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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Jul 01. 2021

죽은자의 목소리(완결)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단편 소설입니다.


1편 죽은자의 목소리 (brunch.co.kr)


2편 죽은자의 목소리(2) (brunch.co.kr)




 철곤은 진모 아버님이 보내준 사진을 들여다보며 진모 아버님의 말을 되새겨본다. ‘진모 장례식에 조문 온 수정이라는 친구가, 사고 나기 20분 전에 진모랑 카톡을 주고받았대요. 그때 진모가 보내준 사진이라며 이 사진을 보여줬어요’     


 진모는 수정에게 사고 나기 21분 전인 24시 56분에 카카오톡으로 ‘친구들이랑 강남 클럽에 가고 있다’는 글과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사진은 진모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차량 휴대폰 거치대에 고정된 태욱의 휴대폰 화면을 찍은 것인데, 거치대에 놓인 태욱의 휴대폰은 클럽을 목적지로 하는 내비게이션 어플이 작동되고 있었다. 사진에 있는 차량 내부 구조물들의 각도를 보면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비스듬히 찍은 것으로, 이를 통해 진모가 조수석에 앉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사고 21분 전이기는 하지만 진모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는 간접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 사진이었다. 철곤은 진모 아버님에게 전화해 연락 잘 주셨다고 말씀드린 뒤 경찰에 전달해주겠다고 답해드렸다. ‘그럼 그렇지’ 하나둘씩 정황 증거가 늘어나면 태욱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철곤은 태욱이 왜 이렇게까지 버티는지 의아했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버티는 이유가 뭘까? 누가 운전했는지에 따라 보험적용과 형사처벌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운전을 한 사람은 ‘사고자’가 되어 법적 처벌과 피해보상의 책임을 지는 반면, 동승자는 ‘피해자’가 되어 법적 처벌로부터 자유롭고 피해자로서 운전자에게 보상을 받는 위치에 선다. 사망자가 발생했고, 두 차량이 모두 폐차 수준으로 파손되었기에 ‘사고자’의 처벌과 피해보상 부담이 작지 않다. ‘사고자’는 불법유턴으로 중앙선을 침범해 사망사고가 발생했기에 보험적용과 별개로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며,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사망사고이기에 실형을 피할 수 없다. 태욱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피해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죽은 친구를 배신해서라도.

     

 다음날 부검이 진행되었다. 진모 부모님은 아들의 부검에 부정적이었지만, 철곤이 명확한 사인을 규명해 진모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부검으로 진모 신체 우측면에 충격이 컸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진모가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철곤은 기대했다. 부검에는 가족 대표와 수사관의 입회가 필요한데, 보통 가족 대표는 직계가족을 제외한 친인척 중 한 명이 입회한다. 진모의 삼촌과 철곤의 입회하에 부검이 진행되었고, 집도의가 설명을 이어갔다. ‘직접적인 사인은 좌측 후방 두개골 골절로 인한 뇌 손상입니다.’ 철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물었다. ‘우측 아니고요?’

 ‘네 좌측입니다’


 부대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철곤은 생각에 잠겼다. 왜 좌측이지? 조수석에 있었다면 우측에 충격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사무실로 들어선 철곤은 과장에게 보고했다. 과장도 부검 결과를 듣고 놀라는 눈치다. ‘그래..?’ 조수석에서는 오른쪽 창문과 프레임이 가깝고 왼쪽은 비교적 공간이 여유롭다. 우측 전방 측면에서 층격이 가해졌을 때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며 신체 우측면에 손상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상적으로 앞을 보고 있지 않을 수도 있잖아? 사고의 위험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을 수도 있다. 그리고 충격 당시 자세에 따라 차량 앞이나 뒤로 몸이 쏠려 좌측 신체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사고 당시 앞을 바라보고 앉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철곤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건 단순히 정황에 대한 부분이니까, 혈흔 감정 결과를 지켜보자. 운전석 에어백에 묻은 혈흔이 가장 결정적이겠지’     


 그날 오후, 담당 형사인 찬희로부터 연락이 왔다. ‘수사관님 저희가 사고 현장 주변 CCTV 다 확인했는데요, 어두워서 운전자가 누군지 식별이 안되더라고요. 눈 빠지게 찾았는데 참.. 에어백 혈흔 감정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태욱이는 한번 더 조사했는데 계속 자기가 운전한 거 아니라고 하네요’

