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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먹과 요가 Jul 05. 2024

낳아준 이를 원망하게 만드는 그 이름, 다이어트

쬐그만 다이어트

 요즘, 나는 절찬 다이어트 중이다.


  오이, 계란, 당근, 다크초콜릿, 토마토 파스타, 요거트... '이걸 먹으면 살이 안 빠지려야 안 빠질 수 없겠다!'싶은 음식들로만 삼시 세끼를 먹은 지 어언 10일째. 첫째 주는 주 5일을 꼬박 요가 1시간을 땀 흘려 하고, 1시간 수영을 주 3회 한데다가, 둘째 주도 빠지지 않고 하루 한 시간 요가를 빼먹지 않았다. 전신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몸매를 비춰보니 역시! 팔뚝을 장식하던 한복살도 올라붙은 것 같고 여행 중 마신 막걸리로 두툼해졌던 허리도 얄쌍해진 것 같았다. '이 정도 식단에 운동이면 조금쯤은...빠졌겠지?' 대학 4학년 때 6kg 감량에 성공했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10일이면 1kg정도는 줄어들지 않았을까...? 아니! 1kg이 아니라도 몇 백 그램이라도 줄었을거야!'라며 희망적인 마음으로 체중계가 어딜 갔는지 찾기 시작했다. 한 달 간의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던 주홍색 체중계를 끝끝내 엄마를 닦달해 찾아내고선 그 위에 올랐는데 웬걸, 체중은 단 1그램도 줄어있지 않았다.


  '...'


  체중계에 올라, 지구에 발딛고 서있는 나의 질량을 나타낸 수치를 눈으로 확인한 순간부터 기분이 말 그대로 '팍' 상해버리고 말았다. 가슴 속에서부터 울컥함이 올라오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게 뭐라고.


  갑자기 먹을 거리가 '확' 땡겼다. 뭐라도 입에 집어넣고 씹고 싶었다. 상해버린 기분을 보상받고 싶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내 몸뚱이에 화풀이를 하고 싶은 기분이었고, 어차피 빠지지도 않을 살, 홧김에 음식을 먹어 내 몸뚱어리에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마트에서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발견해 손에 쥐었다가 '안돼!'라는 엄마의 단호한 목소리에 그 자리에 앉아 온몸으로 떼를 쓰며 손에 든 장난감을 내팽겨쳐버리는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마음 속 어린아이의 땡깡부림을 최대한 꾹꾹 눌러내며, 어엿한 성인의 뇌는 다행히도 칼로리 폭탄인 꼬깔콘이나 밀크초콜릿을 서랍에서 꺼내들지 않고 대신 하루 한줌 견과류 봉지와 바나나를 집어들라고 명령했다. 견과류를 우적우적 씹으며 방금 전의 경험을 되돌이켜봤다. 다시 한번, 이게 뭐라고.



  우리 집은 어렸을 적부터 체중에 엄격했다. 아니, 체중에 엄격했다기 보다는 '평균을 웃도는 체중의 여성'에게 비판적이었다. 무엇을 먹어도 평균 이상으로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의 남동생에 비해 나는 2차 성징 이후로 살이 급격하게 불어났고, 그 이후로는 거의 쭉 평균치 이상의 체중을 유지했다.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밖에 하지 않았던 동생에 비해 활동적인 나는 2년 간 재즈댄스를 배우거나 스쿼시를 배워보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밤산책을 즐겨했다.

  활동적인 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즐기던 나를 보며 아빠는 "꼭 살찌는 음식만 좋아하지!"라는 말을 했고, 엄마는 지나가던 앳된 여학생에게 "쟤는 무슨 용기로 저 굵은 다리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다니?"라며 핀잔어린 눈길을 보냈다.

  지금이야 머리가 굵은 나는 "엄마! 아빠! 그런 말 하는거 아니야!"라며 나이 드신 부모님의 재사회화를 돕고 있지만, 치즈가 듬뿍 올라간 콤비네이션 피자가 고구마 무스와 만나 이루는 환상적인 조화를 음미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느껴지는 죄책감과 수치심은 어떻게 해도 잘 지워지지가 않는 것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 때 다이어트를 하지 말걸!'


