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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Jan 02. 2024

너의 생일을 기억해

17년 지기 한서가 어느 날 나에게 보낸 카톡이다. 나의 생일에서 일주일 정도 흐른 후였다.


고향 친구들을 언급할 때 굳이 이름 석 자 앞에 '00년지기'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와 함께한 시간을 헤아리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을수록 마음이 풍족해진다. 서로의 팔다리가 길어지고 목소리가 굵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연을 이어나가면 마치 누군가의 좋은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 내가 마치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는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는데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 한서와 나는 이틀에 한번 꼴로 만나서 놀았던 것 같다. 주로 만나서 하는 놀이는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땅굴을 파는 거였다. 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판다. 그 구덩이들을 다시 덮어두었는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세 곳의 놀이터를 순회하다 지치면 근처 공원으로 장소를 옮기기도 했다. 한서는 나에게 처음으로 롤러스케이트 타는 법을 알려준 친구다. 나는 롤러스케이트가 없었는데 한서가 직접 나의 발에 자신의 때묻은 롤러스케이트를 신겨 주고,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각자 남중과 여중에 진학한 후 연락이 뜸해지다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운좋게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의 공백이 우리 사이를 서먹하게 만들 거라 생각했는데, 마냥 반갑기만 했다. 친구들에게 1학년 3반 반장 한서가 내 9년지기 친구라고 말할 때마다 전율이 일 정도로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자주 못 보게 되었다. 그래도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별일 없으면 만나고, 또 이렇게 매년 서로의 생일에 안부를 묻는 것으로 근근이 우정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한서가 올해 내 생일을 까먹었다. 내가 카카오톡 생일 알림을 꺼 두었다 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나가듯 미리보기로 카톡을 확인하던 찰나, 한서에게 전화가 왔다. 카톡의 1이 사라지지 않은 그 몇 분이 한서를 초조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시치미를 뚝 떼고 전화를 받았다.


"어. 무슨 일이야?" 


한서가 내 생일을 까 먹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장난스러우면서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한서의 화법이기도 하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했다. 생일을 까먹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려면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직 생일의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일을 왜 축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삶이 축복이라는 명분을 찾게 되면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겠지. 일 년 동안 아무 연락 없다가 생일 알림이 뜨면 기프티콘을 보내주면서 '잘 지내지? 조만간 밥 한 번 먹자'는 인사치레로 생사를 확인하는, 그런 것이 나의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다. 그게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어떤 행동이든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이번에 한서의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분명 감동을 받았다. 내가 그래도 17년 동안 이 친구에게 썩 괜찮은 친구였구나. 멀리 떨어져 지내도 계속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때때로 그리워하기도 하는구나. 나의 탄생을 축하해준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긍정해준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정, 소속감, 애정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그 누구도 아닌 나의 탄생과 투사된 존재가 축복받아야 마땅한 이유에 대해 여생 동안 계속 찾아가고 싶다. 그래야 한서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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