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한테 지도에서 오하이오의 노컴스티프나 웨스트버지니아의 콜크리트를 가리켜 보라면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끔찍한 이야기다. 외진 곳, 시골, 혈연으로 이루어진 그들만의 커뮤니티, 그리고 보수적인 기독교도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야말로 '악마'적인 일이고 두 귀를 막고 두 눈을 감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평화로운 목소리는 무엇인가. 자기 전, 보채는 어린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늙은 남성의 음성은 침착하다. 이런 일은 부지기수라는 것처럼. 언젠가 너도 겪게 될 이야기라는 듯이. 어린아이는 두려움에 몸을 떨고 간밤에 지도를 그리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늘 그렇듯이 호기심은 승리를 쟁취한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 역시 이 이야기를 끝까지 잠들지 않고 목격했다면 아마 그것은 이런 목소리, 체념한듯한 회한의 목소리 덕분일 것이다.
엇갈리고 맺어지는 인연, 운명, 혹은 혈연
영화는 일종의 군상극 형태를 띠지만 정중앙에 놓이는 것은 러셀가의 인물들이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윌러드(빌 스카스가드)는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신앙심이 부족하다. 그가 전쟁터에서 목격한 것들은 아무래도 신앙심을 유지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사가 일본군에게 산채로 살가죽이 벗겨진 채 십자가에 못 박혀있는 것을 목격하고 이는 그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어느 카페를 들리고 거기서 웨이트리스 샬럿(헤일리 베넷)을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맺어지는 또 다른 커플이 있다. 윌러드에게 자리를 양보한 칼(제이슨 클락)은 웨이트리스 샌디(라일리 카오)를 만나고 그들은히치하이커들을 유혹해 변태적인 사진을 찍고 살해하는 일종의 팀을 이룬다. 집으로 돌아온 윌러드에게 어머니 에마(크리스틴 그리피스)는 집에 불이 나 온 가족을 잃은 헬렌(미아 바시코브스카)을 맺어주고 싶어 하지만 이미 윌러드는 샬럿을 마음에 두고 있다. 에마는 신에게 윌러드가 건강히 돌아오면 헬렌과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헬렌과 맺어지는 것은 광적인 신앙을 가진 로이(해리 멜링)이다. 자신이 제일 두려워하는 거미를 몸에 쏟는 것으로 신앙을 증명하는 로이의 모습을 보고 헬렌은 그에게 빠진다.
불행은 순식간에 그들을 덮친다. 윌러드는 샬럿과 결혼을 하고 아들 아빈(톰 홀랜드)과 함께 집세가 싼 노컴스티프에서 생활한다. 노컴스티프는 대략 400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로 러셀 가족을 제외하면 다들 혈연으로 이루어져 있어 외지인에게 배타적이다. 학교를 마친 아빈의 얼굴에는 자꾸 멍이 늘어난다. 윌러드는 가정을 이루고 신앙심을 되찾았다. 숲에 십자가를 세워두고 아들과 함께 기도하는 와중 지나던 마을 사람들은 아내를 언급하며 윌러드에게 모욕을 준다. 시장을 갈 때 윌러드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잔인하게 응징한다. "세상엔 인간말종들이 널렸단다." 아빈은 그날을 아버지와 함께한 최고의 날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왔을 때 부자가 마주하는 것은 암으로 쓰러진 아내의 모습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들은 신앙 속에서 위로받고 신앙 속에서 고통받는다. 윌러드는 암에 걸린 아내를 치료해달라고 기도하고 끝내 아들이 아끼던 개를 죽여 제물로 바친다. 자신의 상사가 죽은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는 방식으로. 당연히 기도는 이뤄지지 않고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윌러드는 어린 아빈을 두고 십자가 앞에서 자살한다. 히치하이커들을 유혹해 사진을 찍고 살해하는 칼은 자신이 하는 일-샌디로 피해자들을 유혹해 사진을 찍고 살해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종교라고 생각한다. 칼은 죽음을 목전에서 볼 때만 신에 가까운 무언가가 존재함을 느낀다. 헬렌은 로이의 광적이고 맹목적인 신앙심에 끌려 그와 결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로이의 광기 때문에 살해당한다. 골방에서 몇 날 며칠 동안 거미와 함께 신을 찾던 로이는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방에서 나온다. 