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9개월 차 일기
몇 달 전, 옆 팀의 팀장이 덜컥 퇴사를 했다.
놀랍지는 않았다.
그분은 나와 일적으로 많이 얽혀있는데 본질적인 사고방식이 맞지 않아 여러 충돌이 있었고, 그의 태도는 내가 선호하는 유형과 거리가 멀었다.
자신의 의견이 무조건 옳고 상대의 의견을 경시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과민하게 굴었다.
그의 그런 태도는 내가 초반에 새로운 곳을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이곳에서 잘할 수 있을지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어느 날 내 자리로 불쑥 찾아와 "저 이번주까지만 출근해요."라고 인사를 건네러 왔을 때 겉으로는 덕담을 나누었지만 속으로는 아쉬운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와 나의 짧은 인연이 지나가고, 그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몇 주 후, 나의 상사는 공석이 된 포지션에 적합한 사람이 있다면 ‘지인 추천 제도’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 그때 머릿속에서 강하게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전 직장의 직장 동료이자 선배였는데, 내가 그곳을 떠나며 그 선배와 사내에서 이별 인사를 할 때, 그분도 커리어 전환에 대한 깊은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았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기에, 그 선배에게 면접 볼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고 포지션에 대해 전달했다. 그 선배는 고민을 해보겠다고 한 후에 며칠 후에 해보겠다고 했고, 여러 차례의 면접을 본 이후 최종 두 후보를 두고 회사는 씨름을 하다가 내가 추천한 분이 최종 합격을 했다.
막상 결과가 그렇게 되니 어깨가 무거웠다.
새로운 커리어 확장하는 거 자체는 시야가 넓어질 수 있는 기회임은 분명해도, 내가 느끼는 거만큼 상대도 똑같지 않을 거기에 그분에게 필요한 선택을 하길 바랐다.
내가 이곳을 입사한 후에 필사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한 것은 불필요한 업무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디자인팀에서 이런 것까지 하나 싶은 업무들이 많았다. 불필요한 것들이 정리가 되어야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회사로 인수합병이 완전히 되었음에도 외국계라는 무늬만 있지 막상 내부에서는 기존 방식과 문화는 그대로면서, ’보여주기식‘이 난무했다.
큰 변화의 중심 속에서 과도기적인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 안에서 피할 수 없는 충돌과 갈등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관철시켜야 하는 숙제들이 너무도 많다.
그런 와중에 내가 무언가 나서서 변화시키려는 것은 쉽지가 않았고 타 부서에서 나를 향한 탐탁지 않은 시선을 뜨겁게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철해 나가야 하는지, 자칫 성급한 행동으로 비치고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좀 더 길고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었다.
결국 좋은 의도라고 해도 속도와 온도에 따라 상대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우리 팀원들에게 불편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됐고, 그 과정에서 나는 매니징 역할을 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체감했다.
지나고 보면 관리직의 신고식을 호되게 했다고 회상하겠지만, 그 터널을 지나는 지금 또 매일을 매몰되어 괴로워하고 있었다.
사무실을 나서면 일터에서의 일은 머릿속에서 log off 해야 하는 것을 잘 알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으로 나를 집어넣는 일은 무언가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수치례 자기 검열에 빠지는 일이다. 자기 존재감, 자기 가치를 보여줘야 하지만 그것에 매몰된다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도 잘 보아야 한다.
그런 와중에 나와 쌓아 온 시간이 짙은 지인이 입사하게 되어 초반에는 여러 감정이 들었지만 숨통이 트인다.
서로의 역사가 있는 존재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는데, 객관적으로도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통찰력 있는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 조언은 막상 따끔거리긴 해도 생각을 그래도 바로잡아주는 힘이 있다.
내가 앞뒤 양옆을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을 때 옆에서 툭 쳐주며 다른 방향을 바라볼 수 있도록 조언해 주는 그런 사이가 내 옆에 와주었다니.
앞으로 서로가 마주할 일들은 뒤로하고, 깊게 아는 지인이 이런 혼돈의 시기(?)에 기꺼이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에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들었었다.
이따금씩 속마음을 털고 서로 경청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나를 믿고 와주었다는 것, 그동안 잔잔하게 깔려있던 감정들이 쏙쏙 튀어나와 ‘감사함’으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