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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 Oct 19. 2023

시니어를 위한 제품설명서를 디자인한다면?

엄마에게 스마트워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막내야, 엄마가 스마트워치 사용법 물어보려고 휴대폰 대리점까지 갔는데 전원이 꺼져있더라고..."


한 달 전, 엄마의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와 운동을 하라며 사드린 샤오미 미밴드 이야기였다. 주변에 스마트 기기를 잘 다루는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서 사용법을 배우라고 했지만, 엄마는 포장만 뜯어놓고 미밴드를 한 달 동안 방치해 두었다. 내가 계속 닦달을 하니 큰 마음먹고 대리점을 방문했지만, 하필 그날 방전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아냐 엄마, 그냥 사용법 사진 찍어서 보내주세요. 제가 밤에 전화로 알려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후 대체 제품설명서가 얼마나 불친절하길래 혼자서 사용하지 못하시는지 궁금해졌다. (평소 블루투스 이어폰과 AI 스피커를 자주 사용하고 계셔 스마트워치 역시 혼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엄마가 보내준 제품설명서 사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친절했다.

엄마가 직접 찍어서 보내준 샤오미 미밴드 제품설명서

글씨만 빼곡하게 쓰여있을 줄 알았던 설명서에는 간단한 그림과 함께 단계별로 설명이 담겨 있었다. 설명서를 보니 더더욱 엄마가 왜 혼자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셨는지 궁금해졌다.


엄마는 설명서를 읽어보긴 했을까?

만약 읽어봤다면 어떤 점에서 어려움을 느꼈을까?

엄마와 같은 시니어를 위한 제품 설명서를 디자인한다면 어떤 형태가 좋을까?


위와 같은 질문들을 가지고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미밴드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들었던 생각을 이 글에 담아본다.



1. 사용자(엄마) 이해하기


사용자는 60대 중반 여성이며 스마트폰에서는 주로 카카오톡, 유튜브를 이용하고, 이모티콘 구매나 인터넷 쇼핑과 같은 복잡한 작업은 자녀에게 부탁하는 편이다. 한편, 가정에 블루투스 이어폰과 AI 스피커가 있고 사용법을 한번 배운 뒤로는 자주 사용하고 있다.


Q. 제품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떤 감정/생각이 들었어?

처음엔 (화면이) 까맣게 되어 있어서 이게 뭐다냐 싶었지. 이것저것 만져보니 충전까지는 되긴 했어. 근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더라고. 휴대폰과 연결해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냥 나중에 누구한테 물어봐야겠다 싶었지.


Q. 제품 설명서를 읽어보려고 시도는 했어?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설명서를 처음 봤을 때 영어랑 중국어가 있어서 뭔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제대로 볼 생각도 안 했어. 여유도 없고 이런 걸 보고 설정하는 건 복잡하잖아. 이런 건 나는 그냥 아예 할 줄도 모르고. 나중에 뒤에 한글이 있는 걸 보긴 했는데 이미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었어. 


Q. 만약 제품 설명서가 글과 그림이 아닌 영상이었으면 괜찮았을까?

글쎄. 나는 누가 알려주는 게 좋아. 그냥 물어볼 것 같아.


Q.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더 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뭐야?

엄마는 이런 거 도통 뭐 할 줄 알아야지. 누가 옆에서 알려주면 그게 제일 편하지


요약

제품과 설명서를 모두 확인했지만 직관적으로 다음 행동을 예상하기 어려웠음.

평소 사용법을 혼자 익히는 것에 자신감이 없는 사용자는 설명서의 영어와 중국어에 위축됨.

한국어로 된 설명란이 있는 것을 알았지만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낌.

설명서를 보고 혼자 이해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이 더 익숙하며 편하다고 느낌.




2. 페인포인트 찾기 = 인증, 인증, 인증


제품을 혼자 사용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간단히 파악한 후에 본격적으로 미밴드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나 역시 한 번도 미밴드를 사용해 본 적이 없어 보다 자세히 알려주기 위해 엄마와 동시에 어플을 설치해 가며 설명을 해야 했다.


엄마의 주요 질문

아래 질문 외에도 정말 많았다..

이메일을 입력하라는데 엄마는 이메일이 없는데?

이메일로 인증코드를 발송했다는데 어떻게 확인하는 거니?

