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이삿짐 하루만에 정리하고 대상포진과 하이파이브
남편의 발령은 1월 1일자였고, 남편의 몸은 1월 1일에 공식적으로 미국에 있어야 했다. 따라서 나의 상식적인 뇌로는 12월 말에 갔으면 했는데, 현재 주재원 자리가 비었다고 남편에게 빨리 와서 일을 시작하라는 독촉이 있었다(고 남편이 주장함). 미국은 연말에 쉬지 않아요?
크리스마스는 우리집에서 연중 가장 중요한 날인데, 4세 우래기가 1년 동안 기다리는 날이기 때문이다(1년 동안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로 협박). 그런데 남편이 12월 21일에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내가 아는 북아메리카는 12월 말에는 회사가 거의 셧다운인데? 아무도 없는 오피스에서 혼자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가? 라고 의문을 제시했지만, 남편은 한국인은 상관없다며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가족을 버리고 회사를 택한 남편에게 딱히 할말이 없어서, 그래 잘 가라 ㅃ 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포기했다. 생각해보니 남편도 이건 좀 오바다 싶었는지, 비행기표를 12월 26일로 바꿨다. 나한테는 12월 26일에 가는 것도 오바쌈바였지만, 어쨌든 아이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밤에 남편의 출국짐을 쌌다. 가서 옷은 다 사입으라고 하고, 가장 무거운 아이들의 장난감과 내가 가서 사용할 주방용품 및 생활용품을 남편의 출국짐에 꽉 채워 보냈다. 냄비랑 냄비 뚜껑까지 싸서 보냈다. 미국에 가면 가정보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새롭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장난감 일부를 남편 짐에 함께 부쳤다. 미국에서 새로운 장난감으로 일주일 정도는 버텨야 하니까.
남편은 한국에 있는 동안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주 2회 이상 송별회도 했다. 달랑 4년 가는건데 뭐가 그렇게 애틋한지, 나는 어차피 돌아올 거라는 생각에 딱히 송별회 같은 것은 하고싶지 않았는데 남편이 자꾸 평일에 늦게 오니 빡쳐서 나도 약속을 잡았다.
남편이 출국하고, 다시 나는 홀로 남았다. 친정 엄마가 도와주고 있었지만, 엄마랑 살림 스타일이 전혀 맞지 않아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힘쓰는 일은 내가 도맡아 해야했다. 엄마가 힘들지 않으려면 내가 계속 한 명을 돌봐야 했고, 아빠가 없어진 후로 아이들은 나에게 더 매달렸다. 당연히 이삿짐 정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독박육아인들은 알잖아요... 하루의 독박육아 끝에 남아있는 내 에너지는 0도 아니고 마이너스인 것...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애 둘을 데리고 13시간 비행을 하는 게 말이 안돼서 친정엄마랑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2022년 1월에는 한국보다 미국이 코로나가 난리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엄마가 미국행이 결정되고 미리 코로나 백신 3차를 맞았는데 거의 10일을 아파했다. 나 때문에 주사 맞고 미국 가기로 한 엄마가 아픈데 부르기도 뭐해서 그냥 혼자 애들 돌보며 지냈다. 게다가 이사는 1월 7일 예정이었는데, 어린이집이 1월 첫째 주에 방학이었다! 쓰읍..
첫째 아이 어린이집 방학과 독박육아와 맞물려 이삿짐 정리를 거의 못하고 어느새 이사 전날이 됐다. 당장 이삿짐 정리를 해야했기 때문에 드디어(?) 체력을 회복한 친정 엄마에게 아이 둘을 전날 맡기고, 미친듯이 짐정리를 시작했다. 주문해 놓고 택배 박스를 안 뜯은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전날 오후에 시작한 짐정리는 결국 밤이 새도록 계속됐고, 나는 이삿짐 업체가 도착하기 전까지 짐정리를 했다.
이사 당일, 퓨멕스에서 한국인 직원들이 4-5명 정도 오셨다. 엄청난 양의 뽁뽁이와 무척 두꺼워 보이는 박스들을 집으로 옮기셨다. 팀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본격적인 포장이 시작되기 전에 안 부치는 짐을 다시 한번 확인하셨다. 안 부치는 짐을 전날 미리 체크해놓으라고 하셔서 견적 팀장님이 주셨던 포스트잇으로 다 붙여놨었는데, 이사 당일에 이사 팀장님이 좀 더 강력한 스티커로 안 부치는 짐을 체크하셨다. 그리고 그 스티커는 나중에 정말 떼기 어려웠다 ㅠㅠ
안 부치는 짐에 대한 브리핑(?)이 끝나자 직원들이 각자 맡은 구역이 있는지, 각 방과 거실, 부엌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시더니 이삿짐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포장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보내는 이삿짐은 전부 박스포장을 해야한다고 한다. 박스 포장이 안되는 물건은 비닐로라도 싸서(?) 내용물이 뭔지 박스 위에 전부 적었다. 그리고 박스 몇 개가 포장됐는지도 전부 체크한다. 나중에 미국에 도착한 짐을 옮길 때 일일이 박스가 다 왔는지 내가 직접 번호로 확인해야 했다.
