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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Apr 04. 2022

내가 흙수저라면 귀촌을 결심할 수 있었을까

부끄러운 고백

일단 고백 먼저하겠다. 난 중산층에서 평범하게 자라온 사람이다. 비록 아주 풍족하게 누리며 살아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적은 없었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에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다 온 것도, 대학 졸업 후 취업하지 않고 바로 네팔에 해외봉사를 갔다 온 것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아내와 6개월 만에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부끄럽지만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자 집안에 태어난 것도 아닌데 난 때때로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뭣도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이렇게 주체적인 삶을 계속해올 수 있었을까. 그들보다 난 몇 걸음 더 앞에서 시작하는 것 같고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내 철학을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뭔가 불편하다. 당장에 먹을 것이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주저 없이 시도할 수 있었을까. 남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내 용기는 어쩌면 이러한 기반에서 만들어진 거짓 용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출발선이 다르다는 건 어쩔 수 없다고들 한다. 선천적인 건 선택지가 없기에 도리가 없다고. 적어도 내 주위엔 내가 느끼는 이 불편함을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왜 다들 억울해 하지 않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바꿀 수 없는 선천적인 것 때문에 미래가 정해지는 거면 정말 억울하지 않나. 앞선 사람들은 뒤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는 상황. 아무도 병들어 보이지 않기에 세상이 병든 것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솔직히 나는 부끄럽다.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귀촌을 결정한 것도 온전한 내 힘이 아니어서다. 다만 언젠가는 이 도움을 배로 갚아드려야지..라는 어쩌면 합리화에 가까운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합리화는 합리화일 뿐 내면을 들여다보면 온통 부끄러움이다.


온전히 우리가 모은 돈으로 귀촌을 결심할 수 있었을까. 상상해 봤다. 신혼부부 대출을 받아 10년이 훌쩍 넘은 7천만 원짜리 빌라 하나를 사서 귀촌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가능은 할 것 같다. 아니, 좀 더 당당하려나. 내가 느끼는 이 부끄러움과 불편함을 가지고 가지 않으니 말이다. 더 큰 모험이 될 것이니 더 성장할 수 있으려나!


30대 부부가 귀촌을 결심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다. 난 우리가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가진 용기가 이 글을 보는 사람에게 또 다른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떳떳하지는 않다. 용기만 있으면 귀촌이 가능하다는.. 그런 말은 감히 내뱉진 못할 것 같다. 난 이미 그런 상황이 아니어서다.


다만 솔직한 스토리는 약속할 수 있다.


난 앞으로 연재해 나갈 우리의 귀촌 프로젝트를 아름답기만한 귀촌 스토리로 포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매력으로 내 글을 봐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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