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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Apr 14. 2024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_헝거


2018년 3월 8일 여성의 날에 출간된, 록산게이의 <헝거>를 그해 읽고난 후 6년 만에 다시 읽었다.록산게이는 이 책이 “평균보다 몇 킬로그램, 아니 20킬로그램 정도 더 많이 나가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 아니다. 130킬로그램 내지 160킬로그램이 더 많이 나가는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저 과체중이나 경도 비만이나 고도 비만이 아니라 체질량 지수BMI 수치상 병적인 초고도 비만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썼다. 이 책은 다이어트 책이 아니며, 모든 고통은 이제 존재하지않는다는 책도 아니다. 우리(cage)가 된 몸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지금도 찾고 있는, 사라지지 않는 고통과 함께 써내려간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이다.


나는 청소년 시기를 지나면서 마른 몸인 적이 없었다. 나는 키도 크고 살이 찌면서 덩치도 큰 ‘여성’으로 계속 살아왔다. 나는 뚱뚱하고, 뚱뚱한 친구들이 있고, 마른 친구들이 있고, ‘평균’이라 칭해지는 친구들이 있으나, 오브리 고든이나 록산게이가 말한 ‘그런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이야기를 텍스트로만 알 수 있겠으나, 우리 사회에서는 조금만 평균에서 벗어나 커진 몸들에 대해 무례하고 폭력적이기 때문에 텍스트만이 아닌 경험으로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니 좁게는 청소년기 학교 내에서 나의 몸이 가진 위치성은 성별이분법/이성애규범/남성중심적/건강중심주의/천편일률적인 미의 기준 속에서 뒤범벅되고 약한 자를 함부로 대하는 폭력문화 속에서 원치 않는 경험을 대면하면서 수치를 내재화하며 살아왔다.


록산게이의 몸은 왜 커졌는가. 그가 게을러서인가? 나약해서인가. 그의 몸은 성적 폭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경험이 그 자체로 사유와 표현은 아니기에 그는 정희진의 표현에 따르면 ”경험에 대한 해석, 생각, 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이야기를 쓴다. 록산게이가 한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그는 죄책감을 가졌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괴로워했고, 먹으면서 몸의 공간을 크게 만들었다. 무거운 사람은 욕망이 되지 않기에. 모든 피해경험자의 잘못이 아닌 것은 명백히 성적 폭력의 가해자가 있어서이며, 그 가해자들은 피해 상대를 따지지 않기도 하기에 몸의 크기는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되려 사회에서 다른 상처와 고통을 받기 일쑤이기도 하다. 그 몸을 만든 것이 스스로라고 하여 록산게이는, 또다른 누군가는 그것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때 밑줄 긋기와 지금의 밑줄 긋기가 대체로 겹치지 않았다. 비슷한 내용들이겠지만, 그때의 밑줄들은 게이가 쓴 수치나 허기에 대해 부정적인 부분들이었다면, 이번엔 사회적인 이야기이거나 게이의 바람의 이야기들이 주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끄집어내기 쉽지는 않은 고백들이 이어진다. 그 뒤엔 항상 ‘극복’했다는 희망서사가 아닌 게 좋고, 그렇다고 붙잡는 게 없는 삶이라 푸념하는 게 아니라 좋다. 흉터가 없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을 들여다보는 록산 게이의 직면이 좋다. 헝거, 다시 읽어도 좋은 읽기의 시간이었다.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사이행성


p30-31 한 사람의 체질량 지수는 체중kg을 신장m의 제곱으로 나눈 값(체중 (kg)/신장(m))이다. 수학이란 어렵다. 한 사람의 몸의 관리 부족 정도를 정의할 수 있는 여러 숫자들이 있다. 체질량 지수가 18.5에서 24.9이면 ‘정상'이다. 체질량 지수가 25 이상이면 과체중이다. 체질량 지수가 30 이상이면 비만이다. 만약 체질량 지수가 40이 넘는다면 고도 비만이다. 이 숫자가 50이 넘으면 초고도 비만이다. 내 숫자는 50이 넘는다.

