 지위의 영향력이었든. 이렇게 친절이 재화가 되어 버린 사회에서는 친절이 사회적 서열 안에서 낮은 사람이 높이 있는 사람에게 해야 하는 의무로 느껴져 버려 노동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이유없는 친절은 그 사람의 의도를 의심하게 한다.


17개국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묻는 조사에서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답했지만,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를 뽑은 것도 이에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른 이에게 받는 친절함이란 결국 내가 사회 안에서 존중을 받고 다른 이가 나의 존재에 신경을 써준다는 느낌인데, 한국은 이것이 돈을 써야만 받을 수 있는 사회처럼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욕심이 많아서 물질적 풍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타인의 기본적인 존중을 받기 위하여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며 생각해 본다.


물론 친절함의 상품화가 해외라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 항공사도 비즈니스 석 승무원들이 이코노미 석에 있는 승무원들보다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사탕 같은 미소로 나의 이름을 외워 불러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차이가 그렇게 한국만큼 뚜렷하지는 않다. 이게 바로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에 가서 "외국은 항공사, 호텔, 레스토랑 등이 한국만큼 친절하지 않아!"라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또 길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미소 지어주고 이유 없이 돕는 것도 한국보다는 훨씬 많은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러면 서비스직을 떠나 서로 계산적으로 얽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서로를 경계하고 불친절할까. 많은 사회적, 경제적인 설명들이 있겠지만 친절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자신의 심리적 또는 신체적 니즈가 충족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프거나, 잠을 못 잤거나,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더더욱 불친절 해지기 마련이다. 쉽게 말해서 "사는 게 힘들어서"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함을 베푸는 것이 몸에 베인 습관이 되어, 자신이 힘들때에도 말 한마디, 표정하나에서 자연스럽게 다정함이 묻어 나오는 그런 보석 같은 사람들도 종종 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중요성"에 너무 몰입이 되어 자신이 다른 이에게 친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나의 권리(e.g. 갑질)로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자신의 중요성에 몰입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심리적인 결핍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데 앞서 얘기했듯 친절하지 못한 것은 결국 자신을 공격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외로움은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과 비슷하다는 주장도 있고, 냉소적인 태도와 적개심은 심혈관계에 염증반응을 일으킨다는 연구도 있다. 결국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과 다른 이에게 친절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셈이다.


이로써 “친절함”은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지 않은 넓은 시각을 가진 이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아주 우아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거의 십 년이 지나가는 이제야 그 교수님의 말씀이 십분 이해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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