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즈 무기력 탈출 대작전
나의 연인은 매번 새 수건을 쓰는 사람이다. 샤워를 하고는 바로 빨래통에 수건을 던져 넣는 사람. 나는 옷걸이에 걸어 말려 이틀은 쓴다.
연인은 이미 회사에 간 시간. 느지막이 일어나 한 장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수건을 떠올린다.
그리고 줄어드는 수건을 보면서도 빨래를 돌리지 않았던 요 며칠을 후회한다.
‘티셔츠로 닦아야 하나.’
속옷만 챙겨 화장실로 향하는데, 곱게 접힌 수건이 하나 놓여있다.
‘빨래통에 있는 수건을 꺼내 쓰고 갔구나.’
혜화역 기둥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고 서 있는 연인이 있다. 붐비는 지하철역에서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누군가가 시선을 더 끄는 법이다.
사당역에서 수원으로 향하는 광역버스 정류장, 버스가 떠날 때까지 버스 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이 있다. 손짓으로, 눈빛으로 조심히 들어가라고, 도착하면 전화하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애틋하다.
‘지금 저들에게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겠구나.’
뮤지컬 <헤드윅>의 <The origin of love>는 신화에 기반한 사랑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래 등이 붙어 있어 사랑을 몰랐던 사람들이 신들에 의해 둘로 갈라지고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 불완전한 나를 완성시켜줄 반쪽을 찾아 헤맸다. 나와 하나였지만 등이 붙어있어 누군지 알지 못하는 반쪽을 찾을 방법은 뭘까.
나는 정신없이 또 다른 나를 찾아다녔고, 연락이 오면 온 마음이 저릿저릿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확신했다. 사랑의 자극은 황량한 일상을 알록달록하게 채웠다. 상대에게 마취되고, 상대의 일상을 독차지하는 순간에 나는 오랜 시간을 건너와 다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러나 몇 개의 계절이 지나기 전에 사랑은 황홀한 빛을 잃어버리고 멀건 죽처럼 변했다. 몇 번의 약속을 미루고 즐겁지 않은 대화 사이에 정적이 길어지고, 상대의 무심함이 주는 서운함이 성가셔질 때, 사랑은 종말을 맞이한다.
만남과 헤어짐의 순환이 반복될수록 이별이 주는 슬픔도 점점 흐릿해지고, 충만하던 사랑도 점점 얄팍해졌다. 공허함을 견디기 위해 더 큰 자극을 찾아 헤맸고 이별 후 친구들의 위로와 이어지는 왁자지껄해지는 술자리마저도 그 순환의 일부가 되었다. 친구들은 진심이든 조롱이든 나를 사랑꾼이라 불렀고 나는 나의 그것이 얼마나 큰 위선이며 도박꾼의 중독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면서 말을 아꼈다.
그러다 나를 위해 수건을 남겨두는 남자를 만나고, 격정적인 사랑의 시간이 지나고 남아있는 정체 모를 고요함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상대의 잔잔함과 한결같음은 마치 내가 받을 벌 같았다. 나는 부끄러웠고 채울 수 없는 허기 같은 것을 예감하며 그의 곁을 떠났다가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내가 돌아갈 때마다 그는 은신처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적당히 지루해하고 웃긴 영상 링크를 공유하고, 바다를 보러 가고, 장을 보러 가고, 기다리던 영화를 같이 보러 가고, 너무 다른 서로의 플레이리스트에 질겁하며 드라이브를 하고, 이따금 아주 기쁘거나 아주 슬픈 날에 비싼 반 수육을 시켜 먹었다.
여전히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우리는 영영 갈라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등을 붙여 이 세상을 굴러다니면서 한 번에 세상을 보고 읽으면서 말할 수 있는, 결핍을 모르던 먼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균열을 이따금 맞대보며, 잠든 상대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외로운 두 다리로 집을 나설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서로의 은신처가 되어줄 것이다. 밀린 빨래를 돌리는 것을 미루면서.
장모메
‘연년즈’에서 한 살 언니.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 현재는 유리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칠칠칠공
안녕하세요, 연년즈에서 막내를 맡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