사실 많은 의학적인 명칭이나 기준이 독단적이긴 하다. 1998년에 미국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의 주도 아래 의료 연구원들이 '정상'으로 분류되는 기준 지수를 25 이하로 지정했고, 그러면서 미국인의 비만 인구가 두 배로 증가했다는 점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숫자를 낮춘 이유 중에는 이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25 같은 딱 떨어지는 숫자여야 사람들 이 기억하기 좋다.“


p36 나는 페미니스트이고 여성을 비현실적인 이상에 구겨 넣으려 하는 천편일률적인 미의 기준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다양한 체형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의 미의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세세한 부분까지 바꾸려 들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가치는 내 옷의 사이즈나 외모에 있지 않다고 믿고 있다(믿고 싶다).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악의적인 문화,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통제하려 하는 문화 안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내 몸이나 내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비합리 적인 기준에 저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p40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현재 나는 ‘생존자'보다는 ’피해자'를 선호한다. 일어난 일의 엄중함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희망의 여정을 걸어와 승리를 쟁취한 척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무사한 척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 일이 일어난 채로 여기까지 걸어왔고 그 일을 잊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거나 내게 흉터가 남지 않은 척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은 내 몸에 관한 고백이다. 내 몸은 망가졌다. 나도 망가졌다. 그 전으로 어떻게 다시 되돌릴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 안의 일부는 죽었다. 내 안의 일부는 침묵했고 수년 동안 그 상태 그대로 있었다.


p57  내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한다면 내 언어로, 필연적으로 따르게 될 관심에 개의치 않고 내 식대로 하고 싶다. 동정이나 공감이나 조언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용감하지도 않고 영웅적이지도 않다. 나는 강인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다. 나는 이 세상의 수많은 여성이 경험한 것을 경험한 한 여성일 뿐이다. 나는 희생자이지만 살아남았다. 더 나쁠 수도 있었다. 더 최악이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중요하고 어쩌면 내가 여기서 하려는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흔하디흔한 이야기 중 하나일지 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기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비슷한 과거를 공유하는 여성과 남성의 합창에 나 또한 합류함으로써, 성폭력에 따른 고통이 한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파장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똑똑히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p59 굳이 내 이야기를 공유하려는 이유는 폭력의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 개인의 폭력의 역사를 말하기는 주저했으나 그 역사는 지금의 나라는 인간, 내가 쓰는 글의 내용, 내가 글 쓰는 방식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알려준다.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가고 있는지도 알려준다. 내가 어떻게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나를 사랑하도록 허락했는지를 알려준다. 폭력의 역사는 모든 것을 알려준다.


p149 여기서 방법론은 상관없다. 중요한 건 뚱뚱하면 무조건 돈이 나가고 그렇기 때 문에 아주 다급하고 위중한 문제라는 점이다. 뚱뚱한 사람들은 정부 예산을 고갈시키는 주범으로 이들의 몸 역시 같은 인간의 신체일 뿐이지만, 이 신체에 필요한 건강보험과 의약품만 엄청난 것처럼 강조한다. 사 람들은 뚱뚱한 사람들이 자기 지갑에 손을 뻗어 돈을 꺼내가고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지방 덩어리가 자기 예산에 구멍을 내는 것처럼 행동한다.


p164 “올해 당신 인생 최고의 몸매를 만들어보세요." 이 문장에 담긴 함의는 현재 우리의 몸매는 우리의 최고의 몸매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코 절대로 그렇지 않다. 60대 초반의 억만장자이며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인 오프라조차도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나 보다. 이것이 바로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몸에 관해 이 문화가 보내는 해로운 메시지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물질적인 성공을 거두어도, 우리는 날씬하지 않으면 만족하거나 행복할 수 없다.


p169 이런 용어들-의학 용어, 가볍게 놀리는 말, 속어, 모욕적 언어- 은 모두 뚱뚱한 사람들의 몸이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의 몸은 너무나 문제가 심각하여 특별한 용어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몸을 그렇게 무자비하고 공공연하게 해부하고, 정의하고, 그리고 폄하하는 데 이렇게 열심이라니 다 대단들하다.


