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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은희 Sep 01. 2023

산티아고일기(2023/01/09) : 순례9일차

아디오스, 데이빗(로그로뇨 to 나헤라 29.8km)

1. 까미노 크루 해체 "아디오스, 데이빗!"


오늘의 이별은 C군과만 할 줄 알았는데. 아침 일찍 데이빗이 몽이 좋지 않다며 전격 귀향을 선언했다. 밤새 기침을 하더니 아쉽지만 이번엔 여기서 멈춘다고. 

나는 4일부터 합류했지만, 원 그룹은 2일 생장~론세스바예스 여정에서 만들어졌다. 사실 첫날의 분위기메이커이자 와츠앱 그룹의 관리자는 조슈아라는 캐나디안 30대 청년이었다. 그런데 조슈아는 내가 합류할 즈음부터 날나리 순례객. 허리 아프다는 이유로 4 구간을 연속 버스로 이동한 후 밤나들이를 즐긴다. 여행의 방식은 자유지만, 그래도 까미노 크루의 리더라기엔 쫌. 자연스럽게 이 멤버들의 분위기메이커이자 실질적 리더는 데이빗이었는데 그가 떠난 것이다. 데이빗은 낮에 휴식을 취하다 인근 큰도시 빌바오로 이동했는데, 저녁 6시 경 "걱정했는데, 코로나는 음성이야. 다들 자기 컨디션에 맞춰서 Buen Camino!"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그룹에서 탈퇴를 했다. "아디오스, 데이빗!"


그래서 오늘은 다들 각자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나헤라(Naheja)에는 문 연 숙소는 두 곳인데, 내가 체킨한 알베르게에 그룹 멤버는 아무도 없다. 까미노를 걷는 한 다른 경로에서 또 마주칠 친구들이지만 지난 며칠만큼의 유대감은 찾기 어렵겠지. 


아쉽지만 이 또한 까미노!


2. 두 곳의 성당과 어르신들을 위한 촛불봉헌


출발지로그로뇨의 IGLESIA DE LA ASUNCIÓN DE SANTA MARÍA 그리고 중간기착지나바레트Iglesia de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 두 성당 모두 성모마리아의 승천(assumption)을 기념하는 곳인데, 화려함이 대단하다. 

사실 이틀 전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와병 중이신지는 오래되셨더랬는데, 이 겨울을 넘기지 못하셨다. 몸 상태가 별로라 셋째언니네 집에 있는 엄마도 길게는 못 있고 잠깐 문상만 하고 돌아오셨다. 동생을 앞세우고 마음이 좋지 않으신지 엄마도 며칠 또 기운이 없으신가 보다.


여러 어른들 생각하며 촛불 봉헌을 하고, 교회 안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아마도 이 여행이 끝나면 종교 생활은 다시 시작하게 될 듯 하다. 어릴적 습이 살아나는 건지 성당이라는 공간이 주는 익숙한 아늑함과 전례의 형식미에 마음이 끌린다. 


3. 풍경이 다 한 날

오늘도 근 30km를 걸은 날. 로그로뇨가 제법 큰 도시라 빠져나오는 데만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는데, 이후의 길은 그냥 풍경이 좋아 하염없이 걸어도 계속 좋았다. (바람은 꽤 불었음 ㅠㅠ)

라 리오하(La Rioja)를 상징하는 포도밭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고, 중간중간의 밀밭(겨울밀이 보슬보슬 올라와 녹색카펫처럼 깔려있음), 뭐가 파종될지 모르지만 곱게 경운된 밭들 등등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아 그런데 가까이 본 포도밭들은 대체로 돌밭이다! 이곳이 옥토라서 오래전부터 포도를 심어온 것은 아닌 것이다. 돌밭이고, 건조지역이고, 바람 많은 곳이라서 이렇게 키작은 포도나무들이 선택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포도밭의 돌들은 뿌리의 바람막이이자 수분증발과 표토상실을 막아주는 장치일수도 있고. 지리학자의 감으로 추측해 본 건데 나중에 스페인 포도산업의 기후지형 사회적 조건과 배경에 대해서 다시 찾아봐야지.


무튼 까쇼와 멀롯만 알았던 나는,

앞으로는 스페인 라리오하산 와인을 부러 찾아마셔볼 예정^^


4. 무리하지 말 것. 다시 다짐.


