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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즉문즉설] 11. "나는 패배자입니까?"

진짜 성공이란 무엇인가

by 이안

질문)

저는 평생 ‘성공’에 대한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쉰다섯이 된 지금,

갑자기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습니다.

직장에서도 밀려나고, 이혼하고, 돈도 잃고,

친구에게 사기까지 당하고 나니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방송국 부장으로 일하던 제가 지금은 작은 회사의 말단 직원입니다.

남들이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 같고,

스스로가 초라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나도 한 번 성공해서 떵떵거리며 살아야겠다’는

욕망이 강하게 올라옵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걸까요?

세상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게 문제일까요?

아니면 정말 지금이라도 도전해야 할까요?

저는 지금 패배자입니까?


대답)

그 질문에는 깊은 통찰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은 무너졌을 때 비로소 진짜 ‘성공’이라는 단어의 본질을 묻기 시작합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패배감은

실패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정한 잣대에 당신의 삶을 억지로 맞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마음을 “아상(我相)”이라 부릅니다.

즉,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고정된 자아의 그림자지요.

그 그림자는 젊을 때는 동력이 되지만,

인생 후반에는 괴로움의 근원이 됩니다.


부처님은 《유교경(遺敎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若欲脫生死苦海, 當除我慢.”

—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려면, ‘나는’이라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이 말은 겸손을 강요하는 도덕이 아니라,

자아에 매달릴수록 자유를 잃는다는 가르침입니다.

당신이 지금 괴로운 이유는 실패가 아니라

“나는 성공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당신의 본래 마음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

“그럼 저는 욕망을 버려야 하나요?”


대답)

욕망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방향을 바꾸면 됩니다.


《법구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千人戰勝 不如自勝.”

— 천 명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더 위대하다.


진짜 성공은 세상에서 인정받는 게 아니라

마음 안에서 ‘나는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성공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입니다.


욕망은 문제의 원인이 아닙니다.

욕망이 ‘비교’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당신의 욕망을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당신의 성장과 배움의 기준으로 바꾸면,

그 욕망은 탐욕이 아니라 정진이 됩니다.


심리학에서도 이런 변화를 ‘성취 중심(self-achievement)’에서

‘의미 중심(self-transcendence)’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더 가지는 삶’보다

‘더 깊어지는 삶’을 원하게 됩니다.

지금 당신의 불안은 그 의미의 전환기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화엄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

—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본래 다르지 않다.


이 구절은,

‘성공한 나’와 ‘패배한 나’가 본래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회사를 떠났다고,

가정을 잃었다고,

돈이 없다고 해서

본래의 존귀함이 줄어든 게 아닙니다.

그건 단지 형식이 변한 것일 뿐,

당신의 본질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질문)

“하지만 현실은 너무 냉정합니다.

돈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무시받습니다.

이 상태에서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죠?”


대답)

그 마음의 아픔, 매우 솔직하고 진실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少欲知足, 雖臥地上, 猶為安樂.”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는 이는, 비록 땅 위에 누워도 편안하다.”

— 《증일아함경》


즉, 삶의 고통은 부나 가난 때문이 아니라 ‘비교’ 때문입니다.

성공을 갈망하는 마음을 나무라지 마세요.

다만 그 성공이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복수의 욕망인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순수한 열망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 차이가 바로 깨달음의 문턱입니다.


《보살행론(菩薩行論)》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他勝我喜, 他失我悲, 是無智人.”

— 남이 이기면 시기하고, 남이 지면 기뻐하는 자는 어리석다.


진정한 보살은 남의 성공을 부러워하지도,

자신의 실패를 한탄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연은 한순간의 흐름일 뿐,

그 속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현실적인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일을 버리지 말고, 일을 수행으로 바꾸세요.

작은 회사의 말단 직원으로 일하는 지금이야말로

‘성공의 본질’을 다시 배우는 시기입니다.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마음의 훈련으로 보세요.

그 순간 일터가 ‘수행의 도량’으로 바뀝니다.


둘째, 돈과 명예의 회복보다, 일상의 회복을 목표로 하세요.

하루 세끼를 감사히 먹고,

몸이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삶은 이미 기적입니다.

그 감사가 깊어질 때

당신의 마음은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셋째, 진짜 성공의 정의를 다시 쓰세요.


《중아함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若得無病, 是第一利; 若得知足, 是第一富.”

“약득무병, 시제일리; 약득지족, 시제일부.”

— “병이 없는 것이 제일의 이익이요, 만족을 아는 것이 제일의 부(富)다.”


이 구절을 마음속에 새겨두세요.

세속의 성공은 일시적이지만,

마음의 평화는 영원합니다.


이제 이렇게 다짐해 보세요.

“나는 실패자가 아니다.

나는 단지 멈춰 서서,

성공의 진짜 의미를 배우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지금 견디는 이 시간은 패배가 아니라 전환의 시기입니다.

마음이 무너질 때, 그 안에서 진짜 강함이 자랍니다.

그 강함은 돈보다, 권력보다 오래갑니다.


마지막으로, 불교교학의 한 구절을 드립니다.

“衆生如夢, 成敗皆空.”

(중생여몽 성패개공)

— 《반야심경》 주석본

모든 존재는 꿈과 같으니, 성공과 실패도 공하다.


이 세상에서의 승패는 구름처럼 흘러가지만,

그 구름을 바라보는 마음이 고요하면

이미 그 자리가 깨달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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