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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Jun 17. 2022

한국과 스페인 국적 사이.

때론 한국인처럼, 때론 스페니쉬처럼.

 

1.5세란 한 국가에서 태어나 다른 국가로,
어린이 혹은 청소년 시기 때 이민 간 사람들을 의미한다.



형편이 어려웠던 한국 생활을 접고 우리 가족은 내가 8살이 되던 해에 스페인으로 이민 왔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이곳으로 왔지만, 여기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집을 구할 돈이 없어, 아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그분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작고 오래된 빌라에서만 살아왔었던 터라,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크고 깨끗한 새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제일 좋았던 건 바로 이층침대의 윗공간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곳이 나를 숨겨주고 위로해 줄 거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살던 곳은 동양인이 아주 드문 작은 마을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바라보는 시선들이 종종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가리키며 '중국 사람' 이라고 외쳤다. 분명 악의 없이 한 말과 행동이었겠지만 어린 나에겐 큰 상처로 다가왔다. 주변을 살피고 시선을 피해 어두운 곳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만 같아 내 모습이 점점 더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내가 아닌,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의 문제라는 걸 알기엔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누군가와 눈만 마주쳐도 입이 마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때때론 내 모습을 이불속으로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피하면 피할수록 세상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혼자 살 수 없다면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부터 나는 다른 외모, 다른 언어, 다른 습관, 생활, 풍습. 이 모든 것들을 마음속 깊이 숨겼다. 마음을 닫고 가면을 쓰고 나니 오히려 더 자유롭고 편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부터,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쌓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늘 외로웠다.


정체성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 나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회사에 취직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고개 숙이고 다니지 않아도, 내가 먹는 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한국어를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속사이듯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인답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 역할이 처음에는 새롭고 흥미로웠다. 이제야 나 자신을 찾았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들떠 있던 마음이 가라앉자, 눈 앞을 가리던 거품 또한 사라졌다. 토종 한국인들과 생활하고 일하면서 그들과 생각하는 마인드 자체가 아주 다르다는 걸 온 몸으로 체험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페인 문화와 습관에 훨씬 더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한국인이 되기를 기대했었지만, 0개 국어 하는 애매한 국적을 갖은 나를 마주했다. 혼란스러웠다. 스페인에 있으면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가면 이곳이 그리운 어느 무리에서도 적응 못하는 이방인이 돼버린 나 자신이.









방황하던 나를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 준 한 사람.

그와 아침을 맞이한 지 5년이 되어간다. 그와 함께하면 가면을 쓰지 않아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나 자신이 가진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덕분에 용감해졌다. 나만의 가치관은 단단해지고, 내 자신을 받아들였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젠 애매한 1.5세인 내가 싫지 않다. 때론 한국인처럼, 때론 스페니쉬 처럼 살아간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모습을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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