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가는 날
23년 전 그날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그날 이후로 장시간 비행을 해야 하면 심장이 벌렁대고, 앞이 하얘진다. 비행기 타기 전 약을 챙겨 먹어야만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있다. 1998년 1월, 내가 8살이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날 밤, 설레는 마음에 한숨도 못 잤다. 23년이 지난 오늘은 서울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직항노선이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3번의 경유를 걸쳐 돌고 돌아야만 도착할 수 있는 그런 먼 곳이었다.
마지막 날, 친구들과 헤어지는 건 아쉬웠지만 이별이란 감정을 느끼기엔 어린 나이였다. 오로지 내가 먼 곳으로 간다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아침이 밝고 우린 우리가 가진 모든 짐을 싣고 공항으로 서둘렀다. 그렇게 나는 바라고 바라던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도 잠시 처음 느껴보는 흔들림에 속이 울렁거렸고, 구토를 여러 번 하고 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쯤, 드디어 30시간의 긴 여정이 끝나고 우린 스페인이란 나라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맑은 공기를 마시는 순간, '아, 나는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 끝에 도착한 낯선 이곳은 어두운 밤이었고 무지하게 추웠다.
우리 집은 이제 스페인이야.
어릴 적부터 나는 우리 부모님이 이민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모든 걸 버리고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
작년 9월, 나는 엄마가 되었다. 한 아이의 부모가 돼보니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모든 걸 내려놓고 이곳으로 오게 된 부모님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이민을 오기 전날 밤, 그들도 한숨도 못 잤을 것이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로 떠나야 하는데 두 다리 뻗고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을 것이다.
비행기가 하늘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그들의 고향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우리에겐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머나먼 타지에서 얼마나 가족들이 보고 싶고 그리우셨을까? 새로운 언어, 문화를 배우려고 얼마나 애쓰며 답답하셨을까? 비로소 이제야 그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될 것 같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바로 '우리', 우리 남매였을 것이다. 우리가 조금 더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으셔서, 더 많은 경험을 갖게 하기 위해서, 두려웠지만 부모이기에 용기를 내셨다.
엄마는 한국에서 늘 긴 머리를 유지하고 계셨는데 스페인으로 이민 오기 전에 잘랐다고 하셨다. 머리가 자라서 길어질 때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그렇게 하셨지만 우린 돌아가지 못했다. 이곳이 우리 '고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말할 수 있지만, 우리 엄마·아빠의 선택은 옳았다. 방황하고 외로운 시기를 지나고 나니, 그만큼 성장해 있었고, 이곳에 적응할 수 있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법을 배웠고, 나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아직 한국이 미치도록 그리울 때도 있지만, 여유로운 스페인이 좋아진 건 사실이다. 첫인상을 별로였지만, 살아보니 아주 매력 넘치는 나라임은 분명하다. 요즘 엄마·아빠는 새로운 취미인 골프에 빠지셨고, 나는 9개월 된 아기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 그런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