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아랍(4),
국가가 실패한 이유

제국이 사라진 땅, 문명의 충돌국이 사라진 땅, 문명의 충돌

by 이안

오스만의 그림자 아래에서 근대국가는 왜 탄생하지 못했는가?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 존재와 공동체를 묻는 고대 철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문명 구조와 상상 질서를 탐색하는 인류학자


장소: 폐허가 된 고대 도시의 언덕


두 인물은 유적 위에 앉아, 제국이 사라진 세계의 흔적을 내려다본다.


소크라테스:
레비스트로스여, 우리는 앞선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자신만의 기억과 상상 구조로 국가를 세웠는지 살펴보았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묻고 싶네.

아랍 국가들은 왜 근대적 국가로 전환하지 못한 것인가?
왜 그들은 이스라엘과 같은 정치적 응집력을 형성하지 못했는가?


레비스트로스:
선생님, 그 질문은 곧 제국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디아스포라 속에서도 내부적으로 민족 구조를 축적했지만,
아랍 세계는 제국 내부의 일부였을 뿐,
스스로 '민족'을 상상할 구조적 토대가 없었습니다.


소크라테스:
하지만 오스만 제국도 종교와 법률, 행정이 있었지 않나?
그들은 국가가 아니었던가?


레비스트로스:
제국은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 집합체였습니다.
그 안에서 개별 공동체는 ‘주체’가 아닌 ‘부분’으로 존재했습니다.
즉, 국가를 설계할 ‘자기서사’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있어도 금지되었거나, 허용되지 않았지요.'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오스만의 붕괴는 민족의 탄생이 아닌,
공백의 탄생이었군.


레비스트로스:
맞습니다.
이 공백은 영국과 프랑스의 위임통치로 채워졌고,
그 위임은 ‘국가를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를 불구로 남기려는 관리 체계’였지요.


국경은 부족의 이동을 고려하지 않았고,
정권은 서구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할되었으며,
언어와 종파는 권력 투쟁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이들은 국가가 되기를 허락받지 못한 존재들이었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레비스트로스:
그 책임은 단일하지 않습니다.
서구 열강이 만든 경계선의 폭력,
그리고 아랍 내부의 상상력 결핍이 동시에 작용했습니다.


일부 지도자들은 민족보다 부족을 앞세웠고,
권위주의적 통치 아래 국가 대신 정권 유지에 몰두했으며,
지식인 집단은 탄압되거나 망명했습니다.


소크라테스:
레비스트로스여, 자네 말은 다시 한번
“국가는 권력 이전에 상상”이라는 걸 상기시키는군.
외부에 의해 그려진 국경 위에선,
민족이라는 상상의 집을 짓는 것이 불가능했겠지.


레비스트로스:
그렇습니다, 선생님.
국가는 자신을 먼저 상상할 수 있는 구조적 여유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아랍 세계는 상상보다 생존이 먼저였고,
그 생존조차 내부 분열과 외부 압력에 의해 반복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맺음말


이스라엘은 디아스포라라는 부재 속에서
‘상상의 공동체’를 축적했고,
그 위에 근대국가를 설계했습니다.


반면 아랍 세계는 실재했던 제국이 사라진 뒤,
국가 이전에 무엇을 상상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채로
외부의 질서에 따라 세워진 경계선 위에서
분열과 경쟁 속에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국가의 실패는 의지의 부재가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구조가 허락되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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