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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이직을 반복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교 즉문즉설-2

by 이안

질문) “저는 이제 쉰이 넘었습니다.
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퇴직을 한 이후,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도 얼마 못 버팁니다.
요즘 3년 사이에 열 번이나 이직을 했습니다.
나이 들었는데도 일을 계속 그만두게 되네요.
직급도 낮고, 콜센터 같은 데서 일하면 괜히 내가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나이에 이렇게 사는 게 너무 비참합니다.”


대답) 그럴 수 있습니다. 정말 힘든 시기지요.
누군가는 말하겠죠, “마음먹기에 달렸다.” 하지만 그 말이 가장 공허하게 들릴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에요.
이건 단순한 ‘마음가짐’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오래된 자아 이미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 이미지가 현실과 부딪칠 때마다 고통이 생기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그걸 ‘아상(我相)’이라고 합니다.
《금강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
—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이 말은, ‘나’라는 생각에 머무르지 말라는 뜻이에요.
과거의 내 모습, 사회적 위치, 타인의 시선 같은 것에 마음을 붙잡으면
현실의 변화 앞에서 계속 흔들리게 됩니다.
지금 당신의 괴로움은 ‘일’이 힘든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무너진 데서 오는 불안입니다.


질문) “그래도 현실은 너무 냉정하잖아요.


나보다 젊은 상사가 지시하고, 고객한테 욕을 먹으면
‘내가 이러려고 평생 일했나’ 싶어집니다.”

그 말 속에는 ‘나’라는 기준이 들어 있어요.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 정도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이 생각이 끊임없이 마음을 흔듭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諸行無常(제행무상), 是生滅法(시생멸법). 生滅滅已(생멸멸이), 寂滅爲樂(적멸위락).”
— 《대반열반경》
“모든 것은 변한다.
그 변하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있다.”


당신의 인생이 변하는 건 실패가 아니라 자연이에요.
젊을 때 하던 일, 받던 대우, 누리던 자존심은 모두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구름 같은 겁니다.
무상(無常)을 받아들이면, 현실이 모욕이 아니라 ‘과정’으로 보입니다.


질문) “그래도 자꾸 포기하게 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열정이 안 나요.”


그럴 때 필요한 건 ‘불타오르는 열정’이 아니라,
‘조용히 앉아 있는 용기’예요.
지금 당신은 멈춰 있는 게 아닙니다.
삶이 당신을 ‘비워내는 과정’이에요.
비워야 새로운 씨앗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법구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비운 그릇에만 새 물이 담긴다.”


지금 이 시기, 당신의 마음은 ‘비워짐’을 연습하고 있는 거예요.
아직 남아 있는 자존심, 비교, 억울함을 조금씩 내려놓을 때
그 빈자리에서 새로운 관계와 의미가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

심리학에서도 이 시기를 ‘정체감의 재구성기’라고 합니다.


50대 이후의 실직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보다 정체성의 붕괴를 불러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돌아오는 거죠.
이건 위기가 아니라 두 번째 인생의 문턱이에요.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 ‘존재’로 살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질문)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세요.
하루에 한 번,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나는 지금, 나의 자리에서 충분하다.”
비교는 마음의 독입니다.
자신을 세상 잣대에 대지 말고,
그저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데 집중하세요.


둘째, ‘감사 수행’을 시작해보세요.
하루에 세 가지, 감사한 일을 적습니다.
‘오늘 고객이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출근길 햇살이 따뜻했다.’
그 사소한 감사가 마음의 중심을 단단하게 세워줍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布施)’는 돈을 주는 게 아니라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거예요.
감사는 이미 당신 안에 있는 자비심을 깨우는 수행입니다.


셋째, ‘직업을 통한 자아 찾기’를 내려놓으세요.
이제 일은 ‘자기 증명’이 아니라 ‘수행의 장’입니다.
사람의 말이 거칠 때도, 고객이 무례할 때도
그걸 내 존재를 부정하는 말로 듣지 말고
그냥 “그 사람의 고통이 저런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세요.
그때 마음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유마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衆生病故 我亦病(중생병고 아역병)”
— “중생이 병들었기에 나 또한 병든다.”


이 말은 ‘세상과 나는 따로가 아니다’라는 뜻이에요.
고객이 거칠게 말하는 것도, 젊은 상사가 서툰 것도
모두 그 사람의 불안과 고통의 표현일 뿐이에요.
그걸 보게 되면, 마음에 연민이 생깁니다.
그 순간, 일터가 수행처가 됩니다.


이제 당신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회사가 아니라,
새로운 ‘마음의 자리’입니다.
직급이 낮다고 내가 낮은 게 아닙니다.
돈이 적다고 존재의 값이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은 항상 말씀하셨죠.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그 마음을 지금 여기서 새로 세우면 됩니다.
일터가 곧 도량이고,
고객의 목소리가 곧 종소리입니다.
그걸 들을 수 있게 되면,
그 어떤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질문) “그래도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마저 괜찮습니다.
두려움은 당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불안하고 흔들리며, 그래도 다시 일어나서 하루를 살아가는 그 마음,
그게 바로 부처님의 길입니다.


세상이 당신을 무시해도,
부처님은 한 번도 당신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오늘도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불안이 올라오면 숨을 길게 내쉬며 이렇게 말해보세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나의 수행이리라.”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면,
당신의 이직은 실패가 아니라
열 번의 수행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드립니다.

“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여등비구 지아설법 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
— 《금강경》
“너희 비구들이여, 내가 설한 법도 마치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과 같으니,

법조차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랴.”


이제 그 뗏목을 놓을 때입니다.
당신은 이미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그 여정이 조금 느릴 뿐,
그 자체가 바로 깨달음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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