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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충신 268명과 함께하는 조선 왕릉

[대한민국 문화유산 탐방기] 영월 단종 장릉


대한민국 곳곳에 숨겨진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발로 직접 걸으며 발견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문화유산 애호가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가감없이 전해드립니다.



- 지난 기사 '자유를 잃은 낙원', 그야말로 천연 감옥에서 이어집니다.
   

� 영월 단종 장릉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문화유산: 단종 장릉 (UNESCO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 중 1기)

장릉 연대:
1457년 단종 사망 및 암매장
1516년 중종이 단종 묘에 첫 제사를 지냄.
1541년 영월군수 박충원이 종종의 명으로 봉분 조성.
1580년 선조가 석물(장명등, 표석 등)을 세움.
1698년 숙종이 노산군을 단종으로 추존하며 노산군묘를 '장릉'으로 명명.
1726년 영조가 엄흥도 정려각 조성.
1791년 정조가 장판옥, 배식단 설치.

탐방일: 2024년 1월 21일






청령포에 이어 장릉으로


설을 맞이하여 가족과 함께 떠난 당일치기 영월 여행은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문화유산에 큰 관심은 없던 가족들은 청령포 방문 후 체력이 크게 저하됐지만, 여행의 방향은 결국 운전대를 잡은 내 의지대로 정해졌다.


가족들을 편히 쉴 수 있는 카페에 내려주고 홀로 장릉에 가려는디, 예상 외로 체력이 떨어진 어머니가 "지금 아니면 영월에 언제 또 올까, 왔을 때 가보자"며 나를 뒤따라 왔다.



단종역사관


장릉 권역에 들어서자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단종 역사관이었다. 역사관에서는 단종의 얼굴을 추측해서 그린 어진(임금 초상화)과 생애를 간략히 조망할 수 있었다. 이 초상화에는 표준 영정이라고 되어 있고 실제로도 공인 표준 영정(100호)이지만, 현존 자료 중에는 단종의 실제 생김새를 알려주는 어떠한 시각적 단서는 없다. 작가의 상상력이 크게 반영된 작품이기에 대략적인 인상 정도만 참고하면 된다.


그럼에도 정 급한 게 아니라면, 역사관을 먼저 둘러보고 장릉으로 향하는 것을 권한다. 아담한 역사관이지만 단종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오지 않더라도 장릉 관람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필자 역시 단종과 장릉에 대해 개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세세한 부분을 역사관에서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 엄흥도 정려각 전경 ⓒ 박배민


충신 엄흥도  


장릉 능침(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으로 향하는 길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재실(왕릉 관리를 위해 관리가 지내던 곳)을 지나는 평지 길이고, 다른 하나는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산길이었다. 오래 걷기 힘들어 하는 어머니가 동행했기에 평지 길을 택했다. 단종 역사관, 재실, '엄흥도 정여각'이라 명명된 비각(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집)이 산 아래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있었다. 

정여(旌閭)는 충신이나 효자처럼 뛰어난 인물을 칭찬한다는 뜻이었고, '엄흥도'라는 이름은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비각에 담장을 두르고 심지어 홍살문까지 세웠으니 겉모습만으로도 엄청난 위계를 갖춘 비각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지 안내문을 보니 충신 엄흥도를 기리기 위해 영조 대(1726)에 세웠다고 한다. 비의 주인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비각이 세워진 시기보다 270년 정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 엄흥도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국조인물고> ⓒ 한국학중앙연구원·김형수(공공누리 제1유형)


 때는 1457년. 당시 영월에는 '엄흥도'라는 호장(지금으로 치면 지역의 고연차 관리직 공무원 정도)이 살고 있었다. 단종은 작은아버지 세조가 내린 사약을 말미암아 삶을 마감하게 되고 시신은 강에 버려진다.

세조가 단종의 시신을 건드리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 엄포를 놓으니, 그 누구도 시신 수습에 엄두조차 내지 못 한다. 시신마저 비참하게 내버려둘 수 없었던 엄흥도는 용기를 내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비밀리에 장례를 치른다.

300년이 흐른 순조대에 와서 엄흥도는 공조판서(1833)로, 고종대에 충의공(1876)으로 임명되며 충심을 치하받게 된다.