철곤이 물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건 확인되었나요? 태욱이 몸에 안전벨트 쓸림 흔적이나 , 사고 당시 입고 있던 옷에 타들어간 흔적이요’

‘아 그건 물어봤는데요, 옷은 오래된 옷인 데다 사고 난 게 불길해 그날 버렸다고 하고, 몸은 살찐 게 부끄럽다며 보여주기 꺼려해서요. 그렇다고 수색 영장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아 일단 에어백 혈흔 감정 결과를 기다려 보려고요’      

‘네? 그러면 더 의심스러운데 영장을 받아서라도 확인을 해보시는 게 좋지 않나요..’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네 수고하세요’      


 철곤은 화가 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조사 대상자인 태욱이 군인이 아니기에 사건 관할은 경찰에 있다. 협조 관계인 다른 수사기관에서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긴 어렵다. 그래도 못내 아쉽다. 미심쩍은 행동을 하는 태욱을 압박해서라도 확인을 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몸의 상처는 곧 없어지는 시한성 증거라 지금 아니면 확인할 수도 없는데, 아쉽지만 손 쓸 방법이 없다.   


 다음날 아침 찬희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저희가 사고 현장 골목 CCTV까지 다 뒤져서 사고 나기 4분전 CCTV를 확보했어요. 골목으로 들어온 차가 대로변으로 진입하기 전에 멈추더니 진모랑 태욱이가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내려 서로 자리를 바꿔타더라고요.’ 철곤은 머리가 곤두섰다. ‘네?? 참, 별일이네요. 둘 다 운전을 하긴 했나 보네요. 그래도 진모가 조수석으로 간 게 찍힌 거죠? 사고 날 땐 진모가 조수석에 있었으니까’

    

 ‘그게요...  진모가 운전석으로 가요.’     


 철곤의 보고를 들은 과장은 말문이 막혔다.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무슨 영화도 아니고...’

 ‘담당 형사가 그러더라고요. 자기도 이제 진짜 모르겠다고. 태욱이가 CCTV 찾아달라고 그렇게 우긴 이유가 있었네요’

 생각에 잠겼던 과장이 입을 열었다. ‘사고 나기 4분전에 진모가 운전석으로 간 건 사실이네. 진모가 운전한 적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그것이 사고 당시 진모가 운전석에 있었다는 것을 뜻하진 않잖아? 서로 운전대를 바꿔 잡아가며 차를 몰았을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정황 증거들은 진모가 사고 당시 조수석에 있었음을 가리키고 있으니, 운전석 에어백 혈흔 감정 결과를 기다려보자’

 

 사고 발생 17일 후.

오늘도 교통사고 현장 출동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온 희찬의 눈에 책상 위에 놓인 서류봉투가 들어온다. 보낸 이를 보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다. 봉투를 뜯어 감정 결과서 사건번호를 검색해보니, 태욱과 진모가 타고 있던 차량과 택시가 충돌했던 사건이다. 사건 기록들이 다시 떠오르며 서류봉투를 든 희찬의 손끝이 살짝 떨린다. 처음엔 태욱이 운전한 것으로 확신했지만 이제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찬찬히 서류를 꺼내 읽어 내려가는 희찬은 심장박동이 손끝까지 느껴진다. 눈으로 천천히 결과를 읽어 내려가던 희찬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 혈액 DNA는 ‘공태욱’의 DNA와 일치합니다. 』     


 다음 조사에서 태욱은 DNA 감정 결과에 대한 불신을 표하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검찰에서 기소해 재판이 진행되던 중, 결국 자신이 운전했음을 자백했고 진모는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진철은 사무실에 앉아 사건기록을 정리했다. 이렇게 꼬인 사건은 처음 접해봤다. 여러 정황 증거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얽히고설켜 복잡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에어백에 혈흔이 없었다면 운전자를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엔 DNA 감정 결과도 부정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증거를 확보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 점점 어렵고 버겁게 느껴진다.

       

 태욱의 아버지가 경찰서에서 태욱의 전화를 받았을 때 얼마나 놀라고 또 기뻤을까. 죽은 아들의 목소리라니.       

 그리고 진철은 또 다른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은 듯했다. 바로 진모의 목소리다. 자신의 억울함을 밝혀달라는 간절한 목소리가 진철의 열정을 끌어냈다. 진철은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준 사건으로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태욱(가명)은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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