p184 기간을 정해놓고 그 기간 안에 내 몸이 쉽게 달성할 수 없는 이상적이다 못해 허황된 목표를 세운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까지는, 호주에 가기 전까지는, 애인을 만나는 날 전까지는 X킬로그램을 감량할 거야. 북투어 전까지 X킬로그램은 뺄 거야.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X 킬로그램은 빼고 말겠어. 비욘세 콘서트 가기 전까지 X킬로그램은 빼겠어. 목표들을 세워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성의한 시도들을 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그러면 나는 또다시 나은 하루를 보내지 않았다는, 더 작아지지 않았다는 패배감에 젖고 악순환은 반복된다.

 나의 한껏 부풀었던 환상과 그 뒤를 이은 실망은 나 혼자만 간직하기로 한다.


p196-197 어쩌면 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 있든 내가 어디에 서 있게 되고 어떻게 보이게 될지 질 문해봐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아파트 안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 일걸. 나는 이 교실 안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이군. 나는 이 대학교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이야. 나는 이 극장 안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이지. 나는 이 비행기 안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이야. 나는 이 공항 안에서 가장 뚱 뚱한 사람이야. 나는 이 고속도로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일 거야. 나는 이 도시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일지 몰라. 나는 이 행사장 안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이겠지. 나는 이 모임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이네. 나는 이 레스토랑 안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이 맞아. 나는 이 쇼핑몰에서 가장 뚱뚱해. 나는 이 패널 중에서 가장 뚱뚱해. 나는 이 카지노 안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이야.

 나는 가장 뚱뚱한 사람이야.

 이것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날 파괴하는 후렴구이고 나는 이 반복적인 문장에서 도망갈 수가 없다


p219 아주 오래전 나는 내 속에 아무것도 없는 느낌을 원했기 때문에 토하기 시작했다. 나는 텅 빈 느낌을 원하면서도 나를 채우고 싶기도 했다. 10대도 아니고 20대도 아니었다. 내가 마침내 스스로를 통제하는 걸 배운건 30대가 되어서였고 그 방법은 식이장애였다.


p278-279 걸을 때 팔을 너무 흔든다. 이런 말들 을 수시로 들었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나는 하지 말아야 할 것 목록을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같이 걷다가 그 말을 기억했다. 맞아, 팔을 옆구리에 바짝 붙여야지. 팔 흔들지 말아야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주며 산 적도 있다. 팔 흔들지 말기. 그러다가 잠시 딴생각에 빠져서 잊어버리고 실수로 팔을 몇 센티 흔들게 되면 나는 땅이 꺼지게 내쉬는 그의 한숨 소리를 또다시 들어야 하고 그때는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을 거슬리지 않게 하기 위해 두세 배 더 노력한다. 팔 흔들지 말아야지, 록산. 요즘에도 걸으면서 팔을 흔들지 않 으려는 나를 발견할 때면 분노가 치솟는다. 미칠 듯이 화가 치솟아서 양 팔을 풍차처럼 돌리며 걷고 싶다. 이건 내 팔이란 말이다. 내 걸음걸이란 말이다.


p330-331 더 이상 내 몸이 나의 존재를 지배하도록 하지 않겠다고, 적어도 모든 것을 지배하도록 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숨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p332 내 몸과 이 몸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던 경험은 나의 페미니즘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바꾸었다. 내 몸에서 산다는 일은 다른 사람을 향한 공감과 동정의 범위를 넓혀주고 다른 사람들 몸의 진실에 대해 알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신체의 종류에 대한 (용인을 넘은) 포용과 인정의 중요성을 확실히 가르쳐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몸의 존엄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더 신중한 단어인 사이즈란 말을 사용 하는데, 나는 사이즈가 좀 되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될 수 있고 최소한 지난 20년 동안 그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나의 또 다른 정체성도 마찬가지였다. 이 몸이 불러오는 혼란과 수치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존중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 몸은 회복 탄력성이 크다. 내 몸은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다. 내 몸은 존재감이라는 힘을 제공하기도 한다. 내 몸은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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