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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왕자 Nov 25. 2023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뭐였지?

아이들과 함께 서실로 향한다.  

하루하루마다 색이 달라진 느낌
밝게 빛이 나는 길을 찾아

I'm on my way 넌 그냥 믿으면 돼

Life is 아름다운 갤럭시
Be a writer, 장르로는 판타지


아이브(IVE)의 I AM을 따라 부른다.

아이브에게 나는 오빠일까? 삼촌일까? 아저씨일까?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뒷자리에 앉은 녀석들이 춤을 추며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른다.

룸미러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아내가 생각난다.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고 있다. 올해 여름까지 우리가 살던 곳.


난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이곳이 더 좋다.

봄이면 벚꽃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이별을 받아들였다. 

가을이면 단감을 황톳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을 기다렸다.

외롭고 슬플 땐 어린왕자처럼 노을이 보고싶었다.

단감 하나라도 툭, 떨어지면 노을이 터질 것만 같았다.




서실이 있는 건물 앞에 아이들을 내려주고 근처에 주차를 한다.


오늘도 만보 걷기 시작.

山과 江 걷기를 좋아하지만 도심 한가운데를 이리저리 걷는 것도 재미있다.

보물찾기 놀이하는 아이처럼,

예쁜 가게, 착한 가게, 새로 생겨난 가게를 찾는다.


상가 임대(매매) 

00부동산

문의환영 010-0000-0000


빨간 딱지가 붙은 가게 앞. 이전 사장님과 이후 사장님의 앞길을 위해 잠시 기도드린다.


아까 스쳤던 삼겹살 음식점이 자꾸 날 부른다. 

문워크! 문워크! 마이클잭슨처럼 문워크! 문워크!

가게 안에 놓여 있는 동그란 솥뚜껑이 예술이다.

집에 가져가고 싶다. 

뭘 올려놓고 구워도 다 맛있을 것 같다.

삼삼오오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으면 이야기도 맛있게 익어가겠다.


아이들을 꼬셔야겠다. '오늘 저녁은 여기 어때?'




2층에 있는 서실로 올라간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좋다. 

좁다란 계단을 아슬아슬 올라가는 스릴이 있다. 

마음을 졸이게 하는 느낌이 좋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서예를 참 좋아하는 아이들. 바닥에 앉아 말없이 획을 긋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화선지에 붓이 스친다. 흑과 백이 만난다. 


다름과 다름이 만날 때  아름다움은 훨씬 더 크다.

지금 긋고 있는 가로 획이 아내와 나의 만남, 사랑, 갈등, 화해처럼 느껴진다. 


노크를 하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다.

수업에 대한 이야기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휘호(서예)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눈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 어때?"


초밥과 치킨이 결국 삼겹살에 무릎을 꿇었다. 야호! 오늘 저녁은 삼겹살이다.

솥뚜껑 앞에 셋이 둘러앉았다. 삼겹살 3인분과 공깃밥 3공기를 주문한다.

3(명)-3(겹살)-3(인분)-3(공기), 숫자 3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두툼한 삼겹살과 참기름 냄새가 확 풍겨오는 파채, 직접 김장한 묵은지.

착하게 생긴 남자 직원이 아이들에게 음료수를 서비스로 준다.

된장찌개를 서비스로 또 준다.

공깃밥은 1.5배로 듬뿍 담아 준다.


부담 UP UP UP


혹시 엄마 없는 아이들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 


셋이서 이렇게 다니다 보면 가끔 오해를 받는다.

우린, 엄마가 있다구요!

난, 어여쁜 아내가 있다구요.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늘 그랬듯이 혼자 산책을 하며 오늘 하루를 다스리고 있을 것이다. 


1학년 아들은 샤워를 하고 숙제를 시작한다.

한글 공부와 받아쓰기, 일기 쓰기 3종 세트를 해야 한단다.

할 일이 많은 1학년이다.


3학년 딸은 산책을 나가자고 조른다.

아빠랑 같이 걷고 싶다고 한다.

아내에게 연락을 한다. 

다행히 집 가까이 오고 있다. 딸과 함께 길을 나선다.




강이다. 아내가 특히 좋아하는 곳.


아내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맘이 여린 사람이라 상처도 많이 받는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강을 걷다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 적이 있다.

"하지 못한 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여기에다 던져."


그날 이후로 아내는 이 곳을 매일 찾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따라 부른 척하며 속에 쌓인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고 했다.

던져 버린다고 했다.




조막만한 손을 잡고 걷는다.


출근할 때 따라 나와 안아주고 퇴근하면 달려와서 안아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내 품에 꼭 안기는 사랑스러운 아이.


우리는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였을까?

꿈나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이야기 기차를 탄다.

이야기 기차를 타고 이야기 짓기 놀이를 한다.

문장을 짓고 호흡을 짓고 표정을 짓고 마음을 짓는다.


이야기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고

재미있고 슬프고 화나고 억울한 세상을 만난다.


가끔 똥과 방귀만 잔뜩 나오는 더러운 이야기,

전 세계 귀신 몽땅 출연하는 무서운 이야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끝도 없는 막장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책이 되어 배달된다면 얼마나 신날까?  

우리의 이야기가 영화가 되어 어느 소극장에서 상영된다면 얼마나 멋질까?




피아노가 산책길에 놓여있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펴보더니 피아노 앞에 조용히 앉는 아이.

요즘 한창 셋이서 리코더로 연습하고 있는 아이유의 <가을 아침>을 연주한다.


가을 저녁에 듣는 가을 아침,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곧이어 아이브의 <I AM>을 연주한다.

연주하다 춤추고 춤추다 연주하고.

강에서 물결이 일렁인다. 밤하늘이 찬란하게 빛난다. 

두 마리의 용이 어디선가 나타나 하늘 위를 날아다니며 신나게 춤을 출 것만 같다. 


갑자기 뒤돌아 나에게 묻는다.

"아빠는 어떤 노래를 좋아해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뭐였지?

어떤 노래를 좋아해요? ⓒ어른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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