이틀 연속 근 30km를 거의 혼자서 걸었다.

걸어보니 걸을 수 있기는한데 발바닥과 발가락에는 못할 짓을 한 것이다. 숙소 주인에게 세숫대야 같은 거 빌려서 따뜻한물에 족욕하며 발가락아 미안하다 모진 주인이 이리 고생을 시켰구나. 내일은 좀 살살 걸을께 오늘까지만 좀 봐주세요 살살 달래본다.


로그로뇨의 성모승천 성당
어르신들을 위한 촛불봉헌
원래는 순례자의 성인 야곱성상(지금은 예수상)이 있었던 겐팅화
다음 까미노 때는 이리 가벼운 차림으로 나서야지
나이스 캐취! 호수뷰보며 사과 먹고 있는데 겁 없는 청설모가 주변에서 얼쩡된다. 돌려먹고 남은 거 던졌는데 공중에서 낚아채 저리 맛있게 먹는다. 큰 웃음을 준 오늘의 친구
로그로뇨 외곽의 호수공원
나바레트의 성모승천성당
야곱 성상 마져도 화려했던
포도밭 = 돌밭
비행운. 영토 큰 나라라 항공교통이 발달한 듯
해지기 직전에 목적지 도착. 긴 하루였다!

홍수연 재작년 이사 온 울 동네 마트에서 젤 비싼 와인(무려 7만원)이 라오하여서 호기심에 질렀는데... 음 . 매우 맛있었음. 와인이라는 게 워낙 한국에서는 가성비 떨어지는 술이라 심하게 가까이 하다가는 패가망신에 숙취로 72시간 시달리는 터라 삼가는 편인데. 리오하~ 좋더라!!

힘 내고. 건강하게 걷고 와. 로사^^

  => 2월에 뵈러갈께요. 리오하 와인이 한국서 비싸네요~ 음 즐길 수 있을 때 한두잔씩 음미해 보겠습니다!

TJ Jan Eom 그동네 멋지지. 옛날에 통역겸 운전기사로 이사님들 모시고 출장갔었는데. 언제 또 가보나… 무리하지마시고 살살 종종 버스도 타고

김현종 테살로니키의 오리엔트엽이 그렇더라구요.척박한 비탈밭.강한 향. 박정희를 생각했지요. 모진 경험이..

김현종 스페인이 예전에 신대륙 금은보화를 그래도 시골성당까지 많이 남겨놨어요.

  => 네 대표님~ 오백년 부 시골성당에 남겨진 게 맞는 거 같아요~

김현종 이진수 님 사진마다 좋아요 누르는게 조만간 순례길 떠나겠네~~ ㅋㅋ

Jeoun Soon Lee 아이구... 삼촌께서 소천하셨네요. 오래 아프셨다니 그곳에선 평안하게 쉬시길 기도합니다~ 종교생활은 하지 마시고 믿음생활을 시작 하심이~

한도현 유럽에서 Rioja 와인 알려져있고 한국에서도 Spain Wine(리오하 와인) 인기상승 중.. 길 걸으시면 저 멀리 높은 산도 보이죠 높은 산이 포도생산에 적합한 기온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산 넘어 오는 바람, 평야의 강물 등이 어우러져 포도생산의 적지라고 합니다... 까미노 걷다가 발에 이상이 온 사람들이 성당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Santo Domingo에서 봤어요 로칼들이 까미노 순례객들을 잘 도와주는것같앴어요. 특히 겨울 순례라 사람들이 적으니까,로칼들의 hospitality에도 조금 기대셔도..

  => 바스크 리오하 무사히 넘어왔고, 메세타 고원지대 농촌 팔렌시아 거쳐 이제 레온입니다. 그래도 배운 게 있어 지리학도 눈에 경관 달라지는 게 정말 크게 느껴지네요.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잘 마치겠습니다. 지역 정보 주셔서 감사드려요~^^

  => 건강 잘 챙기셔 뜻깊은 순례길 마치시고 .. 한국서 뵙겠습니다. Gibson 교수가 7월초에 오시는데 엄박사 생각이 많이 납니다

  => 오는 계획 확정되면 알려주세요~ 여성학회, 단체, 사경 그룹에서 관심 많을 듯 싶습니다. ㅎ

김익배 잼나게 읽고 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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