박스 포장이 어려워보이는(?) 이상하게 생긴 가구들도 전부 그 자리에서 직접 자르고 붙이시며 박스를 커스터마이즈 해서 전부 포장됐다. 그 중에 가장 하이라이트는 소파였다. 가로 길이가 거의 2미터 되는 소파였는데 그걸 어떻게 박스로 싸긴 싸시더라는...
59 제곱미터의 작은 집이었는데도, 박스가 126개가 나왔다. 국내에서 포장이사 할 때처럼 한 박스에 다 때려넣는 것이(?) 조금 불가능해서 그런지 5톤 트럭이 꽉 찼다.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점심 전에 포장을 90% 정도 완료하고, 점심을 드시러 나가셨다가 다시 돌아와서 박스를 트럭에 옮기는 스케줄로 진행하셨다. 나는 점심시간 쯤에는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는지 잠은 오지 않았지만, 약간 몽롱한 상태였다.
점심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넋놓고 있다가, 점심 드시러 나가신다기에 나도 급하게 배달의 민족으로 제일 빨리 배달이 되는 샌드위치를 주문해서 먹었다. 물론 커피도 함께.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돌아오신 이삿짐 팀은 아주 신속하게 포장된 박스를 트럭으로 날랐고, 팀장님이 나에게 몇 가지 서류와 박스 리스트를 주시고 이삿짐을 보내는 것이 오후 3시쯤 완료됐다.
텅빈 집에서 한 달을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조금 믿기지 않았지만, 가전제품은 전부 있었고, 행거나 아기침대 등은 남겨놨기 때문에 뭐 엄청난 캠핑 느낌은 아니었다. 내가 사용하던 물건의 90%가 없어져서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못 살 정도는 아닌 수준의 짐을 남겨놨기 때문이다. 남긴 짐 대부분은 친정엄마 가지라고 했고, 나머지 처분은 엄마에게 맡겼다. 당근마켓으로 팔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로 한 장난감들과 아기용품들이 여전히 많이 남겨놔서 아이들은 한 달 동안 지내면서 그것들을 가지고 놀았다. 당근마켓에 가격을 후려쳐서 올렸더니 하나 둘 차근차근 다 팔렸다. 이것들도 좀 미리미리 처분했으면 제값받고 팔았겠지만, 한 달 동안 당근마켓 어플 보는 것조차도 너무 괴로워하며 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이 모든 것을 모두 미리미리 3개월에 걸쳐서 했다면 좀 더 수월했을까? 나의 정신건강은 계속 삐용거리며 사이렌을 울리는 중이었으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살아야지^^;
그리고 나는 이사 후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날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다… ㅋㅋㅋ 강력한 대상포진 약을 일주일 먹고 위궤양이 왔다ㅋㅋ 위궤양은 4월이 된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다. 스트레스를 급격하게 받으면 배가 아픈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 진짜.
미국에 도착하니 미처 버리지 못하고 부친 쓰레기(?)도 많아서, 미국에 도착한 짐 받고 정리하면서도 엄청 버렸다. 한국에서 보내는 업체는 퓨멕스이지만, 미국에서는 계약된 미국 업체가 짐을 처리하는 듯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국사람에게 보내는 짐이기 때문에, 한국 직원이 오시는데, 한국 직원이 오시면 3개월이 걸리고, 한국 직원이 안 와도 되면 2개월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2월 쯤 미국은 마스크 의무화가 없어지는 추세였고, 그래서 그런지 선박 하역이 조금 빨라진 듯 싶다. 한국인 직원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소통 문제라고 해봤자, 큰 짐 어디다 놔둘지 이야기 하는 정도이고, 박스 번호만 잘 체크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2개월 만에 짐을 받아서 아직도 정리중이다 ㅋㅋ미국 이야기는 추후에 다른 글에서 정리하기로 해야겠다.
미리미리 하자고 말하면서 산지 20년이 뭐야 30년이 넘은 것 같네. 그냥 포기하고 대충 살자. 대충대충 지금까지 꽤 잘 살았어. (긍정왕)
해외이사 당일의 영상 기록은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링크는 프로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