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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t Jang Jul 20. 2023

동화책을 읽고 우는 모녀

현실세계를 알아가는 5세 딸의 풍부한 공감력

 6세.. 아니 만 나이 시행으로 다시 5세가 된 우리 딸.

2세에 할머니, 3세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장례식장에 오래 있었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얼마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며 아빠가 펑펑 우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딸은 생전 처음 보는 아빠모습에 그냥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단다.


 사실 우리 딸은 공감력이 풍부하다.

작년에 직장일로 너무 힘들어서 퇴근 후 집에서 눈물을 쏟아내던 나를 보면,

눈을 깜빡이고 코를 찡긋거리다가 휴지를 한 무더기 가져다주면서 나에게 안긴다.

"엄마, 괜찮아. 힘내." 

그러면서 작은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거린다. 

4세밖에 안된 아이가 이렇게 나를 공감해 준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진짜로 큰 힘이 되어 그녀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책에서나 보던 '죽음'이라는 게.

이 세상에서 사라져서 영원히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기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래도 세 번의.. 특히 얼마 전의 장례를 치른 후 그녀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임신 중이라 감수성이 풍부해진 탓인지 아니면 감정이 풍부한 아이를 임신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창 만삭 중에 태교를 한다고 동화책을 아기에게 읽어주던 어느 날이었다.

너무나 이미 다들 잘 알고 있는 '청개구리 이야기' 

 정말 말 안 듣고 늘 반대로만 행동하던 청개구리가 엄마의 마지막 유언은 꼭 지키려고 강가에 엄마를 묻고 비만 오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운다는 그 이야기가 그날따라 얼마나 슬프던지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날도 아니었다.

너무나 평온하고 따뜻한 봄날, 볼록 나온 배를 문지르며 태아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주었는데 갑작스럽게 터진 눈물에 나조차 당황스러웠다.

그 철딱서니 없는 청개구리가 불쌍하기까지 하였고, 평소에는 개구리라면 질색을 하며 눈을 감아버리는 나인데 강가에서 펑펑 우는 개구리 모습이 연상되기까지 하였다.




 보통 육아서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보면 '책육아'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자기 전에도 부모가 책을 읽어주며 잠들면 아이에게 좋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딸은 누워있던 시기를 지나 스스로 기어 다닐 수 있을 때부터 본인이 원하지 않을 때 책을 읽으면 확 뺏어버린다. 그리고 말을 하는 시기가 되자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하였다.

"아니. 책 읽기 말고 그림 그리기나 인형놀이 하자."


그래서 가끔씩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날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꼭 읽어주려고 하는 편이다.

마침 어젯밤이 그랬다.

침대에 기분 좋게 누은 그녀 옆에서 아기 때부터 자주 읽어주던 동화책 4권을 읽었다. 

마지막 책은 '성냥팔이 소녀'였다.


 성냥팔이 소녀를 읽을 때면 딸은 항상 전체적인 스토리보다는 후반부에서 소녀가 추위에 떨며 어느 집 창문 안을 들여다볼 때 집안에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럴소리, 그리고 귀여운 또래의 여자애가 인형을 안고 있는 장면의 그림을 보면서 

"엄마, 크리스마스는 언제야? 산타할아버지가 내 선물은 뭐 줄까?"

하면서 책의 결말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며 크리스마스 이야기만 조잘거렸다.


 어제는 오랜만에 읽어서인지 책읽기가 끝날 때까지 조용하길래 '오늘은 많이 졸린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책을 덮은 후 조금씩 훌쩍거리던 딸이 갑자기 울음을 터드렸다.

"엄마, 성냥팔이 소녀가 너무 불쌍해요."

늘 아는 이야기에 갑자기 우는 딸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나 역시 같은 경험을 했기에 그녀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너무 불쌍하다. 그지? 우리 나중에 불쌍한 친구 만나면 도와주자. 이렇게 배고파하며 얼어 죽지 않게."

"엄마, 나는 아무것도 없어서 못 도와줘요."

(어린 마음에 굉장히 돈이 많아야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아니야. 충분히 도와줄 수 있어. 지금 너 저금통에 있는 돈으로 불쌍한 친구한테 먹을 것도 사 줄 수 있고,

또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우리가 같이 찾아봐줄 수도 있어. 네가 더 열심히 노력하면 한 명이 아니라 더 많은 아이들을 계속 도와줄 수 있지."

"근데 성냥팔이 소녀는 왜 엄마, 아빠가 없어요? 혼자 놔두고 어디 가버렸어요?"

" 혼자 놔두고 일부러 간 거는 아닐 거야. 어쩔 수 없이 죽어서 소녀가 혼자 남은 거겠지. 불쌍하다. 그지."


잠시 울음을 멈추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조용해진 딸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 어떡해요. 엄마, 아빠 죽으면. 나는 너무 싫은데..."

뜻밖의 그녀 대답에 꼬옥 딸을 안으며 '아니야 엄마, 아빠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너 옆에 있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우리 딸이 이제 죽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죽음이란 게 두렵고 무서운 나에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 나에게

100세까지 살고 싶은 나에게

그녀는 더 큰 기대를 하게 하였다.

100세에 죽으면 그녀가 겨우 60세가 되기에...

좀 더 욕심을 부려 150세까지...


 물론, 단순한 생명연장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과학과 의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오래 살려면 그만큼 건강해야 하고 무엇보다 노후생활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


'엄마, 나쁜 사람이랑 마녀, 괴물들은 다 죽이면 되지. 그리고 착한 사람들은 마법으로 살리면 돼'

작년까지만 해도 죽는다는 것을 단순히 하나의 단어처럼 대수롭지 않게 뱉던 어린 딸이 이제는 그 무게감을 깨닫게 되어 대견하고 기특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판타지 가득한 동화 같은 상상력을 멈추고 현실을 알아가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부족한 엄마밑에서 감수성과 공감력이 풍부한 아이로 잘 자라고 있어서 너무 고맙다.

엄마도 너의 마음을 더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더 노력할게.

(화난 잔소리도 줄이도록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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