무슨 확인코드도 입력하라는데 이게 뭐다냐.. 잘 보이지도 않는데?

확인코드 맞게 입력한 것 같은데 자꾸 오류가 난다?

아니 자동차 번호판을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알람을 켜시겠습니까? 무슨 알람을 말하는 거야?

정보 제공 하시겠습니까? 그냥 전체 동의하면 되는 거지?


엄마가 큰 어려움을 느꼈던 지점은 미밴드를 휴대폰에 등록하고 페어링 하는 과정이 아닌 '계정 생성' 단계였다. 계정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이메일 인증 → 전화번호 인증 → 사람 인증(로봇 아님), 무려 3차례의 인증을 거쳐야 했는데 엄마는 자주 사용하는 이메일이 없어 이메일 인증이 어려웠고 사람 인증 과정에서 수차례 오류를 경험해야 했다(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때려치고 싶다는 반응이 나왔다).



설명을 위해 통화중 함께 회원가입을 시도했는데 나도 확인 코드에서 계속 오류가 발생했다.

나도 계정을 만들려고 보니 로봇이 아님을 인증하기 위해 확인 코드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계속 오류를 경험했다. 몇 차례 시도하다 다른 인증 방식이 나오도록 유도했고 자동차 번호판 사진을 선택하는 미션이 나와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증 과정의 필요성 자체를 모르는 엄마가 새로운 방식을 유도하는 방법을 알리는 전무했다.


그렇다면 제품설명서에 계정 생성 단계에서의 인증을 위한 설명까지 상세하게 기술되어야 할까?

계정 생성 단계에서의 '인증'은 엄밀히 말하면 제품에 대한 설명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는 계정 생성을 위한 인증쯤이야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다들 알만한 일상적이고 익숙한 경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UX는 전체 환경이자, 사용 맥락의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애초에 계정 생성을 하지 않으면 샤오미 미밴드의 핵심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용자가 인증을 실패했든 페어링 단계에서 실패했든 UX 관점에서는 동일하게 실패한 경험이다. 

대체적으로 계정 생성을 위한 인증 단계는 큰 설명을 요하지 않는 과업으로 볼 수 있긴 하다. 적어도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한 사용자에게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시니어에게도 그럴까? 시니어의 관점에서 어려운 과업을 정의하고 이들만을 위한 설명서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 글과 그림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3. 시니어를 위한 제품 설명을 AI로 만든다면?


전화로 수십 개의 질문을 받아치며 '결국 엄마는 이런 디지털 기기를 혼자 사용할 수 없고 매번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AI가 떠올랐다. 


시니어를 위한 제품설명서를 AI 음성 인터페이스로 디자인하면 어떨까?


마치 딸과 전화하는 것처럼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자세히 설명해 주고, 계속 오류가 발생하는 지점에서는 대안 행동을 추천하고,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짜증 내지 않을 AI 말이다.


네이버 보도자료 - CLOVA CareCall

이전에 신문에서 본 독거 어르신과 중장년층을 위한 네이버 클로바 케어콜 사례가 함께 떠올랐다. 공감과 위로로 감동을 주는 AI 안부 전화라는 콘셉트로 UX를 디자인한 것이 참 인상적이다. 과거 대화 내용을 기반으로 대화를 진행하도록 하는 '기억하기' 기능, 친근한 톤 앤 매너 등은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보이는 서비스였다.


이처럼 샤오미 미밴드 제품설명서도 시니어 맞춤 음성 AI 인터페이스로 새롭게 디자인한다면,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니어가 특히 어려움을 느낄 만한 과업을 세분화하고 더 간단한 대체 행동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시니어를 메인 타깃 유저로 생각하지 않는 샤오미에서 시니어를 위한 제품 설명서 디자인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만, 시니어가 타깃 유저인 제품이라면 제품에 대한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용법을 알려주는 '설명서'에 대한 디자인까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The Good Place - Janet(s)

엄마에게 재닛 같은 AI 비서를 붙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성형 AI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요즘, 재닛과 같이 똑똑하고 대화하는 데 어색함이 전혀 없는 AI 비서가 나오는 것이 그리 멀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쯤이면 엄마도 내 도움 없이 혼자서 이것저것 척척 해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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