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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Dec 30. 2022

아말피 성당에서 울다

INFJ와 ESTP의 여행

극과 극인 성격을 가진 우리에게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면 바로 여행이 아닐까 싶다.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오로지 우리 둘에게 집중하는 시간. 완벽한 여행을 꿈꾸면서 떠나지만, 여행스타일이 다른 만큼 다투는 일도 잦았다. 이태리 아말피 성당에서 울게 될 줄이야...


2017년 우린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INFJ인 나는 계획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반면 ESTP인 J는 즉흥적인 걸 즐긴다. 낯선 곳에서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여름을 만끽할 수 있는 목적지를 택하면 어떨까?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이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1위 이탈리아 해변마을 친퀘테레가 떠올랐다.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마을에 마음이 갔지만, J와 상의 후 비슷한 아말피 해안을 택하기로 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오픈카를 타고 해안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알코올의 '알'자도 모르는 내가 그곳에 와인이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하고 싶은 리스트는 끝이 없었다.


- 아름다운 테라스에서 바다를 소리를 들으며 맛있는 저녁 식사 하기.

- 나폴리에 가서 피자 맛보기

- 카타콤의 역사 파해치기

- 1일 1 젤라토 먹기

- 라벨로에 가서 클래식 거리 돌아보기

- 아말피 해변에서 수영하기

- 인생 사진 찍기

- 나폴리 지하도시 구경하기

- 카프리섬 푸른 동굴 다녀오기

- 카프리 전망대에서 풍경 즐기기


과한 욕심이 부른 결과를 상상도 못 한 체,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아말피 해안을 향해 날아갔다. 모든 게 상상했던 만큼 아름답고 좋았다. 오픈카는 아니었지만 꿈꾸던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꾸불꾸불하고 좁은 도로가 주는 스릴 또한 넘쳤다. 앞에서 오늘 차들이 빠르게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우리 곁을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 해지기도 했다.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속을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 눈 아래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났다.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눈부신 마을은 햇살에 비쳐 더욱더 빛나 보였다. 잠시 차를 세우고 감상했다. "하루하루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일어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저 멀리 보이는 절벽 끝에 세워진 집에는 누가 사는 걸까? 에메랄드 빛이 나는 저 바다에서 수영하면 어떨까?" 행복한 상상 속에서 헤매던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한 건 바로 J였다. J는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너무 많다고 걱정되는 얼굴로 말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린 알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걸.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마을에 다가갈수록, 정신없고 좁은 도로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다 보니 꽉 막혀 앞으로 나가는 속도가 굉장히 더뎠다. 수없이 생각하고 상상했던 계획들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하자 우리의 짧은 여행을 이렇게 허무하게 차에서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속상했다.


나는 속상함을 불만처럼 털어놓았다. J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듣기만 했다. '나 혼자만 속상해하는 것인가? 왜 내가 하는 말에 대꾸를 하지 않지?' 그렇게 J가 침묵할수록 나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아마 그때 그 순간, 내게 필요했던 건 공감이 아니었나 싶다.



주차할 곳을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결국 아말피와 라벨로, 가고 싶은 두 곳 중에 한 곳만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격해진 감정으로 우린 아말피 대성당으로 향하게 되었다. 라벨로란 마을에 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던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라벨로로 가야 했었나?“ 이 말을 하고 난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참고 참았던 J가 폭발한 순간이었다. 그가 소리 지르는 모습은 우리가 사귄 7년 동안 처음이었기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을 이어가지 못했던 기억뿐이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린 아말피 성당에 도착했다. 시끄럽고 복잡한 길거리를 걷다가 은은한 조명과 공간이 전하는 평온함이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감정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우리가 이렇게나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그의 모습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내 감정에 충실했다면 그는 그 상황을 해결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시간을 또다시 흘려보내는 대신 대책을 세워 다시 기분 좋게 여행을 이어나가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함께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우린 아직도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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