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INFJ, 남편은 ESTP.
여유로운 토요일 오후, 우린 평소와 같이 소파에 누워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MBTI 검사가 한참 유행하고 있었던, 자신의 성격유형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던 때이다. 그래서 그런지 SNS에 'MBTI 유형별 사람과의 관계' 또는 'MBTI 유형별 들었을 때 기분 좋은 말' 등을 다루는 계정들이 넘쳐났고 알고리즘은,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떤 유형 일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하고 있던 일을 잠시 멈추고, 바로 그 자리에서 궁금증을 풀기 위해 MBTI 검사를 해보았다. 다 마친 후, 옆에 누워있던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MBTI가 뭔지 알아?"
"아니"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알려주는 심리 검사래."
"아, 그래"
"한번 해볼래?"
"아니"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던 남편의 대답이었다. 이 대화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을 더 이해하고 알아가고 싶은 나와 반면 그는 그런 주제에 전혀 관심이 없다.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 자신인데 굳이 검사해서 자신의 성격 타입을 알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싶었다. 우리가 어떤 성격을 소유한 사람들인지, 이 테스트를 통해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야만 나 그리고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기 싫은 표정이었지만, 검사를 할 때까지 귀찮게 할 것을 알았는지, 남편은 마지못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성격 유형은 이러하다. 나는 INFJ, 남편은 ESTP. 9년 동안 연애하고, 4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다르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다를 줄이야. 지금 생각해보니, 처음에는 생각하는 방법과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 많이 다투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서로를 제일 잘 알기에, 다투기 전, 상황을 종료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요즘엔 많은 이들이 자기소개를 할 때 MBTI를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기 전에 MBTI 유형별 궁합을 알아보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 궁합에 따르면 우리 두 부부의 성격 유형은 최악이라고 나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진짜 궁합 최악! 지구 멸망의 길'이라 한다. 하지만 우린 10년 넘게 함께하면서 멸망하지 않았고, 최악이라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서로 다를 뿐. 지구에서 나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아무리 궁합이 좋고 비슷한 성향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라도, 내가 아닌 이상, 다르다. 그 말은 즉슨, 언젠간 부딪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부딪쳐야 성장할 수 있고, 부딪쳐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과 극인 성격 덕분에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처음부터 나는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소유한 이 사람에게 끌렸다.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그가 흥미로웠고, 더 알아가고 싶었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 지루할 틈이 없을 것만 같았다. 늘 새로운 걸 배우고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쓱 지나치는 것들에 그는 항상 머물렀고, 내가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들을 그는 시시해 했다. 한 곳만 바라보며 가던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 별 볼 일 없는 일들이라는 걸 가르쳐주었다. 나는 이런 나의 부끄러운 약점들을 이해하고 채워주기까지 하는 그가 참 좋았기에,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