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도 안 죽이는 게 말이 돼? 하나라도 죽여!"
'최강럭비'라는 스포츠 오락 프로그램을 본다. 현역 럭비선수들이 참여해 열띤 대결을 벌이고 치열한 경기를 펼친다. 선수들의 거친 표현이 거의 여과 없이 터져 나온다. 덕택(?)에 프로그램은 생생함이 가득하다.
규범을 사방에서 들이대면 대사 대부분을 들어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일정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내뱉는 말이 치열한 현장의 언어이고 최선을 다해 싸우는 사람들의 절박함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들 또한 예외 없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거친 말씨가 바람직하지는 않을지언정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다'는 것이려니..
바람직한 건 바람직한 거다. 바람직한 걸 다른 말로 하면 이상. 그런데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늘 괴리가 존재하는 법. 성경은 이 원초적 간격을 원죄라고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이 간격을 사이에 두고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이상과 현실. 도무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이상에 비해 불가피하기만 한 현실이 우리에게는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기만 하는데..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린도후서 5:20)
하나님과 딱히 싸운 기억이 없는데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말씀을 대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 또는 화평을 이룬다는 것은 혹 이상과 현실의 화해할 수 없는 괴리를 넘어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실은 천국이 가까이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