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결혼 2년 차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운 2014년의 한 주말, 남편은 젊을 때만이 할 수 있는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나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나는 남편이 박사학위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나중에 후회 없도록 시도해보라고 권했다.
결혼생활도 일도 익숙해지고 안정되었는데 그 생활을 뿌리치고 큰 꿈을 좇아가려는 남편이 대단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컸다.
당시의 나는 직장에서 7년 차 갓 과장급이 된 중간 연차로, 소위 위아래를 다 챙겨야 하는 고충과 회사와 업무에서 단점들이 주로 보이는 시기였다. 그 시기에 마침 나의 주변 몇 동료들이 또 다른 꿈을 좇아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흔들렸지만 막상 뚜렷한 다음 목표가 없고, 이곳에서 쌓아온 것들을 내려놓는 일은 너무 두려웠다.
스스로가 알을 깨고 한 발자국 더 내딛는 일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기에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며 대리 설렘, 대리 만족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의 일들은 아무런 예측을 하지 못하고.
우리 둘 다 안정된 것들을 추구하지만 젊을 때의 도전은 어떻게든 미래에 큰 자산이 될 거라 믿었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실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나의 일터는 서울, 남편은 비수도권이었던 지라 계속해서 주말 부부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그는 나와 상의 후 바로 유학 준비를 시작했고, 1년간 각종 영어 자격시험을 치르고, 추천서를 받고, 여러 학교에 지원서를 쓰며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마침내 미국 주립 공과대학에 풀 펀딩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막상 합격 소식을 들으니 벅차면서도 얼떨떨했고, 결국 흔쾌히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남편은 5년 반 동안 다녔던 회사는 단칼에 사직서를 냈는데, 안정된 공기업이었기에 나는 내심 아쉬웠지만 남편은 일말의 아쉬움도 없어 보였다.
남편도 나도 참 용감했다.
2015년 8월 15일 광복절 휴일,
그렇게 남편은 생각보다 아주 길고 험난한 여정으로 떠났다.
나는 내 커리어를 쉽게 단절할 수 없었고, 남편도 먼저 자리 잡을 테니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우리는 잠정적으로 기약 없는 생이별을 했다.
남편을 먼저 유학 보낸 날을 기록했을 때의 느낌은 아주 생생한데 벌써 7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제는 추억이 된 과거를 선명히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해보려 한다.
마치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쓴 편지와도 같이 막상 웃을 수만은 없던 그때를 회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