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운동을 하러 갔다. 한동안 바쁘다든 이유로 필라테스 그룹레슨을 정지해 두었었다. 오래간만에 근육 이곳저곳에 자극을 주니 온몸이 괴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겨우 달래 가며 쉬엄쉬엄 운동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왼쪽 손목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학원에 갔고 특별히 연락 올 곳도 없는데, 선거 앞두고 또 스팸전화인가 싶어 짜증이 올라왔다. 울리다 말겠지 하고 신경을 끄려는데 도통 멈추지 않았다.
'아빠'
바로 어제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무슨 일이실까? 그룹 운동 중이라 받을 수가 없었다. 이제 20분만 더 있으면 끝날 거라 일단 운동 중이라는 자동메시지를 보냈다. 줄기차게 울려대던 진동이 멈췄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어지러웠다. 아마 뭘 부쳐주시려고 하신 걸 거라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과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하는 걱정이 계속 경쟁하듯 내 주의를 잡아당겼다. 그 뒤로 어떻게 운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아빠께 전화를 드리려고 핸드폰을 들었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 전화가 울리는데 동생이었다. 아빠에 동생까지! 이는 필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갑자기 고령의 할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심장이 몸을 뚫고 나올 듯 벌렁거렸다.
"언니, 어떡해."
동생은 이 말을 던지고 한참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왜? 무슨 일이야? 안 그래도 아빠전화 왔어서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했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우는 동생을 채근했다.
"작은 엄마가...."
전화기 너머로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가 들려왔다.
작은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셨단다.
'왜? 대체 왜?'
계속 의미 없는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자그마한 키에 귀염성 있는 얼굴의 작은 엄마는 나랑 겨우 띠동갑 차이다. 늘 쾌활하고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농담도 잘 건네셨다. 이제 막 20대 초중반이 된 동생들과 아직도 삼촌이라는 말이 더 익숙한 작은 아빠. 모두에게 작은 엄마의 자리는 실로 엄청나게 크다.
그간 죽는 데 나이 순서 없다고 쉽게 쉽게 말했지만 아직 환갑도 한참 남은 숙모의 부고는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사고사라니. 아무런 준비 없이 맞는 소중한 이의 죽음 앞에 허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숙모가 더 이상 세상에 안 계시다는 게 슬프고,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와 엄마를 잃어버린 삼촌과 동생들이 사무치게 안타까웠다.
부고 소식(월요일 저 넉)을 듣고 바로 내려가려 했는데 사고사라 부검을 해야 해서 발인(목요일)이 늦어지게 되었다.
나는 내 마음의 거리와는 상관없이 직계가족의 사망만을 시유로 받아주는 특별휴가 제도로 인해 연가를 써야 했다. 그마저도 목요일 하루를 겨우 허락받았다.
그나마 다행히 수요일인 오늘이 국회의원 선거로 휴일이라 투표만 마치고 장례식장을 향해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
평소 같으면 여유지게 음악을 귀에 꽂고 창문 밖 감상을 즐겼을 테지만 지금은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마음이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에 큰 돌을 얹은 듯 답답해서 견딜 수기 없다.
결국 오랜만에 이렇게 글을 휘갈기고 있지만 뭐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상주 자리를 지키고 있을 동생들을 어찌 볼까. 그저 여러 번 안아주고 같이 울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