268위를 위한 장판옥과 배식단 


▲ 배식단을 둘러 보는 일행 ⓒ 박배민


▲ 장판옥의 위패 중 하나 ⓒ 박배민


정자각 쪽으로 이동하면서, 여타 조선 왕릉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구조물을 만난다. 바로 배식단(配食壇)과 장판옥(藏版屋)이다. 장판옥은 단종을 위해 끝까지 충성을 지키며 목숨을 바친 충신 268인의 위패를 모셔 놓은 3칸 건물이었다. 268위에는 안평대군, 금성대군, 사육신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매년 단종 제향과 함께 268위(位)를 위한 제사도 지내는데 그때 사용하는 것이 바로 배식단이었다. 네모난 육면체 구조물이 서로 높이를 다르게 하여 직각으로 배치된 모습이 마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현대 디자인 같았다.
             

▲ 영릉 영천에서 바라 본 정자각. 사진 기준 왼쪽 상단에 능침이 있다. ⓒ 박배민

 
배식단과 장판옥을 뒤로 하고 정자각으로 이동한다. 보통의 왕릉은 정자각과 왕릉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어느 정도 완만한 경사를 만들어 내는 편인데, 장릉은 한 눈에 봐도 특이했다.

정자각과 능침(임금이나 왕비의 무덤)의 거리가 매우 짧고 언덕의 솟음이 매우 급해 능이 마치 절벽 위에 올라 타 있는 듯했다. 정자각에서 능침을 제대로 보려면 고개를 많이 젖혀야 했다. 왜 이런 곳에 자리를 잡았을까 어머니와 이런 저런 추측을 나눠본다.
             

▲ 능침에서 내려다 본 제향 영역 ⓒ 박배민

 
여행을 끝낸 후에도 궁금증이 가시지 않아 자료를 찾아 보았다. 기록(홍재전서弘齋全書)에 따르면 엄흥도가 단종을 처음 암매장한 곳이 영월 북쪽에 있는 가문의 선산 '동을지'라고 전해지는데, 동을지가 바로 이 지점이었던 것 같다. 이후 중종대(1541) 영월군수 박충원이 매장지를 묘역으로 조성하면서 현재 위치로 굳어진 듯했다.


단종의 안식처로


▲ 산등성이를 따라 능침으로 향하는 길 ⓒ 박배민


춥고 피곤했지만, 언제 다시 영월에 올지 모르는데 능침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능침을 보려면 정자각 바로 뒤 절벽처럼 느껴지는 언덕으로 올라가야 했다. 다행히도 산길과 평지길을 잇는 샛길이 있어 입구까지 되돌아가지 않아도 능침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었다.

장릉은 특이하게 능침 바로 앞까지 접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왕릉 중 하나다. 장릉처럼 능침을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있다. 정현왕후가 영면한 서울 선릉이다. 선릉도 산책로를 따라 능침을 바로 앞까지 접근할 수 있다. 
             

▲ 장릉의 능침 ⓒ 박배민


장릉은 상석(床石, 제사상), 장명등(長明燈, 석등), 석인상(石人像), 석수(石獸, 돌짐승) 등 형식적으로 갖출 것은 얼추 다 갖춘 듯했다. 다만 봉분을 두르는 병풍석(屛風石)이나 난간석(欄干石)을 두르지 않았기에 능이 조촐하고 소박하게 느껴졌다. 
             

▲ 서울 정릉의 능침. 봉분 주위에 두른 병풍석과 난간석이 능에 화려함을 더한다. ⓒ 한국관광공사(공공누리 제1유형)


"배민아, 여긴 칼 든 사람(무인석)이 없는 것 같아." 

나를 따라 문화유산 탐방을 몇 년째 따라다닌 어머니 눈에도 독특한 점이 포착됐다. 정말 문인석 한쌍은 봉분 옆을 지키고 있었지만 무인석이 생략 되어 있었다. 무인석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세조가 무력으로 단종의 왕위를 빼앗았기 때문에 봉분을 세울 때 병장기로 무장한 무인석을 세우지 않았다는 풍문이 떠돈다. 하지만, 이상주 종묘 제향 전수자는 능의 간소화가 추세이던 조선 후기 시대상이 반영됐다고 설명한다(이상주, 논객.com, 2020). 
             

▲ 단종의 무덤을 정비한 박충원을 기리는 비(1973년 제작). 단종 장릉 내에 위치. ⓒ 박배민


단종은 살아생전 외로움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영면하고 있는 장릉은 결코 외로운 곳이 아니었다. 안타까운 사연으로 한양으로부터 100리 밖에 떨어져 있는 유일한 조선 왕릉이지만 장릉에는 단종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충신 268명이 함께하고 있으며, 그를 기억하려는 수많은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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