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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Dec 17. 2022

Inter-view

서로를 관통하는 ‘대화’


이번 주는 아주 큰 용기를 낸 주간이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 이후 15년 만에 '면접자'가 되어본 것이다. 근래에 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15년이나 한 회사를 다녔는데 익숙해진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으로 나를 놓이게 하는 일이 과연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일까-

현재 상황에 대해 크게 불편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상 유지가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머무르고 싶은 나'와 '조금이라도 나아가고 싶은 나' 사이에서 나의 심상이 조금이라도 향하는 쪽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 몸이 바쁜 것과 별개로 지금의 안정이 '정체'를 의미했고,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무언가를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내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바쁜 현실 와중에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준비가 됐다고 해서 뜻대로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너무 비장하지 않게, '아니면 말고'의 마음 가짐으로 나의 15년간의 커리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7년 전에 정리해놓았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는 다시 보니 너무 부끄러워 학력사항 외에는 모두 업데이트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브랜드와 프로젝트를 나열해보고 그중 내가 의미 있고 성장했던 경험들을 회고해보고 현재는 어떤 고민이 있는지 글과 이미지로 정리해나갔다.

이직 준비란 나에게 '직업'이란 것의 의미, 삶의 가치관까지도 돌아보게 되는 큰 작업이었다.  


직업이란 나를 담는 그릇

나는 이 직업을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을까?

어릴 때에는 자신의 적성이나 직업세계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디자인을 전공하던 시절에 막연하게 이 업계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여러 번 두드린 후 입사하게 되었다. 모든 직업이 저마다의 고충이 있지만, 15년간 이 직업으로 살아오며 직업적 슬픔이나 애석함 같은 것은 없던 걸 보면,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한 관련된 일을 계속하게 될 거 같다.

장강명 작가가 어느 강연에서 말한 '직업의 중요한 세 가지'는 매우 공감이 갔다.

1. 생계유지를 위한 수입
2. 업계 평균 이상 잘할 수 있는지의 성취, 유능감
3. 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인가

때로는 꿈보다 생계유지가 더 우선해야 하는 점이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이 일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는 '유능감'은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고 나를 담지 못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어느 순간 불행해진다. 매일 최소 8시간씩 살아내야 하는 그 직업이라는 렌즈, 그릇을 통해 나의 삶과 세계를 조금 더 넓게 조망할 수 있게 된다. 나의 개성, 내가 추구하는 것들을 알아야 직업을 선택할 수 있지만 또 직업을 통해 자신을 배워나갈 수도 있다.

작가가 여러 업종을 경험하며 자신을 어떻게든 스스로 관통해오며 느낀 감정과 생각들이 짙게 느껴졌다.



지난주에 몇 군데 지원한 곳 중, 한 외국계 관리직 포지셔닝으로 오퍼가 왔다.

이번 주에 실무진 임원 면접과 부대표 면접을 연일 보자고 해서 기뻐하며 승낙을 했는데, 막상 그 날짜가 다가오니 엄청난 중압감으로 시달리기도 했다.

면접 당시 나와 닮은 이미지. from @pinterest

어김없이 그날은 다가왔다.

1차 실무진 면접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나왔는데 그녀는 미국에서 20년 이상을 살다가 올해 한국으로 스카우트된 디렉터였다. 역시나 질문은 나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영어가 더 편하다는 그녀는 기습적으로 영어 질문을 해서 매우 난감했지만 나의 제한된 영어실력으로 어떻게든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부대표와 HR 임원 면접 때는 실무 관련보다 리더 자질에 대한 많은 질문을 주로 했고, 나의 경험과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틀 연이어 본 면접이 끝나고 밖에 나오니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면접에서 아쉬웠던 순간은 우선 잊어버리고, 후련함을 만끽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의 본업 일터로 돌아갔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설국이 된 풍경



면접을 보기 전 헤드헌터의 코칭을 받으며 들은 인상 깊은 이야기와 실제로 경험 후에 면접을 바라보는데 좋은 관점을 정리해본다.


1. "inter-view"란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대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인터뷰라고 한다. 이때 interviewee가 interviewer의 '질문에 답한다'라기보다 서로를 알아보는 '대화’로 보는 것이 좋다.

‘inter-view’란, 그걸 이루고 있는 영어 뜻 그대로, 나와 상대방이 동시에 여러 관점에서 나누는 대화이다. 일방적이지 않고 자유롭게 쌍방향으로 통하는 관계, 그런 대화 속에 서로를 더 잘 알 수가 있고, 면접관도 그런 면접자의 태도를 반긴다. 면접관이 면접자를 뽑기도 하지만, 면접자도 면접관과 그 안의 공기로 내가 일하고 싶은 곳인가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2. 면접자보다 면접관이 더 어렵다.

면접관보다 면접자가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하고 질문 의도를 파악해서 ‘잘’ 대답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면접관이 훨씬 더 어렵다. 고작 한두 시간 가량의 대화로 함께 일 했을 때 합이 잘 맞는지, 미래를 당겨 상상하고 파악하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포커싱이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쏠리게 하면, 어떤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대화 형식으로 PR 할 수 있을지 조금은 알게 된다. 최근 내가 면접관으로 채용을 경험하면서 그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3. 나는 어떤 사람인가?

“당신의 어떤 사람인가? 장, 단점을 분석해 보세요” 같은 질문은 뻔하지만 면접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나는 어릴 적 해외에서 몇 년 살아본 경험이 언어 감각보다도 나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예민한 시기에 넓은 세계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 경계에 서본 경험은 도리어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관점이 있음을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경험을 했다. 어릴 때는 상처였던 것이 사회에 나와서는 생각의 유연함, 소통과 공감 능력이 있는 것이 나의 장점이 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면접으로 나의 성격과 태도, 그리고 일할 때의 모습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된다.


4 워킹맘의 고충은 감수해야 한다.

부모라면 가장 큰 걱정거리가 육아와 일을 계속해서 병행할 수 있을지 이다. 사회적으로 더 크게 성장해야 할 시기에는, 아이에게도 부모의 물리적, 정신적 지지가 필요해진다. 당장 나도 예비 초등학교를 위해 고민이 많은데 초등학교를 보낸 이후, 더 크면서는 나와 아이의 스케줄 밸런스를 챙기는 데에 분명 어려움이 많을 거 같다.

고3, 중3의 아들을 둔 헤드헌터는 지나고 보면 자신이 가장 바쁠 때 아이도 똑같이 바빴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어느 순간 엄마의 손을 떠나는 시기에 공허함은 일로 달랠 수 있었다고 한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나의 가치관에 조금이라도 향하는 쪽으로 선택 후, 그에 따른 모든 일은 ’감수'해야 한다.



작은 시작은 어떻게든 나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이번 주는 나에게 아주 의미 있고 값진 경험이었다.

예민했던 신경은 적고 보니 이내 차분히 가라앉고 초연한 심경으로 바뀌었다.

이번 주말은 내 아이와 약속한 눈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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