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코치 Sep 24. 2021

브런치에 글 100개를 쓰고 나니

2020년 11월 5일 브런치에 첫 글을 쓰고, 지금까지 99개 글을 올렸다. 해서 이번 글이 브런치에 올리는 100번째 글이다. 10개월 동안 100개 글을 쓴 것이니, 산술적 평균으로는 한 달에 10개 쓴 것이지만, 시작하고 첫 40일은 매일 1개의 글을 발행했기에 수적 비중은 앞쪽으로 편중되어 있다. 첫 3개월 동안 무려 77개의 글을 올렸다. 한 편의 글을 쓰는데 적어도 2~3시간 많으면 10시간 이상을 필요로 하는데, 한동안 글 쓰는 재미로 살았기에 초기에 이렇게 많은 글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달리 보면, 초반 러시로 풀 악셀 밟은 이후 동력을 유지하며 순항하고 있는 수준이다. 사실 초기에는 매일 글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우리의 일상은 만물과 더불어 중력의 영향을 받아 대지에 단단히 발 딛고 있다. 일상의 무게를 이겨내고,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이륙하는 순간 가장 큰 힘이 필요하다. 일단 날아 오르고 어느 정도 고도에 이르면 엔진을 꺼도 활공할 수 있다.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브런치, 먼저 대지에서 발을 떼어 보자는 생각으로 초기 노력을 집중한 것은 나름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초반 러시 이후에는 한 달에 3~4개 글을 발행하며 휴업은 간신히 면하고 있는 수준이다. 폐업할 마음까진 아직 없으니, 간간이 글을 올려 구석구석에 드리운 거미줄을 걷어내고 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올리는 것도 이제 만만치 않다. 이유는(핑계는) 이렇다.      


첫 번째 이유는 엄격해진 자기 검열이다.

깊이와 통찰을 담은, 군더더기 없는 글을 내놓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거기엔 감사하게도 내 글을 읽어주시는 구독자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반, 이전보다 더 발전하고 싶다는 상향 욕구가 반이다. 다른 작가님들의 멋진 글을 보고 주눅이 드는 것도 한 몫한다. 처음에는 천지도 모르고 신나는 마음으로 산책을 즐겼다면, 중턱쯤 올라오니 눈 덮인 멋들어진 정상이 훤하게 보여 감탄이 먼저, 이어서 경외감과 닿을 수 있을까 싶은 무력감이 피어나는 것이다. 그래도 넋 넣고 보고만 있지 않고, 용을 써서 몇 발자국이라도 더 전진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글이 더디다. 교열이 엄해지고, 내놓지 못해 버려지는 글도 늘어간다.      


두 번째 이유는 소재 고갈이다.

처음에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 쓰고 싶었던 글들이 수북했다. 이것도 말하고 싶고 저것도 건드리고 싶어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썼다. 그렇게 훌훌 털어버리고 나니 이제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 깊은 경험은 대부분 소재로 활용했다. 이제 쓰려면 새로운 경험이나 통찰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글이 늦다. 소재 고갈 문제는 모든 창작자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다. 이 단계를 뛰어넘느냐 넘지 못하느냐가 창작자로서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것일 테다.


 유튜브나 브런치를 보면 소재 고갈의 벽을 넘어서는 다양한 방법이 관찰된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차용하는 것이다. 주로 인터뷰나 대화를 통해 다른 이의 인상 깊은 경험을 빌려올 수 있다. 누구나 인생의 굴곡과 사연을 안고 살아가기에, 그 속에 가장 흥미롭고 유익한 이야기를 끌어내면 소재는 무궁해진다. 소재 고갈을 해결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모습도 관찰된다. 소모임이나 책방, 공방, 상담소 등을 운영해 새로운 환경을 구축하거나, 택시, 대리운전, 창업 등 새로운 일을 하며 경험을 넓혀가는 식이다. 새로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꽤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여건도 맞아야 한다. 물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여러 창작자들의 전략과 효용을 관찰하며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한 고민이 이어진다. 글이 더딘 두 번째 이유다.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최소한 엔진을 끄지 않고, 고도를 유지해보려 한다. 초기 이륙을 위해 쏟았던 노력의 결실을 누리며 두둥실 떠다니고 싶다. 새로운 동력이 없어 더 높이 오르지 못하더라도, 찬찬히 둘러보며 쉬엄쉬엄 내려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또 모르지 않는가. 어떤 변곡점이 다가와 엔진 출력을 끌어올려 속도와 고도를 높여 볼 수 있을지. 그땐 공기의 저항은 덜하고, 비행의 기술은 늘었으니 효율이 더 높으리라 기대한다. 등산으로 치면 산 중턱 언저리에서 능선을 타고 이산 저산 둘러보는 것이다. 내려오진 말고 산속 구석구석 둘러보며 산책하다, 어느 멋진 정상을 본다면 힘 모아 한번 도전해보리라.

     

100개의 글을 쓴 나를 되돌아본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오늘부터 그만 쓴다면 어떤 점이 가장 아쉬울까. 더 쓰지 않는다면 실패한 것인가?      


글을 쓴다는 것은 순간을 붙잡아 두는 것이다. 그냥저냥 흘러가는 시간을 방관하지 않고, 순간의 감정과 깨달음을 차분히 모아 둔다. 쓰지 않았다면 흩어졌을 것들이다. 두둥실 떠다니는 순간의 파편들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집어 네모 반듯한 액자에 담는다. 하고 나면 어질러진 방을 깔끔하게 정리한 것처럼 보람차고 뿌듯하다. 시간이 흐르고 꺼내보면 내가, 그리고 같이 담겨 있는 이들 모두의 기억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생각과 고민, 경험을 녹여 만든 100개의 액자를 둘러본다. 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꾸준히 쓰고 싶다. 엔진이 식어 버러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해야겠다. 넋 놓고 있다 일상의 중력에 이끌려 어느 산골에 불시착하지 않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죽은자의 목소리(완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