헬렌은 로이와 산책을 가기 위해 어린 딸 리노라(엘리자 스캔런)를 에마에게 맡기지만 7년 뒤 숲 속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로이는 헬렌을 죽이고 신에게 이제 부활시켜달라며 울부짖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도망치던 로이는 칼과 샌디가 운전하던 차를 만나고 결국 그들에게 살해당하며 그들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교리상 필연적으로 가부장적이다. 가부장적인 구조는 언제나 그렇듯 금지의 논리로 유지되고 금지의 논리는 금지로써 성적인 것을 더욱 욕망하게 만든다. 인물들은 일종의 욕구불만을 느끼며 사랑을 갈구하고 다른 이를 살해한다. 여성인물들은 병으로 죽고,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남성 인물들은 그것을 동기로 행동하다가 결국 같은 운명을 맞이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에 살아남는 인물이 아빈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끝내 믿지 않는 자로 남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두 번 반복된다
이 영화의 흐름은 다분히 운명론적이다. 여러 명의 인물들은 흩어지다가도 한 점에서 만나고 서로 죽이기를 반복한다. 영화의 화자가 얘기하는 것처럼 이는 우연일 수도 있고 신의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죄인들을 벌하고 심판의 총을 잡는 이는 앞서 언급한 믿지 않는 자, 아빈이다.
아빈은 윌러드가 죽은 후 에마에게 맡겨져 리노라와 함께 성장한다. 윌러드가 그랬던 것처럼 아빈은 리노라를 괴롭히던 이들을 손봐준다. 리노라는 그 사이 어머니가 그랬듯이 콜크리트에 새로 부임한 프레스턴(로버트 패틴슨)에게 유혹당하고 관계를 가진 끝에 임신한다. 리노라는 프레스턴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만 오히려 망상환자 취급을 당하며 거부당한다. 그녀는 자살시도를 하다 포기하려던 찰나 실수로 딛고 있던 양동이가 쓰러져 죽게 된다. 프레스턴이 리노라 뿐만이 아니라 마을의 다른 소녀들에게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아빈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총을 꺼낸다. 하나 둘, 우연이 겹쳐 악인들은 그의 손에 죽어나간다. 프레스턴, 칼과 샌디, 그리고 샌디의 오빠이자 부패한 보안관 보데커(세바스찬 스탠)까지,마치 퍼즐 조각이 끼워 맞춰지는 것처럼.
그러나..
잔인하고 무자비한 서사와 별개로 감독이 선택한 이 영화의 연출 방식은 느릿느릿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자는 침착하게 인물들과 장면을 설명한다. 유머라든지 긴장감이 끼어들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 역시 자극을 목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피가 튀기는 장면들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프레스턴이 소녀들을 유혹하고 희롱하는 장면 역시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멀리서 바라본다. 관객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인 아빈의 존재-톰 홀랜드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라는 사실도- 역시 영화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든다.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영화는 분명히 원작의 내용에 충실할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이 영화의 패착이다. 이 영화가 택한 방식은 영상의 언어라기보다는 활자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물론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와 달리 카메라는 최소한의 윤리를 포착한다. 한국의 스릴러 영화에서 선택하는 여성혐오적인 장면들, 집요하게 여성의 신체를 훑고 고통받는 표정을 전시하는 것을 이 영화는 반복하지 않는다. 카메라의 거리 덕분에 관객들 역시 이야기와 거리를 둠으로써 보호받는다. 코로나 시국에 공개되는 넷플릭스 팝콘 무비로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가사는 끔찍하고 비관적이지만 평화로운 반주의 노래처럼 연출은 심심하고 수많은 명배우들이 등장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균형을 잡는 것은 좋았으나 가끔은 넘치는 일 역시 필요한 법이다.
한줄평 : ★★★, 건조하고 안온한 컨트리 뮤직처럼
ps. 조금 다르지만 형식과 연출방식, 그리고 캐스팅에서 올해 개봉한 김용훈 감독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떠오른다. 장점과 단점도 비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