  대학 4학년 여름 방학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이어트를 선언하고 6kg을 감량한 적이 있었다. 입에서 달걀내가 날 만큼 먹다가 물려 장조림용으로나 쓴다는 일명 '미후지', 돼지고기 뒷다리살을 수육으로 삶아서 물에 양념을 씻어내 하얗다고도 빨갛다고도 할 수 없게 된 배추김치와 함께 먹으며 악착같이 감량한 몸무게는 6개월을 유지하지 못했다. 요요현상으로 9kg이 쪘고, 이후에도 비슷한 패턴으로 다이어트와 요요현상을 반복하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던 10년 전보다 약 6kg이 늘었다.

  '그저 생긴대로 살았으면 6kg은 찌지 않아도 되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며 괜시리 '살찐 여성은 죄악이다.'라는 명제를 머릿속에 심어준 부모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근 10년간을 소위 말하는 "아가리 다이어터"로 살아온 나는 다이어트에 성공을 해보기도 하고, 유지에 실패해보기도 했다. 이 쯤 되면 다이어트를 시도해 봤거나, 실패해 본 사람들은 다이어트의 이론은 빠삭하다. 뭘 먹어야하고 뭘 먹으면 안되는지, 운동은 어느정도로 해야하는지, <핵심은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라는 것도 말이다. 김종국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인생은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이라고.


  꽤 자주 그러는 편인데, 본인은 너무 하기 싫거나 힘든 일을 하면 약간 존재의 근원을 찾게 된다.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억지로 등산을 하게 되었을때도 '인간은 왜 결국엔 내려오게 될 산을 오르려 하는가?', 하기 싫은 공부나 숙제를 앞두고서 방청소를 시작했을 때에도 '어째서 시험기간에는 방청소가 하고 싶어지는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곤 했다. 다이어트를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 지도 알고 있고, 어떻게 해야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지도 알고있는데 "왜?"해야 하는 것일까?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건강을 위해서?


  자크 라캉이 말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다이어트를 '해야만 하는' 이유들은 아주 많았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사회가 기대하는 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또는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다고 낙인찍히기 때문에 그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하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던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과연 다이어트를 성공하고 싶은가? 다이어트를 성공하면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외모에 대한 비난과 지적을 받아 다이어트를 결심하고(인정), 누군가는 더 이상 체중이 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 다이어트를 결심하고(건강), 또 누군가는 관심이 가는 멋진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결심한다(사랑). 사람은 욕망과 필요에 의해 행동한다. 욕망과 필요가 강력한 만큼 행동도 강력해진다. 결론이 나왔다. 내가 독하게 다이어트를 실행할만큼의 강력한 욕망과 필요, 즉 동기가 없는 것이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누군가에게 몸매에 대해 비난받아 본 적이 없고, 최근 2개월간 최소 주 8시간을 운동에 할애할만큼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비록 날씬한 몸매는 아니지만 나의 다른 점들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물론 날씬해져서 사진에 예쁘게 찍히면 좋겠지만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고, 모델이나 연예인이 되어서 인기를누릴 것도 아닌데 굳이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면서까지 날씬함을 원하지는 않는 것이다. 원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무언가를 위해 행동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딱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다이어트를 위해 내 노력을 할애해보기로 했다. 백수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니, 최근에 배운 먹기명상을 이 참에 실천해보는 것이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을 허겁지겁 빠르게 먹는 습관이 있어 배부름의 신호를 잘 알아채지 못하고 과식을 하게되는 버릇을 없애보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적당량을 먹되, 천천히 내가 먹는 것의 형태와 색깔, 냄새, 소리, 질감과 단단함, 맛을 느끼면서 오롯이 식사시간에 집중하며 배부름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고 과식하는 습관을 고쳐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쬐그만 욕망의 크기에 맞는 속도와 방향으로 쬐그만 다이어트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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